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5월2일. 서울 마포구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이하 )와 이 만났다. 미국 뉴욕에서 넘어온 ‘힙한’ 버거 ‘쉑쉑’과 중소도시 생활협동조합의 슬로푸드가 만났달까. 웹과 모바일에 주력하는 가장 빠른 매체 와 일주일에 한 번씩 100쪽을 넘나드는 잡지를 생산해내는 가장 느린 매체 이 대선 개표방송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묘한 흥분과 불안이 버무려지는 자리였다. 김도훈 편집장이 “재밌겠다”로 아드레날린을 분비해놓으면, 길윤형 편집장은 “나는 잘 모르지만 열심히”로 불안을 유포하는 식이었지만.
좌판을 벌일 곳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이었다. 페이스북은 방송국이란 하드웨어를 갖고 있지 못한 매체도 상대적으로 진입이 자유로운 ‘1천만 명의 바다’다. 지하철에서 신문 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세상, 독자의 뉴스 소비는 지면보다는 웹, 그보다는 모바일로 이동해버렸다.
쉑쉑과 생협의 만남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최적화된 온라인의 ‘절대 강자’다. 페이스북 구독 기준인 ‘좋아요’가 62만8천여 명으로 (59만2천여 명)나 SBS의 (34만1천여 명)를 앞선다. 이 노하우는 미국 본사의 것이라기보다 가 한국 사정에 맞게 노력한 결과물로 보는 게 옳다. 길 편집장이 먼저 와 대선방송을 해보자고 결정한 데는 ‘배워서 써먹자’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무를 떠안은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동시간대 JTBC 등 여러 개표방송에 등장할 손석희, 유시민, 정봉주 등을 어찌 당해낸단 말인가. 동시 접속자 ‘0’의 치욕 속에 방송을 서둘러 끝낼 수도 있었다.
불안과 흥분이 버무려지니 ‘어찌 되겠지’라는 못난 생각이 불쑥불쑥 자랐다.
“하 기자는 방송 경험이 많으니까”라고 동료들은 말했다. 입사 이래 근근이 방송 출연을 해왔지만, 단 한 번도 방송이 해볼 만하다거나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가뜩이나 최근 “믿고 안 본(듣는)다”는 청취자가 늘어나고 있다. 불안이 흥분을 압도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아는지 이번 방송에 함께 출연하기로 한 김완 기자는 “하면 되죠”를 연발했다. 이렇게 되면 당해낼 도리가 없다. 의 다섯 에디터, 김수빈·원성윤 뉴스에디터, 김현유 소셜에디터, 이윤섭·윤인경 비디오에디터를 믿고 가보기로 했다.
은 지난해 4월 총선, 지난겨울 촛불집회 때 생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특히 총선 때는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가 도입 초기였기 때문에 우리 실력에 비해 결과가 좋았다. 한때 시청자 수가 1천 명 가까이 이르렀다. 당시를 호기롭게 ‘약 빤 방송’이었다고도 자평했다. 어디까지나 방송 인력 없이 몸으로 때운 가내수공업이었다.
그런 과 달리 는 매달 새로운 주제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중계해왔다. 물론 도 ‘가오’만큼 넉넉지는 않다. PD·작가·기술인력 등 수백 명이 동원되고, 컴퓨터그래픽에만 수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방송사들의 대선방송과는 차원이 다르다. 첫 만남 뒤 이틀이 지난 5월4일, 일단 홍보용 사진부터 찍었다. 수십 번을 촬영했음에도 나는 딱 ‘동네 이상한 형’ 같은 표정이 대표 사진으로 꼽혔다. 평소 같으면 그것만은 안 된다고 저항했겠지만, 그냥 받아들였다. 오명도 좋다. 한 사람이라도 더 끌 수 있다면.
5분 늦은 온에어… 창조주 저커버그 탓일까5월9일 대선일이 왔다. 모두가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에 모였다. 현장은 단출했다. 마이크도 한 대, 카메라도 한 대. 부동의 1위 예능 프로그램 처럼 각자에게 카메라가 붙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대가 저리 바삐 고개를 돌려가며 한 사람씩 원샷을 잡을 정도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보다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든 것은 위치였다. 아뿔싸, ‘센터’(!)다. 아이돌 그룹이라면 춤이든 노래든 원톱이 서는 곳. 그렇다고 지금 와서 물러날 곳은 없다. 어쨌거나 전쟁은 시작됐다.
