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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남은 맛을 모른다. 이렇게 말한다면 주위 시선 아랑곳 않고 식당에 갈 때마다 수저나 포크보다 디지털카메라를 먼저 꺼내드는 숱한 맛집 블로거들이 발끈할지 모른다. 흥분 가라앉히시라. 내 얘기가 아니다. 미국의 저명한 음식저술가라는 메리 프랜시스 케네디 피셔라는 분의 주장이다. 좀 길지만 그의 책 (The art of eating)을 인용해보자.
“독신남들이 미식에 접근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성적(Sexual)이다. 79살 밑의 독신남 가운데 예쁜 여성을 위한 식사가 아닌 한 괜찮은 끼니를 만드는 수고를 감수할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의 최음제적인 측면을 의식적으로 고려하는 독신남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잠재의식에서는 가능한 한 티나지 않게 그들의 성찬을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 (여성과의) 동침으로 이끌어줄 온갖 묘책을 사용하려 한다.”
요약하면 ‘독신남은 껄떡거릴 때만 제대로 요리한다’쯤 되겠다. 1908년에 태어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겪으신 이 누님(?)은 자신이 경험한 최악의 껄떡거림을 소개했다. 요리는 근사했고 술은 최고급이었다. 진짜배기 전문가들이 만든 요리가 한 상 가득했다. 남자는 자신의 취향이 아닌 피셔의 입맛에 맞춰 칵테일을 준비했다. 적당히 차게 한 티오페페(스페인의 식전주)를 홀짝이는 피셔의 눈앞에 촛불이 흔들거렸다. 은식기, 중국제 접시, 스웨덴제 유리잔이 보기 좋게 배치됐다.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되자 이탈리아의 키안티 와인이 제공됐다. 두 사람은 빵가루와 파르마산 치즈에 잰 송아지고기 요리를 먹었다. 밤하늘엔 별이 반짝였고, 남자의 갈색 눈동자도 반짝였다. 그리고 피셔는 그날밤을 최악으로 기억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남자는 메뉴를 짤 때 날씨를 고려하지 않았다. 가장 무덥고 습한 여름밤에 남녀는 뜨겁고, 기름지고, 위에 부담을 주는 식사를 했다. “입덧이라도 한 것처럼 구역질이 났다”고 피셔는 썼다. 또 한 가지는? “물론 가장 큰 실수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가 나를 즐겁게 하려고 계속 시도한 것이었다. 마치 아직 나를 유혹할 여지가 있고, 자신은 독신남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 둘 다 몇 달 전에 결혼한 몸이었다.”
말하자면 요새처럼 덥고 습한 날에 여자를 유혹하기에 현란한 파스타보다 복숭아 생과일주스 한 잔이 나을 수 있다는 거다. 집 근처 마트에서 한 개에 약 700원짜리 복숭아를 두 개 샀다.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긴 것까진 좋았지만 문제는 믹서였다. 2년 만에 찬장에서 꺼낸 믹서는 전역을 한 달 앞둔 병장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생과일주스 만드는 데 과도 하나로 충분했다. 5분간 쉴 새 없이 칼질을 했더니 과육이 점점 작아졌고 즙이 배어나왔다. 물을 좀 섞고 얼음을 띄웠다. ‘이런 주스로 누굴 꼬인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든 것 외엔, 그럭저럭 마실 만했다.
여자를 유혹할 때 고려해야 할 날씨와 메뉴의 관계에 대해 궁금한 독신남은 나 말고 피셔에게 문의하시길. 아 참, 1992년에 돌아가셨으니 답신은 어려우시려나.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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