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여름, 이누이트의 사냥길에 따라나선 남종영 기자의 모험담…사수의 계속된 ‘헛방’만 쳐다보다 마침내 명중했을 땐 작살도 못 던져
▣ 배로(알래스카)=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탕! 또 헛방이다. 서른 번째 총탄까지는 세었는데, 이제는 몇 발째인지도 모르겠다. 물범이 우리를 향해 히죽 웃고 도망가는 것 같다. 어느새 발가락 사이엔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보트를 구하느라 뛰어다닌 게 며칠. 간신히 보트를 바다에 띄웠으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보트의 배터리가 방전됐단다. 다시 보트를 뭍으로 밀어서 자동차에서 전류를 공급받아야 한다.
차가운 북극해에 발을 적시고 손으로 보트를 밀었다. 그렇게 힘들여 나온 얼음바다인데, 이젠 사수가 말썽이다. 차라리 내가 쏠까? 온대 기자의 한대 체험은 이렇게 시련의 연속이었다.
무선 라디오는 마을의 공용 통신망
여기는 북위 71도18분 이누이트(에스키모) 소도시 배로. 2076km만 더 올라가면 북극점이 나오는 아메리카 대륙의 최북단 지점이다. 북극의 여름이 저무는 8월30일 오후 2시. 나와 사진기자 류우종 선배는 이누이트 리처드 파코닥 가족과 함께 물범 사냥을 하러 출발했다.
“안녕! 나는 리처드 파코닥. 우리는 지금 얼음바다로 나간다. 목적지는 72구역.”
리처드 파코닥은 보트에 매달린 ‘에스키모 무선 라디오’로 배로수색구조대에 보고했다. 이누이트 원주민의 모든 배와 자동차, 집에는 이렇게 무선 라디오가 있다. 이는 일종의 ‘원주민 공용 통신망’으로, 한 사람이 라디오에 대고 말하면, 수색구조대뿐만 아니라 배로의 모든 이누이트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출항 보고는 물론이고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해주세요’ ‘누구 집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소식도 전파된다.
물범 사냥대 선장은 리처드 파코닥(52)이다. 리처드는 4기통 야마하 엔진이 달린 보트를 운전하고, 사냥꾼을 통솔하며 안전을 책임진다. 부선장은 제넬 파코닥(46). 리처드의 아내다. 그녀의 직업은 생뚱맞지만 ‘이누이트 복음성가 가수’다. 알래스카 전역의 교회를 돌아다니며 찬양하는 제넬은 “새로 낸 음반이나 한번 들어보라”며 CD 2장을 건넸다.
총잡이는 파코닥 가족의 이웃인 론 사가나(40)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매그넘 총 5정 중 알맞은 1정을 골라 물속에서 튀어오르는 물범을 명중시켜야 할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 북극의 태양에 그을려 가무잡잡해진 얼굴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었다. 론은 북극의 찬바람을 맞으며 선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나와 류우종 선배, 이렇게 5명이 탄 보트는 오후 2시30분께 배로 앞바다의 해빙 지역에 다다랐다.
사냥법은 어렵지 않았다. 먼저 바다 위로 머리를 쑥 내밀고 있는 물범을 찾는다. 발견하는 대로 선장에게 보고하고, 선장은 보트를 재빨리 물범에 15m 정도 가까이 댄다. 그리고 사수는 물범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쏜다. 학교 앞 문방구에 있는 두더지 게임을 상상하면 된다. 두더지(물범)가 튀어나오면 순발력 있게 망치(총)로 때려야 한다. 어영부영하다가는 기계(바다) 밑으로 도망간다. 물범은 아가미가 있는 어류가 아니라 폐로 숨쉬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일정한 주기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쉰다. 그러나 그건 찰나의 순간이다. 오늘의 ‘선발투수’ 론의 순발력과 조준력이 찰나를 잡아야 한다.
논산훈련소 사격 솜씨를 뽐내볼까
나에게는 물범이 총에 맞으면 재빨리 작살을 물범에게 던져, 작살이 꽂힌 물범을 보트 위로 끄집어내는 일이 맡겨졌다. 부선장 제넬은 “총 맞은 물범에 재빨리 작살을 꽂지 않으면, 물범이 이내 가라앉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으라”고 명령했다. 물범을 잡기 전까지는 망원경으로 사방을 관찰한다. 류 선배에게도 같은 임무가 주어졌다. 그는 망원경 대신 망원렌즈로 물범을 찾기로 했다.
“전방 2시 방향!” 첫 물범을 발견한 제넬이 소리쳤다. 리처드는 전 속력으로 보트를 몰아 달렸다. 하지만 물범은 이내 사라졌다. 사라진 물범이 이번에는 정반대 쪽인 6시 방향에서 나타났다. 보트를 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총을 쏴보지도 못하고 허탕.
