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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수진’을 넘어서겠어

등록 2007-11-23 00:00 수정 2020-05-03 04:25

뒤죽박죽 마감 인생 바꿔보려 이미지 컨설턴트를 찾아간 박수진 기자

▣ 글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이번주는 월요일부터 마감 상황이었다. 주말에 끝내기로 한 기사를 마무리하지 못해 집에서부터 키보드를 두드리다 출근 준비 시간은 10분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세수하고, 스킨·로션을 섞어 대충 바른 뒤, 바닥에 흩어져 있던 어제의 옷들을 주워입고 현관문을 잠갔다. 언젠가 건너편에 앉아 있는 한 선배의 “수진아, 너는 왜 그렇게 없어 보이니?”라는 한마디는 이렇게 분주한 아침 시간이면 늘 귓가를 맴돌지만 별 수 없다.

11월12일 출근길, 지하철 창문으로 비친 어수선하고 푸석한 머리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인생이 왜 이렇게 두서없을까.’ 원래 생각은 느닷없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두 달 전 미용실이 많기로 유명한 ㅇ여대 앞 ㅈ미용실에서 나름의 큰 돈을 투자해 머리를 만졌으나 돌아온 건 실소였다. 가장 사실적이어서 충격적이었던 비유는 “너, 만화 에 나오는 ‘포비’ 같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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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적댄다’와 ‘세련됐다’의 괴리

‘어기적댄다’ ‘포비 같다’ ‘마감 늦다’. 총체적 난국이다. 언젠가부터 나를 둘러싼 이 이미지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추구하는 ‘세련되다’ ‘당당하다’ ‘재빠르다’ 등의 이미지와 멀어지고 있었다. 점점 내 겉모습이 내면까지 지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도착해 나를 ‘포비’에 비유했던 이에게 진지하게 상의했다.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답답하면 이미지 컨설팅 한번 받아봐.”

실망감은 순간 기대로 바뀌었다. 인터넷 검색 끝에 1세대 이미지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정연아 이미지테크 연구소를 찾았다. 전화를 걸자 정연아 소장은 “자신을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며 일정을 잡았다.

이미지 컨설팅이란 겉으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요소를 직업, 성격, 체형을 고려해 ‘최적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얼굴 모양, 피부의 결과 색에 따라 의뢰인의 이미지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로 구분하고(표 참조) 그 이미지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색깔, 화장, 머리 모양, 옷 스타일을 진단한다. 다음으로 표정, 자세, 걸음걸이, 말투도 바로잡는다. 개인 토털 변신 서비스인 셈이다.

‘비포 전문 모델’처럼 꾸민 거냐고?

이미지 컨설팅이 반감을 사는 요소도 있다. ‘외모가 구축되면 내면도 바뀐다’는 이미지 컨설팅의 전제가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연아 소장은 “외적 이미지를 강화하면 긍정적인 내적 이미지를 끌어내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미지 컨설턴트인 우영미 플러스이미지랩 대표는 “첫인상의 80%를 좌우하는 것이 ‘외모’”라며 “사람들이 눈이 있는 한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의 상태에 국한한다면) 정말 어수선한 외모를 정돈하는 것이 쫓기듯 마감하는 습관과 어수선한 취재 동선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미지 컨설팅에 뛰어들면서 가진 의문이자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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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11월13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정연아 이미지테크 연구소를 찾았다. 정 소장의 첫 마디는 굴욕이었다. “‘애프터’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하고 오신 거죠?” 기사의 완성도를 위해 ‘비포 전문 모델’처럼 꾸민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비록 전날 밤 마감에 쫓기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술을 마셔 초췌하긴 했지만, 나는 기사의 진실성을 위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연구소를 찾았다. 오히려 이날은 신경써서 내가 좋아하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옷까지 골라 입었는데. 편한 운동화 대신 예의를 차려 구두를 신는 센스도 발휘했건만, 돌아온 말은 이랬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수진씨를 칙칙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장식 달린 그 구두는 청바지가 아니라 스커트에 어울리고요.”

이미지 진단 과정은 이렇다. 먼저 간단한 질문지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미지 지수를 체크한다. 내면적 이미지와 외면적 이미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어 첫인상, 얼굴 모양, 피붓결과 색, 머리 상태, 화장 스타일, 액세서리, 자세, 말투 등을 진단한 다음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정해준다. 정 소장은 “이미지 컨설팅은 성형수술처럼 사람을 완전히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지만 모르고 있는 잠재적 매력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서 있기만 해도 땀 나던 자세 교정

얼굴이 둥글고, 피부에 노란 기가 도는 나는 가만히 있어도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봄 사람’이라고 했다. 어울리는 색깔은 파스텔톤의 노랑, 연두, 주황색. 이날 내가 골라 입고 간 옷은 가을 색깔인 낙엽색이었다. 정 소장은 “봄 사람이 가을 옷을 입으면 칙칙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눈 사이가 심심하므로 뿔테 안경을 써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실제로 봄 색깔인 진홍색의 가는 뿔테 안경을 썼더니 이미지가 밝아졌다. 함께 간 사진 기자도 “훨씬 환해 보인다”라며 안경 쓰길 적극 권유했다.

