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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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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숨쉬고 고맙게 먹으며 가볍게 걷는 길

등록 2007-06-29 00:00 수정 2020-05-03 04:25

서울 깍쟁이가 따라가본 ‘생명평화 탁발순례’ 먹고 자고 땀 흘리는 것의 행복이여

▣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툭하면 엄살이었다. 못 타는 자전거 타겠다고 하다가 넘어져 깨진 무릎이 며칠 뒤 술 먹고 넘어져 또 까졌다며 끙끙댔다. 싸우다가 ‘그’가 뱉은 말 한마디부터 일하다 들은 한마디까지 부여잡고서는 마음도 까졌다며 낑낑거렸다. 회사에서 탁발순례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왔을 때는 그렇게 나 자신의 엄살에 넌더리가 나 있던 때였다. 이놈의 몸, 고생 좀 해봐라 하며 앞뒤 생각지 않고 길을 나섰다.

6월18일. 사진기자 선배와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춘천. 강원도청 앞마당에서 ‘강원도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여는 마당이 벌어졌다. 이미 지난 2004년부터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해온 순례단이 강원도 순례를 시작한다는 ‘신고식’이었다. 밀양·대구·강릉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과 강원도민들이 함께했다. 춘천에 산다는 작가 공선옥씨, 춘천환경운동연합·북한강생명포럼 등 각종 단체에서 온 참가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전쟁 피해자를 추모하며 평화의 길을 걷는 ‘스톤워크 코리아 2007’ 참가자인 일본인들도 여는 마당에 함께했다. 그들은 휴전선을 향해 가는 길에 탁발순례단과 마주친 셈이었다. 여는 마당 행사가 끝나고 두 단체는 다시 서로 갈 길을 갔다.

“얻어먹고 다니는 탁발순례는 자본주의의 반생명성·비인간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이지요.” 도법 스님을 순례단장으로 한 순례단은 이제 강원도 순례를 마치고 나면 대한민국 땅에서 서울·경기·인천 지역을 빼고는 다 돌아본 셈이란다. 춘천의 뜨거운 태양이 그대로 내리쬐는 잔디밭 위에서 우리는 둥글게 둘러앉아 ‘생명평화100배서원’을 했다. 말 그대로 절을 100번 하는 것. 예전엔 108배 한 번 하고도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순례에 참가한 2박3일 동안 매일 아침·저녁, 행사의 시작과 마무리마다 100배를 하는 것은 꽤 괜찮았다. 다만 이제 막 자리잡은 무릎의 딱지들이 투덜댈 뿐이었다. 춘천 봉의산 걷기 순례를 하고(봉의산은 한림대 캠퍼스다) YWCA에서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강연회’를 마친 뒤 천태종 삼운사에서 마련한 ‘절밥’을 얻어먹었다. 잠은 김병준·정영숙 부부가 제공한 그들의 아파트에서 잤다. 생각보다 지역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잘 먹고 잘 잔 하루였다. 내일은 홍천으로 향하는 날, 저녁 뉴스에 ‘홍천 36.1도, 전국 불볕더위’라는 보도가 나왔다. 헉!

6월19일 화요일 날씨: 너무 쨍쨍

“처음 탁발순례 시작할 때는 정말로 무작정 걸어다니면서 얻어먹고 얻어잤는데, 그렇게 하니까 뭐가 안 돼. 주민이나 농민과 모여서 얘기 나누기도 그렇고. 그래서 이제는 준비팀이 미리 어디서 얻어먹고 자고 할 건지 미리 섭외해두고 지역 분들께 연락도 미리 하고 하는 거지.” 도법 스님은 그렇게 말했다. 수지행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준비단이 사전작업을 해놨어도 강원도 탁발순례 진행을 맡은 이문희(37)씨는 정신이 없었다. 그 역시 충북 순례에 동참했다가 주저앉은 뒤 ‘중책’을 맡은 터였다. “시작하는 날엔 행사도 손님도 많다 보니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 순례에만 전념하면 되니까 좀 정신이 든다”고 했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도 춘천에서 홍천으로 가는 길, 홍천 주민들에게 다시 연락을 해보느라 분주하다.

홍천 주민들과의 ‘접선 장소’는 잣고개. 4년간 순례단을 따라다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차를 함께 타고 홍천 잣고개에 도착했다. 역시나 태양은 뜨거웠다. 그곳에서 홍천군청까지 걸었다. 걷는 길에 마주 오는 차를 향해 순례단원들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쑥스러워서 손이 잘 안 올라가는데 한 여고생이 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힘내세요!” 이런다.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흔들다가 쑥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렸다. 홍천군청에 도착해 농민회장·여성농민연합회장·목회자 등 지역 분들과 함께 부군수와 인사를 나눴다. 화기애애하게 서로를 소개하다가 골프장 개발, 인삼 농사 장려 등 지역 문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주민이 원치 않는 개발은 안 한다”는 부군수의 말에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라. 현장에 좀 나와보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이어졌다. 땡볕 아래 농촌의 고단한 삶은 에어컨 바람이 ‘빵빵한’ 군청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했다.

