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무슨 죄가 있나, 죄지은 놈이 나쁜 놈이지.” 동어반복 같지만 묘한 통찰이 있는 이 영화 대사(1997년 )에 고개를 주억거린 사람이 꽤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닭강정이 무슨 죄냐, 닭강정을 한식이라고 떠드는 인간이 죄지”라고 항변하고 싶은거다. 한식이든 아니든, 닭강정은 사실 맛 좋은 어린이 간식이다.
마트에서 다듬어진 닭가슴살과 물엿 대용이라는 올리고당을 미리 사뒀다. ‘다음 미즈쿡’에서 조리법을 참조했다. 가슴살은 한입 크기로 썰었다. 작은 그릇에 썬 닭고기를 담은 뒤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간이 배어들도록 주물럭거렸다. 밀가루를 뿌렸다. 가슴살이 촉촉해 밀가루옷을 쉽게 입힐 수 있었다. 그새 프라이팬에서 올리브유가 틱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고기는 금세 익기 시작했다.
강정은 찹쌀가루, 꿀, 엿기름, 참기름으로 튀겨 만든 한과다. 이나 육당 최남선의 에 강정은 소개되지만 닭강정은 언급되지 않는다. 해방 이후 닭튀김이 변형된 것 같다. 닭튀김이 닭강정인 이유는 오로지 소스 때문이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넣었다. 마늘향이 피어오르자마자 고추장과 올리고당을 넣었다. 물을 부어 묽게 만들었다. 적당히 되직해진 소스에 튀긴 닭을 넣어 다시 한번 살짝 볶았다.
모양은 그럴싸했다. 다만 밀가루옷이 너무 얇아 입안에서 ‘바삭’하고 부서지는 식감은 없었고, 고기를 지나치게 익혀 뻑뻑했다. 고기의 실패를 맵고 다디단 소스가 덮어주었다. 매운 자극에 통각이 마비된 혀는 다시 물엿의 단맛 세례를 받았다. 매 맞은 볼기를 다시 아기의 혀가 애무하는 느낌?
2010년 4월 칼럼을 시작한 뒤 꽤 많은 요리에 도전했다. 대부분 실패했으며 가끔 먹을 만했다. 그러나 항상 즐거웠다. 도전기를 읽어줄 독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즐거웠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시나리오작가 로버트 매키의 문장을 재인용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없어 보인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시체를 목격한 일은 잊힐 수도 있겠지만 햄릿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에 의해 형식화되지 않은 인생 그 자체는 혼란스러운 경험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길거리 닭강정은 잊힐 수 있겠지만 ‘입만 살아가지고’의 닭강정 실패담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게다.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씨의 닭강정은?)
주말 섹션 esc를 떠난 뒤에도 계속 음식글을 썼다. 그러나 늘 요리보다 음식을 먹고 만드는 사람의 스토리에 더 이끌렸다. 맛있는 음식과 술이 그 자체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점점 굳어졌다. 미식이 그 자체로 스토리와 의미를 지닌다면, 영화 에서 마일스가 여자에게 차인 뒤 맥도널드에서 그랑크뤼(보르도 1등급) 와인을 햄버거와 함께 욱여넣던 장면이 그토록 처연했을 리 없다.
요리는 생존을 위해 영양분을 흡입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스토리가 만들어질 때 요리는 흡입 행위를 넘어선다. 저의 음식 도전 스토리는 오늘이 끝입니다. 당분간은 다른 스토리에 집중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매일 스토리 가득한 식탁과 함께하시길. 이왕이면 ‘화해’나 ‘연애’ 같은 스토리로(‘성공’이나 ‘세계화’ 말고요!).
※3월20일 저녁 뒤풀이 겸 독자들께 닭강정에 맥주를 대접할 예정입니다. 참석하실 독자분은 전자우편 주세요. 아무도 안 오면 저 혼자 홀짝.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고나무 기자의 ‘입만 살아가지고’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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