“전방 9시 방향!” 두 번째 물범. 탕! 론이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하지만 총알이 튀긴 물살은 물범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솟구쳤다.
“전방 11시 방향!” “이번엔 큰 놈이다. 5시 방향! 턱수염바다물범(bearded seal)이야.” 물범들은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머리를 바다 위로 내놓았다. 하지만 3~4초 있다가 바다 밑으로 다시 사라졌다.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론은 항상 한 발짝 늦었다. 열 번째 혹은 열다섯 번째에서 론은 심지어 탄창을 갈아끼우다가 물범을 놓치기까지 했다. 류우종 선배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야, 봐! 내가 찍은 건 다 초점이 맞았잖아. 만약 이 카메라가 총이라면 저 물범들을 다 맞춘 거라고.”
북극의 차가운 바람에도 론은 표정없이 총만 겨누고 있었다. 온도는 영하로 떨어졌다. 사냥을 시작한 지 4시간째, 이미 저녁이 되었다. 출발 전 “물범 서너 마리는 기본, 덩치 큰 바다코끼리를 노려보겠다”던 제넬이 겸연쩍은 듯 “커피 한잔 마실래?”라고 물었다.
론은 커피도 사양했다. 배가 워낙 상하로 흔들리니까 물범 맞추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야. 차라리 내가 쏜다고 할까. 재밌어 보이기도 하는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알래스카까지 와서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하는데, 물범은 잡아야 하지 않겠나? 이래 봬도 논산훈련소에서 첫 사격훈련에서 일찍 다 맞추고 내무반에서 쉬지 않았던가.
‘탕’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총을 내던진 론의 손에 작살이 잡혔다. 작살은 직선으로 내리 물범에 꽂혔다. 그러더니 물범은 작살에 끌려 보트 위로 올라왔다. 순식간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허둥대다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보트 위로 끌려온 놈은 밝은 회색 털로 고리가 촘촘히 새겨진 고리무늬물범(ringed seal)이었다. 길이 1.5m. 총알은 놈의 뒤통수를 관통해 어디론가 사라졌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고리무늬 가죽과 갑판 위를 시뻘겋게 물들였다. 호두알만 한 놈의 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촉촉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론은 그제야 검은 선글라스를 벗고 살짝 웃었다.
“배로 마을은 너무 남획하는 것 같아요”
바다 포유류 사냥은 원주민에게만 허용된다. 미국은 1972년 제정된 ‘해양포유류보호법’에 따라 고래를 포함한 물범, 바다사자, 해달 등의 사냥과 상업적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물범 앞 30m 근처에 접근해서도 안 된다. 다만 이누이트, 알류트족 등 소수 원주민이 생계 목적으로 사냥하는 것은 허용된다. 예를 들면, 나는 원주민들이 직접 요리해 권한 물범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사냥대 보트의 키를 쥔다거나 총을 쏘면 체포될 수 있다.
“바다 포유류 사냥은 이누이트 삶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봄과 가을에는 고래를 잡고, 나머지 기간에는 물범이나 바다코끼리를 잡지요. 잡아온 건 모두 집안에서 고기를 발라 친척들과 나눠먹어요. 상업적 거래가 금지돼 있으니까요.”
론은 이렇게 말하고는 입에 물을 가득 머금었다. 그리고 잡힌 물범의 입을 벌려 입 안에 있는 물을 쏟아냈다. 론은 “죽은 물범이 다시 바다로 돌아와 살라는 기원”이라고 말했다.
이누이트의 바다 포유류 사냥은 생계와 스포츠의 경계선상에 있는 듯 보였다. 이누이트들에게 물범은 일주일 먹을거리와 수공예 재료로 쓰이지만, 사냥 그 자체로도 훌륭한 레저였다. ‘업무’ 목적으로 갔다가 구경만 하고 온 나로서도 두더지 게임보다 100배 이상은 흥미진진했으니까. 생계 목적이 49%라면, 레저 목적이 51%라 할까. 아님 그 반대거나. 다른 이누이트 마을인 카크토비크에서 만난 리처드 마누(25)는 이런 말을 했다. “배로는 좀 심해요. 여하튼 그들도 생명인데, 너무 남획하는 거 같아요. 내 친구는 지난 봄에 3주 동안 20마리를 잡았다고 자랑하더군요.”
그는 “나도 1년에 두 번씩 고래 사냥을 나가고, 가끔씩 물범이나 바다코끼리를 잡지만 배로 사람들은 너무 경쟁적으로 사냥한다”고 탐탁지 않은 듯 덧붙였다.