은 원래 방송에 참가하기로 했던 3인(길윤형 편집장은 방송 시간 내내 스튜디오 밖에서 ‘시다바리’ 역할을 했다) 외에 ‘카카오’의 모바일 뉴스 플랫폼인 ‘1분’용 기사를 담당하는 1분팀(김서진·이은주 디지털 객원기자)이 함께했다. 방송 시간은 개표 시작 30분 전(저녁 7시30분)부터 ‘당선 확실’ 보도가 나올 때까지로 잡았다. 2번 홍준표 후보가 ‘골든크로스’에 성공했다는 가짜 뉴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급속히 퍼지는 상황인데다, 실제 50대 이상을 중심으로 보수층이 급속히 결집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언론사에 전해진 터라 상황은 가변적이었다. 제작진은 밤 12시가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실제로는 1번 문재인 후보가 압승했다).
7시30분. 온에어…, 였어야 하는데 시작과 동시에 사고가 났다. 큐 사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어 걸음 앞에서 노트북을 만지는 에디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뿐 아니라 와 의 웹과 모바일에도 방송 송출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것이다. 실무자의 실수라기보다 페이스북의 신통방통한 알고리즘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이용자가 체감할 틈도 없이 조금씩 이용 방법(정확히는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바꾼다. 이런 변화를 미리 고지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적응하도록 판을 다시 까는 것이다. 그 때문에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페이스북 창조주 저커버그님의 뜻에 알아서 적응하라는 것이다.
만약 페이스북이 한국 업체였다면 사용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그런 수준을 넘어선다. 언론사들도 거기에 적응하기 바빴다. 비디오에디터가 진땀을 흘린 덕에 일단 오케이 사인이 났다. 방송은 5분 늦게 시작됐다.
패널 5명이 나선 방송에 진행표(콘티)는 없었다. 방송 시작과 동시에 이번 선거의 의미와 새 정부의 과제를 간략히 정리하고 저녁 8시 투표가 끝나자마자 공개되는 KBS·MBC·SBS 3사의 출구조사를 바탕으로 얘기를 나누자는 것이 전부였다. 전쟁은 시작됐는데 손에 든 건 호미와 쟁기뿐. 한숨을 쉴 새도 없었다. 일단 달려 들어갔다.
강원국 전 연설비서관 투입에 반짝 특수방송 시작과 함께 나름 강수를 뒀다. 의 저자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투입된 것이다. 시작 전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겸양과 달리, 강 전 비서관은 대통령의 소통이 어때야 하는지를 막힘없이 늘어놓았다. 특히 15년 전인 2002년 12월 대선 당일 30분 전에도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에서 다른 비서진과 모여 앉아 있었다는 생생한 현장 묘사에는 진행자들도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시청자 수가 500명을 넘어 1천 명을 향했다. 이 정도라면 방송사의 물량 공세에 대응하기는 어려워도 ‘티브이’라거나 ‘방송’이라는 이름을 내건 온라인 매체는 넘어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물론 같은 시간 손석희 사장, 윤여정 배우, 유시민 작가가 출연한 ‘절대 강자’ JTBC는 이미 동시 접속자 수가 5천 명을 넘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강 전 비서관이 자리를 뜨자마자 수백 명이 이탈했다. 시청자, 특히 웹이나 모바일 접속자는 들어오는 속도만큼 나가는 속도도 빨랐다. 기다렸다 9시 뉴스를 시청하는 계층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시청자를 보면서 정말 방송사고 한번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간절함에 엉덩이가 들썩였다.
