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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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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간 오래 못가는 노동의 새벽

<한겨레21> 김기태 기자가 뛰어든 편의점 야간노동의 세계… 표정없이 기계적인 몸짓으로 계산하고 정리하는 사이 좀먹는 야간노동자의 몸
등록 2011-07-14 15:47 수정 2020-05-03 04:26

야간노동 이슈가 뜨끈하다. 최근 노동계에서 야간노동에 대한 관심이 달아오르고 있다. 충남 아산에 있는 현대차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의 노동자를 공장 점거 파업으로 내몬 이유도 쉼없는 밤샘 작업이었다. 지난 6월29일 국회에서 백화점·대형마트 노동자의 야간노동 관련 토론회가 열린 데 이어, 7월14일에는 민주노총이 같은 주제의 포럼을 연다. 7월 말에는 금속노조와 한겨레 사회정책연구소가 각각 비슷한 토론회를 계획하고 있다. 밤샘노동이 쌓아온 피로에 우리 사회도 서서히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태 기자가 밤샘노동에 참여했다. 수도권 한 유흥가의 편의점에서 나흘 동안 밤을 새웠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다른 업계 야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_편집자

» 기자가 일한 편의점 배경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다. 편의점 본사가 기자를 고용한 편의점주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한겨레21 정용일

» 기자가 일한 편의점 배경을 모두 모자이크 처리했다. 편의점 본사가 기자를 고용한 편의점주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한겨레21 정용일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이 매장에 아직 남아 있을까. 밤샘 ‘알바’의 희비는 재고 정리에서 시작된다. 밤 10시에 편의점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밤샘 알바는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 삼각김밥, 빵, 샌드위치, 음료 등을 따로 챙긴다. 먹을 만한 도시락이나 빵이라도 남으면 알바는 안심한다. 식대가 따로 없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도시락은 야근수당이고, 작업장 복지이고, 밤참이고, 휴식이다.

1분에 1명꼴로 몰려드는 손님들

그런데 오늘은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흔히 2500원짜리 ‘꼬마 돈까스 도시락’이나 햄말이 샌드위치, 아니면 맛없는 햄버거라도 남지만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기자와 함께 일하는 김윤종(21·가명)씨의 표정이 안 좋다. 그는 평일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이곳 편의점을 지키는 알바다. 말하자면, 기자의 선임이다. 선임의 말씀이다. “요즘 점장님이 도시락 주문량을 줄인 것 같네요.” 오늘은 그냥 유통기한 지난 빵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유흥가의 편의점은 밤 10~12시에 가장 바쁘다. 하루에 700~800명이 찾는 이곳에 이 시간대에만 100명 넘는 손님이 온다. 1분에 1명꼴로 손님이 찾는다고 보면 된다. 알바의 업무는 단순히 돈만 받고 물건을 주는 것이 아니다. 편의점의 카운터 계산기는 본사와 연결된 컴퓨터다. 알바는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 손님의 인상을 재빨리 파악해야 한다. 계산기에는 10개의 버튼이 있다. 고객을 어린이, 중·고, 젊은이, 중년, 노년 따위의 연령과 성별에 따라 나누어 표시한 버튼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쳐야 ‘돈통’이 열리고,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줄 수 있다. 본사에서 구매자의 성별·연령대를 분석하려고 고안한 방식인 듯했다. 따라서 알바는 고객이 젊은 여자인지, 중년 여자인지, 노인인지를 빠르게 가늠해야 한다. 물론, 정신없이 바쁠 때 알바들은 자주 이 절차를 무시한다. 손가락에 잡히는 대로 아무 버튼이나 누른다. 손님이 신용카드와 편의점 할인카드를 한꺼번에 들고 오면 알바의 손길은 더 바빠진다. 손님이 환불이나 반품까지 요구하면 일은 더욱 꼬인다. 바쁜 시간에 간결하고 재빠른 몸놀림은 알바의 생명이다.

‘담배 이름 외우기’는 초보 알바에게 닥친 첫 번째 시험이었다. 카운터 뒤쪽을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담배 가운데 손님이 원하는 하나를 찾아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첫날부터 그랬다. 밤 10시를 갓 넘겨 찾아온 여자 손님은 ‘에쎄 라이트’를 찾았다. 진열장에 ‘에쎄 순’과 ‘에쎄 0.5’, ‘에쎄 0.1’은 보였지만 유독 에쎄 라이트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난해 담배를 끊은 것이 처음으로 후회될 지경이었다. 손님이 들이닥치는 시간대에 한가하게 ‘담배 찾기 놀이’를 할 짬은 없었다. 알바가 버벅거리면, 손님들은 어느새 카운터 앞에서 길게 줄을 만들었다. 손님들은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성질 급한 이는 아예 카운터 너머로 팔을 내밀어 비죽 물건을 들이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알바가 헤매면 손님이 먼저 손가락을 들어 담배의 위치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좀 낫다. 더 골치 아픈 때는, 손님도 담배 심부름을 온 경우다. 서투른 알바와 손님은 알록달록 담뱃갑의 미로 속에서 같이 헤맨다. 시간이 뜸한 새벽 시간에 헤아려보니, 이 가게에서 파는 담배는 무려 106종이었다. 에쎄 담배만 11종이었다. 편의점 알바에 능숙한 윤종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척척 담배를 집었다. “손님들이 자주 찾는 말버러·던힐·팔러먼트·에쎄의 위치는 기억해두는 게 좋아요.”