실제로 캐나다 북동부 뉴펀들랜드에서 이뤄지는 하프물범(harp seal) 포획은 세계적인 이슈가 돼 있다. 사냥꾼들은 하얀색 모피를 얻기 위해 하얀 털이 사라지기 직전인 생후 13일을 전후한 하프물범을 때려잡는다. 총으로 쏘면 가죽이 상하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는 매년 쿼터를 설정해 사냥을 허용하고 있는데, 올해는 32만5천 마리를 허가했다. 하프물범 사냥은 꽤 산업화돼, 캐나다 정부는 “2003년 4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경제적 가치가 큰 산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름다운 하얀색 모피뿐만 아니라 지방층에서 추출되는 ‘오메가3 오일’이 건강식품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동물단체는 “동물 학살”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물범 음경은 한국 기자 양반이?”
이튿날, 제넬과 나는 물범을 해체했다. 6시간 동안 잡은 게 한 마리가 전부인지라,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미끈미끈한 물범을 집안으로 옮기자, 제넬이 반달형 이누이트 전통 칼인 ‘울루’로 물범의 배를 일자로 갈랐다. 이어 물갈퀴로 밖에 보이지 않는 네 다리를 떼어내고, 가죽에 붙어 있는 지방을 벗겨냈다. 제넬은 갈비에서 살을 발라낸 뒤, 대장을 제외한 내장을 차곡차곡 분류해 그릇에 담았다.
“어제 나도 사실 조마조마했어. 한국 기자들까지 데려왔는데, 공치면 어떡하나. 사실 론은 수습 사수야. 이누이트와 중국인 사이에 태어나 본토에 나가 살았는데, 돌아온 지 몇 년 안 됐지. 아마 이번 잡은 물범이 처음일걸.”
제넬은 고기의 대부분을 친정아버지에게 갖다드린다고 한쪽에 치워놨다. 지방은 잘게 썰어 얼린 뒤 제넬네가 먹기로 했고, 맛있다는 간은 ‘수습 사수’ 론의 차지가 됐다. 마지막으로 도라지 뿌리 같은 음경이 남았다.
“물범을 잡으면, 소문을 듣고 금세 피자 배달부가 찾아와. 한국에 가서 판대나. 지난번에 20달러를 받고 판 적이 있어. 기자 양반이 가져가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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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범, 물개,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바다소, 바다호랑이, 해달….
위의 동물들 중 존재하지 않는 건 뭘까? 헛갈리지 마시라. 바다호랑이는 애초에 없는 동물이다. 바다소(stellers sea cow)는 베링해에 서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1741년 발견 뒤 남획으로 27년 만에 멸종됐다. 바다소는 현재 아마존강이나 서아프리카 연안에 서식하는 듀공의 친척뻘 되는 동물로 추정되는, 5천kg에 달하는 엄청난 몸무게를 지난 온순한 초식성 동물로 전해진다.
물범(바다표범·seal), 바다사자(sea lion), 바다코끼리(walrus)는 모두 기각류에 해당한다. 지느러미(기)처럼 생긴 발(각)이 있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물범과 바다사자는 비슷하게 생겼다. 다만 바다사자에는 작은 귓바퀴가 있다. 물범이 일부일처제인 반면 바다사자가 일부다처제라는 점도 흥미롭다. 큰 몸집에 큰 코와 상아를 가지고 있다면 바다코끼리다.
배로의 이누이트들이 사냥하는 기각류의 대부분은 물범과의 고리무늬물범이다. 운이 좋은 날은 덩치 큰 물범과인 턱수염물범과 바다코끼리과인 바다코끼리를 잡는다. 턱수염물범의 가죽은 이누이트의 전통적인 고래잡이 배인 ‘우미아크’를 만드는 데 사용되고, 바다코끼리의 상아는 각종 장식품을 만드는 데 값진 재료가 된다.
그럼 물개(fur seal)는 뭘까. 흔히들 동물원에서 열리는 행사를 ‘물개 쇼’라고 부르는 것처럼 기각류를 물개로 통칭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물개는 바다사자과에 속한다. 바다사자과는 북극해에 사는 스텔라바다사자와 캘리포니아바다사자, 그리고 물개 등으로 나뉜다.
길이 약 1.3m의 해달(sea otter)은 식육목 족제빗과에 속한다. 수달이 내륙 하천에 산다면, 해달은 바다에 산다. 해달 또한 18~19세기 모피 사냥으로 멸종 위기를 겪었고, 알류샨열도와 알래스카 남부에 소수가 서식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바다에 사는 포유류다. 바다 속이 주 활동무대이지만, 가끔씩 수면 위로 나와 숨을 쉬어야 한다. 그래서 휴식처인 해빙(빙산)이 있는 북극권이 주서식처이다. 저위도 지방에 사는 무리도 있다. 점박이물범(spotted seal)은 한국 백령도에서 여름을 난 뒤 바다가 어는 중국 랴오둥만에서 겨울을 나는 무리가 있다. 1940년대에는 8천 마리에 육박했으나, 중국에서 밀렵이 성행해 지금은 350~400마리밖에 남지 않아 멸종 위기에 이르렀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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