종합진단을 통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밋밋한 현재의 상태에서 생기 있고 발랄한 이미지로 변신할 것을 조언받았다. 이른바 ‘단정한 맥 라이언’ 스타일이란다. 이를 위해 오렌지와 핑크톤의 색조 화장, 어깨 길이의 단발머리, 회색·감청색 계열의 재킷과 밝은 색깔의 셔츠를 입을 것을 권유받았다. 미소와 표정은 100점이고, 말투도 고칠 게 없다는 칭찬을 ‘가뭄에 콩 나듯’ 받았다.

자세 진단으로 넘어갔다. 내 치명타는 자세다. 평소 구부정한 어깨와 흐느적대는 걸음걸이는 “수진씨, 오늘 피곤해?”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보여”라는 주변의 반응을 자주 끌어냈다. 힘이 펄펄 넘칠 때도 그런 말을 들으면 참 난감했다. 정연아 소장은 “자세는 자신감과 직결된다”라며 “걸음걸이를 바꾸면 자신감도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방이 거울인 자세 교정실로 이동했다. 김아름 컨설턴트가 나를 맡았다. 먼저 ‘서기’ 자세. 거울을 등에 붙이고 똑바로 서 있어야 했다. 버스를 기다릴 때 이렇게 서 있으면 뭇 남성이 줄을 선단다. 가만히 서 있기만하면 되는데 등이 뻐근했다. 이제 몸을 곧게 편 이 느낌을 기억한 채 걷기로 들어갔다. 다리를 앞으로 뻗을 때는 발 앞에 공이 있다고 생각하고 공을 밀어내는 느낌으로 뻗는다. 발이 땅에 닿을 때는 발꿈치 대신 발가락부터 땅에 닿아야 한다. 앞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 뒷발을 떼면 안 된다. 수많은 주의사항을 실천하려니 몸이 휘청거렸다. 네 박자에 맞춰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진땀이 났다. 옆에서 학처럼 고고하게 시범을 보이는 김아름 컨설턴트에게 주눅이 들어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두 시간에 걸친 이미지 진단과 자세 교정을 마쳤다. 보통 이미지 컨설팅은 2회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미지 진단 뒤, 필요한 부분을 추가로 교정받는다. 나처럼 걸음걸이가 이상한 사람은 걷기를, 발음이 문제인 사람은 발음 교정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선택에 따라 내용과 시간은 조절할 수 있다. 보통 1회 2시간에 20만~30만원 선이니 만만한 돈이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이미지 컨설팅을 하는 업체는 5~6군데가 있다. 외모·발음·자세 등을 전반적으로 진단하는 ‘종합서비스’ 제공 업체도 있고, 스피치, 면접, 비주얼 등 특화된 컨설팅을 하는 곳도 있다. 회사마다 주력상품이 다르다.

변신 다음날 돌아온 수진, 그래도?

이틀 뒤, 나는 머리를 자르고, 메이크업 전문가로부터 ‘발랄한’ 분위기의 메이크업을 받았다.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재킷도 꺼내 입었다. 다만 재킷 안에는 회색 목티를 입었다. 연두, 노랑, 주황 같은 봄 색깔 옷은 찾아보니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지 변화는 옷장 변화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완전히 변하려면 계절이 여덟 번은 바뀌어야 한단다. 회사에 오니 단박에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중 가장 참고할 만한 반응은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어?”였다.

역시나 그 다음날 나는 ‘비포’와 ‘애프터’의 중간 상태로 돌아왔다. 색조화장이라곤 립글로스가 전부였던 사람이 아이라이너를 눈에 그리고, 마스카라를 칠하고, 컨실러로 다크서클까지 가리는 ‘갖춘 화장’을 일상적으로 하기란 쉽지 않다. 케이블 방송에서 흔히 나오는 ‘길거리 습격. 깜짝 대변신’ 같은 리얼리티 쇼의 깜짝 주인공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화장은 졸업 사진을 찍기 위해 미용실을 찾는 대학생 같은 이벤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농담 삼아 던지던 평가와, 내 스타일에 대한 고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찰나에 받아본 이미지 평가는 일종의 ‘신호등’ 구실을 했다. 그대로 받아들이든 조절해서 받아들이든 무시하든 더 적극적으로 다른 스타일을 찾든 네 갈래 교차로에서 방향을 정해야 했다. 나는 조절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따뜻한’ 봄 사람이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이지적인’ 여름 이미지가 마음에 든다. 이럴 경우, 색깔에 가장 민감한 얼굴 아래에 봄 색깔을 배치하고 여름 스타일을 매치하면 된다.

변화된 외적 스타일은 나의 생업인 ‘마감 전선’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습관이 컨설팅 한두 차례 받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니다.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컨설팅을 받은 지 이제 이틀. 나는 여전히 채근받으며 마감 중이지만, 곧 ‘굴욕수진’을 넘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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