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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과 접시 배치의 미학

[KIN] [입만 살아가지고] 번외편-도전, 고등어조림 사진찍기
등록 2011-10-14 19:10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고나무 기자

한겨레21 고나무 기자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과 음식을 맛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다르다. 크게 다르다. 갓 내린 케냐 AA에서 기막힌 향을 시각적으로 온전히 보여주는 하얀 훈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면 푸드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게다.

2년 넘게 사진기자 선배의 어깨 너머로 음식사진 찍는 것을 봤다. 처음엔 귀찮았다. 엉성한 위성안테나처럼 생긴 접이식 반사판을 10분 넘게 들거나, 괜찮은 느낌이 나올 때까지 하릴없이 젓가락질하는 것을 좋아할 취재기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칼럼 사진을 찍으며, 그때 배웠던 앵글과 요령을 써먹고 있다.

가령 이번 칼럼 소재인 고등어조림은 어떤가. 다음 미즈쿡에서 조리법을 인쇄해 냉장고에 붙여놓고 음식을 만들어봤다. 알고 보니 고등어조림의 핵심은 멸치였다. 고등어의 핵심이 멸치라고?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하겠지만, 집에서 살림하는 남녀는 이미 다 아는 이야기다. 멸치, 다시마, 무, 대파, 버섯 등을 푹 고아 먼저 멸치육수를 낸다. 그 멸치육수로 고등어조림을 하는 것이다. 고등어조림의 기분좋은 짠맛은 맹물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으면 ‘아, 이래서 일본 사람들이 다섯번째 미각으로 감칠맛이 인정받도록 그렇게 노력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맛은, 고등어가 아닌 멸치에서 나오는 셈이다.

밥을 두 공기나 먹었으니 먹을 만한 맛인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10여 가지 식재료가 복합적 풍미를 내는 고등어조림을 어떻게 오롯이 시각적 이미지로 담아낼 것인가? 접시가 여러 개 있을 때는 종종 위에서 아래를 향해 찍는다. 각도는 수직이다. 음식의 양감보다 색감, 접시 배치의 미학 등이 담긴다(뭐 그러니까 내 생각엔). 그러나 이번엔 평범한 부감을 택했다.

충분한 광량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밝아야 식감을 자극한다. 이 칼럼을 쓸 때마다 서재의 스탠드를 부엌까지 가져오는 이유다. 빛만으론 부족하다. 음식에 그늘이 생기면 식감을 떨어뜨린다. 요리의 옆, 뒤, 아래를 밝게 해줄 반사판이 필요하다. 굳이 캐논이나 니콘의 반사판을 사지 않아도 된다. 반사판은,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된다. 나는 주방에서 쓰는 포일을 얇은 공책에 둘둘 감아서 반사판을 만들었다.

결론짓자. 필립 퍼키스의 와 브라이언 피터슨의 을 정독한 것 외에는 더 이상 사진공부 진도를 나가지 못한 나 같은 취재기자가, “좀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로버트 카파)라거나 “만약 당신이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것이고, 그 사람들의 영혼이 사진 속으로 떠오를 것이다”(스티브 맥커리)처럼 사진에 관한 멋들어진 아포리즘을 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마시라. 다만 “최소한 아는 건 지켜라”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독자들의 반문 차례다. 사진에 관해 이렇게 구라 친 녀석의 사진이 이따위였던 거냐? (실제로 이 칼럼 편집기자에게서 그런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쿨럭) 식욕에 눈이 어두워 대충 찍은 아이폰 사진의 처참한 결과를, 독자들은 보고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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