저녁 8시 투표 종료와 동시에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이에 앞서 출연자 각자가 이번 선거의 득표율 전망치를 내놨다. 김완 기자는 1번 후보의 절반에 가까운 압도적 승리를 점쳤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원성윤 에디터는 1번 후보가 절반을 훌쩍 넘길 것이라고 했다. 나는 1번 후보는 40% 아래, 2번 후보는 25% 이상, 3번 후보는 20%대로 전망했다. 지난해 총선방송 당시 새누리당의 과반 붕괴와 국민의당 40석을 맞힌 ‘과학’을 빙자한 촉이었다. 결국 내 옆을 지키던 김수빈 에디터가 내놓은 40% 초반이 정답이었다. 1번 후보는 개표방송 내내 30%대 후반의 득표율을 기록하다 결국 새벽에 40%를 넘겼다. 방송 중엔 ‘하어영 기자가 역시 정답’이라고 설레발을 쳤지만 결과적으로 그 예측은 틀렸다(두 손 모아 사과드립니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공개된 출구조사 결과는 1번 문재인 후보 41.4%, 2번 홍준표 후보 23.3%, 3번 안철수 후보 21.8%, 4번 유승민 후보 7.1%, 5번 심상정 후보 5.9%. 결과만 볼 때 이번 대선에서도 방송사 출구조사는 정확히 결과를 예측했다. 놀랍다기보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 그런 조사를 할 수 있는 방송사가 부러웠다.
‘아무말대잔치’에 접속자 50명 아래로시간이 흐르면서 떨어지는 시청자 수에 반비례해 출연자들의 말이 늘기 시작했다. 계통 없이 중구난방, 입이 풀린 것이다. “과반 득표가 돼야 안정적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불가능한 선을 설정하고 그것을 기준 삼아 문재인을 흔들어보겠다는 발상이다” “누가 어떤 평가를 하건 간에 이 정도면 압~승이다” 등 객관과 주관을 오가는 멘트가 넘쳐났다.
홍준표 후보의 20%대 득표에 대한 우려 등 우리가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는 동안 ‘뜨악!’ 동시 접속자 수가 50명 아래로 떨어졌다. 히든카드를 내밀었다.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보기 드문 고품격 인터뷰를 꺼내든 것이다.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미 국무부 한국과장과의 인터뷰. 그런데 인터뷰의 품격과 무관하게 연결이 불안정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기 어려웠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의 영국 BBC 인터뷰처럼 뒤에서 아이들이 등장하고 엄마가 데려가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해도 떨어져나가는 시청자를 잡기 어려울 것 같았다.
방송에서 영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음성이다. 한마디만 불안정해도 방송사고다. 시청자가 ‘어!’ 하는 순간 다음 문장을 놓치면서 문맥은 엉망이 돼버린다. 이러다가 두 자릿수도 위협받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시청자가 문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속도라면 0으로 수렴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보는 사람 없으면 기다릴 것 없이 마무리 인사를 하자며 배수진을 쳤다. 겉으로 웃었지만, 정말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믿을 것은 혈육밖에 없었다. 결국 전북 익산에 있는 형수님에게 카톡을 넣었다. 평소 안부 전화조차 하지 않던 사이였다. 어쩔 수 없었다.
“저 오늘 허핑턴이랑 대선 중계해요 ㅋ”
3분 뒤…, 까.톡.
“예, 기대됩니다~.”
마음을 들킨 양 민망했다. 6분 뒤, “다른 식구들은 티브이 보고, 저만 페북 보고 있어요.”
아, 이게 현실이었다. 혈육의 정마저 머물기 어려운 공간, 습관적 시청자를 잡을 수 있는 플랫폼인 텔레비전과는 달랐다. 중간에 30여 분을 쉬며 다시 심기일전했지만, 떠나간 시청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출연을 약속한 정치인들이 속속 어렵겠다는 말을 전해왔다(그 와중에 연결을 허락해주신 진선미·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께 감사드립니다). 곧이어 ‘당선 유력’ 보도가 나오고 문 후보가 자택을 나선다는 소식만으로도 그나마 남아 있던 시청자가 또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남은 시청자 수를 따져보니 직원 수보다 적었다. 밤 10시20분, “우리 기자들도 우리 방송을 보지 않는다는 슬픔”이라는 메시지를 단톡방 동료들에게 던졌다.
그래도 ‘3만 명’이 봤다이번 방송은 에 여러 의미에서 작은 성과를 안겨다줬다. 페이스북에서 방송은 조회가 3만 회, 는 5만 회를 기록했다. 고백하자면, 정기구독자보다 많은 수다. 이를 어떻게 잡지 구독과 연결할지 정리된 전략은 없다. 핑계를 대자면 조차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3만 명의 손길이 세상을 바꾸리라고 믿는다.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이 나온다. 눈물이 난다. (형수님을 포함해 열악한 환경임에도 시청해주신 시청자에게 감사드립니다. 의 방송은 쭉 계속됩니다. 씨유순!)
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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