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난 기사에 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우아하게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무슨 얘기냐고? 742호 특집 기사 ‘기자들이 제안하는 실천21’에서 난 수다 떨기를 결심했다. 솔직히 한계를 느낀다. 수다 떨기라는 게 후천적 노력이 아니라 선천적 기질에 좌우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신윤동욱 기자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조근조근 대화를 이어갈 때마다, 안수찬 기자가 과격하지만 논리적인 말들을 토해낼 때마다 난 좌절한다. 이들은 타고난 수다쟁이다. 난 수다를 떨기 위해 일부러 준비한 멘트를 여러 차례 날리지만, 분위기만 ‘써얼렁’해진다. 단지 슬랩스틱코미디같이, 사투리를 쓰는 빠른 내 말투에 사람들은 재미있어할 뿐이다.
특집 기사가 나간 뒤 눈여겨본 기자가 있다. ‘고기 먹는 것을 줄이겠다’고 쓴 최성진 기자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피부의 소유자인 최 기자는 얼굴에 피어오르는 붉은 반점의 원인을 고기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고기를 줄이겠다고 결심했다. 최 기자는 “삼겹살을 먹겠다면 일주일에 1인분만 먹겠다”고 기사에 썼다. 웬걸, 최 기자는 최근 휴일에 삼겹살 600g(3인분)을 사서 집에서 혼자 쓰윽 드셨단다. 요즘도 금요일 밤 마감을 마친 뒤, 호프집에서 “아줌마, 여기 치킨 한 마리요”라고 큰 소리를 치는 기자가 있다. 돌아보면 최 기자가 입맛을 다시며 손을 들고 있다.
이순혁 기자는 카드를 끊었을까? 아니다 그었다. 그것도 많이. 이 기자는 ‘여군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 추적 보도로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이곳저곳에서 상금도 받았으니 한턱 내라는 얘기를 들었을 게다. 총각인데다 술 좋아하는 이 기자가 그런 유혹을 뿌리칠 리는 만무하다. 당연히 술값은 카드로 그었을 터. 지난주 그는 119만원이 청구된 카드명세서를 받아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교통카드를 제외하면 오로지 술값과 밥값으로 나갔단다. 심지어 이 기자는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내 옆에서 “카드가 먹통이 됐다”며 투덜거리고 있다. 너무 많이 그어 닳아서 그런 것 아닐까.
내 앞자리와 옆자리에 앉아 있는 기자들은 무소유가 아닌 무실천을 강조한다. 박용현 편집장은 여전히 회사 앞 호프집은 자주 드나들면서 탬플스테이는 안 가고 있다. 앞자리에 있는 이태희 기자 역시 찬물 샤워는 무더운 여름에야 할 것 같다. 옆자리에 있는 임주환 기자는 용산에서 자장면을 먹느라 오이도 낙조는 꿈에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임 기자 옆자리의 조혜정 기자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카카오를 먹느라 아직 치과에 가지 못했다. 꽃남 김현중이 치과 의사라면 당장 달려갈 텐데.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지? 금연이나 토익 900점과 같은 새해 결심은 잘 지켜가고 있는지? 새해가 한 달쯤 지난 지금, 다시 한번 점검해볼 때인 것 같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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