다시 뜨거운 길 위에 서서 100배를 하며 홍천과의 첫인사를 마무리했다. 이어 저녁을 먹을 때까지 홍천 시내를 두 발로 ‘투어’했다. 도법 스님이 계신 실상사의 작은 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안재형(15)군도 동참해 순례단 식구가 하나 늘었다. 사실 ‘외부 손님’부터 지역 주민까지 순례단 규모는 10명 안팎으로 유동적이다. 한참 걷고 있는데 갑자기 뜨끈한 느낌. 아, 이런.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여성 순례자들은 순례 기간이 길어지면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다. 안 그래도 전날 밤 잠들기 전, 여성 순례자들과 그 얘기를 했는데 결국. 순례단에서 잠시 이탈해 근처 슈퍼로 달려갔다. 생리대 하나를 사들고 계산하는데 내가 입고 있는 탁발순례단 옷을 보고 아주머니가 “아이고, 날도 더운 날 순례하면서 ‘이거’까지 해서 어떡해!” 하며 안타까워하신다.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기자와 홍천 대원슈퍼 주인 아주머니 사이에 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흑.

저녁을 잘 얻어먹고(콩비지, 정말 맛있었다) 홍천성당을 찾았다. 하룻밤 묵어갈 곳이다. 사실 ‘생명평화 탁발순례’의 순례단장이 도법 스님이라 불교적인 운동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나 생명과 평화가 보편적 개념이듯이 이 운동은 종교와 이념, 국가를 초월한 것이다. 그래서 첫날 천태종 절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음날 성당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 밤이 되자 성당 교육관으로 홍천의 농민들이 모여들었다. 밤이 깊도록 둘러앉아 농촌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간디 얘기도 나오고 쿠바 얘기도 나왔다. 한살림홍천군생산자연합회의 임광주 사무국장이 커다란 보리수 나뭇가지를 두 개 들고 와 훌륭한 간식거리를 제공해줬다. 따도 따도 열매는 참 많기도 했다. 도법 스님은 그 열매를 ‘파리똥’이라 불렀다. 100배를 마치고 자려고 하니 이불이 없단다. 다들 침낭을 꺼낸다. 순례자의 기본 자세가 안 된 기자는 침낭이 없어 어찌어찌 도법 스님의 겨울 침낭을 빌려 잤다. 침낭이 없는 다른 순례자도 함께 쓰느라 결국 이불은 없이 깔고만 잤다. 다음날은 콩을 심으러 일찍 떠나야 하니 6시 기상이란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6월20일 아침 6시, 100배가 시작됐다. 누룽지와 김치로 아침 요기를 하고 ‘북한쌀보내기’ 공동 경작지로 농활을 나갔다. 공동 경작지 한쪽에 땅을 빌려 주민들이 함께 콩을 심는단다. 한 손에는 모판을 들고 한 손에는 꽃삽을 들고 콩 심기에 나섰다. 이제 겨우 아침인데도 태양이 뜨겁다. 한 판을 다 심기도 전에 땀이 줄줄 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 도시의 깍쟁이가 흙 앞에 맥을 못 추는구나. 흙 속엔 돌이 왜 이리도 많은지. 이나마도 까만 비닐을 씌우기 전에 많이 골라낸 것이란다. 그래도 올해는 콩을 심을 수 있어서 다행. 다음해에는 이곳에도 땅주인이 인삼을 심을 거라고 했단다. 점점 뜨거워지는 태양이 미워질 쯤, 자꾸만 천둥 소리가 난다. 마른 하늘에 웬 날벼락인가 싶어 물으니 인근 군사 사격장에서 나는 소리란다. 1년에 200일은 저 모양이라고.

“새참 들고 하세요.” 반가운 소리에 달려가니 얼음 동동 띄운 콩국수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선 잘 안 먹던 콩국수를 한 그릇 다 비웠다. 냠냠. 원래는 태양이 뜨거워지기 전까지만 일을 하려다가 기왕 나온 거 갖고 나온 콩 모판을 다 심으려고 다시 일을 나섰다. 이렇게 기자에게 주어진 2박3일의 짧은 탁발순례는 끝나갔다. 얼마나 ‘탁발’의 정신에 충실했는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길 위에서 뜨겁게 호흡했고, 사람들과 웃으며 만났으며, 고맙게 얻어먹고 고맙게 잤다. 돌아오는 길. 다시 에어컨 바람이 ‘빵빵한’ 차에 몸을 실었다. 다시 서울이다. 사무실이다. 언제 그런 곳에 갔다왔는지 아득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그들은 강원도 어디쯤을 걸으며 낮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장마가 오는데 비옷은 장만했는지 모르겠다. 끝없이 소비하는 삶으로 돌아온 지금, 2박3일간의 가벼웠던 발걸음은 어느새 아련한 추억이다. (생명평화 탁발순례 관련 내용은 홈페이지 www.lifepeace.org 참조)

● 666호 주요기사

▶ 아시아는 넓고 살 것은 많다

▶ 늦장 노동판결, 피가 마른다
▶돈 없고 ‘빽’ 없다면 쇼를 하라
▶‘666호’라고 두려워 말라
▶질문하는 경영자가 성공한다
▶‘김대중 납치사건’풀리지 않는 의혹
▶시골의사 박경철의 주식투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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