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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싸면 괜찮다, 다 괜찮다

[KIN][입만 살아가지고] 도전, 딤섬②
등록 2011-08-25 18:33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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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세계지도를 그려보자. 일본(교자)-한국(만두)-중국(만두, 교자, 딤섬 등 모든 만두)-베트남(춘권)-인도, 네팔(사모사)-이슬람-터키, 그리스, 동유럽(뵈렉)-이탈리아(라비올리, 토르텔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지역이 탄생한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광대함은 실크로드 수준이다. 비단처럼 아시아에서 시작한 만두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을 통해 동서양으로 번져갔다, 고 믿고 싶다. 뵈렉(Borek)은 터키, 동유럽의 만두 비슷한 음식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위키피디아에는 ‘시가라 뵈렉’, 영어로 하면 ‘시가렛 뵈렉’이 소개돼 있다. 춘권과 똑같이 생긴 시가라 뵈렉을 보고 ‘만두로드’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두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고 할 독자도 있겠으나 어쩔 수 없다. (정수일·창작과비평사 펴냄), (이븐 할둔·까치 펴냄), (하워드 터너·르네상스 펴냄) 등을 아무리 뒤져봐도 만두에 대한 서술은 따로 찾지 못했으니 상상에 기댄 것을 비난하지 마시길.

이미 다져진 돼지목살은 묵은 것일 수 있으니 사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에 따랐다. 덩어리로 구입한 돼지 목살의 기름을 모두 떼어내고 고기를 작게 썰었다. 부추를 잘게 다진 뒤 고기에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돼지 비린내를 없애려고 화이트와인을 조금 뿌렸다. 부드러운 찌개용 두부를 손으로 물기를 짠 뒤 함께 버무렸다. 문명을 이어주는 만두로드가 서울의 한 구석방까지 닿는 순간이었다. 문명 교류의 상징을 만두에 새기고 싶었다. 이태원의 이슬람 식재료 상점에서 산 ‘가람 마살라’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가람 마살라는 후추, 코리앤더, 커민 등이 섞인 인도의 혼합 향신료다. 버무린 만두소에 가람 마살라를 뿌렸다. 겉모양이라도 딤섬을 만들고 싶었다. 만두피에 소를 넣고 십자 모양으로 붙였다.

찜기에서 6개의 만두가 익어가는 동안 (백두현·글누림 펴냄)를 펼쳤다. 17세기 안동 장씨가 쓴 조리서 을 풀이한 것이다. 만두 만드는 법이 소개돼 있다. 무를 무르게 삶아 다지고, “연한 생치살(꿩고기)을 다져 간장을 넣은 기름에 볶아 백자와 후추, 천초가루로 양념하여 만두소로 넣어 빚는다”고 가르친다. ‘에 쌍화(고려시대에 만두를 일컬었던 말) 만드는 법도 나와 있으니, 혹시 정수일 선생을 뵐 일이 있으면 ‘만두문명 교류사를 연구해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맥주를 홀짝이는 순간, 갑자기 탄내가 났다. 찜통에 물이 다 말라 만두 육즙이 증발하고 있었다. “8분만 찌라”는 요리책의 조언을 깜빡했다. 육즙이 거의 증발된 만두를 베어물었다. 가람 마살라 향이 짭짤한 고기맛과 함께 입천장을 타고 코로 흘러들었다.

‘감싸다’라는 동사는 ‘흉이나 허물을 덮어주다’(국립국어원)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돼지고기를 굳이 다져서 굳이 채소와 버무려 굳이 밀가루 전병으로 감싸서 먹는 만두의 맛은, 말하자면 ‘비린내 나는 식재료여, 감싸면 괜찮다, 다 괜찮다’라며 흉이나 허물을 덮어주는 기묘한 위로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직장 때려치고 만두로드 기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만두는 비웃지 않을 것 같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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