106종 담배 이름 외우기

담배를 다루는 데 익숙해야 할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담배가 편의점의 ‘돈줄’이기 때문이다. 이곳 편의점의 하루 ‘구좌별 점검표’를 보니, 하루 매출 303만8360원 가운데 담배 판매액만 129만8100원이었다. 담배가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식품을 다 합한 매출(110만4425원)이나 주류 판매액(11만8790원)은 오히려 사소했다. 편의점 경험이 많은 윤종씨는 “다른 편의점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득세하는 시절에, 사람들이 굳이 편의점에서 비싸게 물건을 살 이유가 없었다.

» 편의점에서 '알바'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보낸다. 손님이 뜸해지는 새벽 3시가 넘어야 잠시라도 앉을 짬이 생긴다. 한겨레21 정용일

» 편의점에서 '알바'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보낸다. 손님이 뜸해지는 새벽 3시가 넘어야 잠시라도 앉을 짬이 생긴다. 한겨레21 정용일

0.5평 남짓한 카운터 공간에서 알바가 주춤하면 손님은 불편하다. 알바를 시작한 첫날, 저녁 시간 근무를 하는 민환(23·가명)씨는 잔돈 돌려줄 때 동전 집는 법부터 가르쳐줬다. 이치는 간단했다. 이를테면, 400원을 돌려준다면 100원짜리를 하나씩 집으면 안 된다. 동전을 한 손에 여유 있게 대여섯 개 집고 손가락 사이로 한두 개씩 떨어뜨린 뒤 손님에게 돌려주는 식이다. 이렇게 하찮은 요령이 반복되면서 일의 속도에 차이가 벌어진다.

지나친 친절도 금물이다. 첫날밤 중년여성 1명이 카운터 반대편 냉장고에서 “생수를 못 찾겠다”고 말을 건넸다. 카운터를 나와 냉장고에 가서 구석에 박혀 있던 생수를 꺼내줬다. ‘서비스업의 기본 자세’려니 생각했다. 카운터로 돌아와 또 민환씨에게 코치를 받았다. “그렇게 친절하면 안 돼요. 일일이 응대하다 보면 일을 못해요.” 이럴 때 민환씨의 방식은 이랬다. “손님, 거기 없으면 없는 거예요.” 몰려드는 손님을 마주하는 알바들의 생존법이었다.

무표정하게 손님을 맞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술 먹고 시비를 거는 손님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아르바이트 둘쨋날 새벽, 눈썹 짙은 40대 남성은 대뜸 말부터 놓았다. “야 알바, 앞에 파라솔 어디 갔냐?” 그의 손에는 맥주 2캔이 있었다. 윤종씨가 답했다. “원래 없었는데요?” 술 취한 손님이 눈을 부라리기 시작했다. “뭐, 장난치냐? 어제도 분명히 있었는데?” “제가 석 달째 일하는데 처음부터 없었어요.” “뭐야, 사장한테 전화해봐.” “사장님 전화번호 모르는데요.” 술에 취해 시비 거는 손님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특히 손님과 동행한 여성이 있으면 남자 취객들의 허세는 더 커진다는 게 윤종씨의 설명이다. 그럴 때는 참는 게 최선이다. “화가 나서 가슴이 쿵쾅거리고 팔이 부들부들 떨려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참아야죠.” 야간노동에는 감정노동도 함께 따랐다. 능숙한 알바일수록 표정은 없고, 몸은 기계적으로,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감정노동도 함께 따르는 야간노동

밤 12시를 넘기자 알바는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1분에 1명꼴로 오던 손님이 3분에 1명꼴로 준다. 그렇다고 일이 같이 줄지는 않는다. 이즈음이면 본사의 트럭이 도착했다. 트럭이 놓고 간 플라스틱 상자에는 상품이 그득하다. 오늘은 10박스가 도착했다. 상품 목록이 A4용지 4장에 그득했다. 사발면에 함께 먹는 꼬마김치와 우유 등이 상자마다 가득했다. 알바는 상자에 담긴 상품과 종이 목록을 일일이 비교한 뒤,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해야 한다. 상품을 진열하다가 손님이 오면 재빨리 카운터로 돌아오는 건 기본이다. 카운터와 진열대를 오가면서 곡예를 하다 보면 새벽 2시가 훌쩍 넘는다.

» 손님이 뜸한 새벽 4시 이후는 '알바'가 매장을 청소하기에 좋은 시간대다. 한겨레21 정용일

» 손님이 뜸한 새벽 4시 이후는 '알바'가 매장을 청소하기에 좋은 시간대다. 한겨레21 정용일

매장 진열대에 생긴 빈틈을 채우는 것도 일이다. 진열대에 모자란 담배를 채우려고 보루 포장을 뜯고, 보기 좋게 진열해야 한다. ‘워크인’에 들어가는 것도 일이다. 워크인이란 창고를 겸한 음료 냉장고를 말한다. 워크인의 바깥쪽은 음료 진열대로 쓰인다. 새벽에 편의점의 음료수 냉장고에서 캔을 집다가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 놀란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 시간에 편의점 알바들은 냉장고 안에서 음료 박스나 주류 페트병을 들고 씨름하고 있다. 더운 여름이라지만 반소매옷을 입고 냉장고 속에서 오래 작업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이곳 편의점의 음료 냉장고에는 크기와 종류를 달리하는 커피만 22종, 주류 38종이었다. 그만큼 군일이 늘었다.

새벽 시간에도 손님은 끊이지 않는다. 취객들 속에서 야간노동자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기도 한다. 새벽 3시40분,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한 중년 남자는 편의점 구석에서 아몬드맛 쿠키를 커피와 함께 꾸역꾸역 먹었다. 그의 시선은 창밖의 거리와 개인휴대단말기(PDA)를 오갔다. 호출을 기다리는 대리운전기사로 짐작됐다. 싸구려 과자는 그의 밤참이었다. 새벽 2시55분에 담배를 사러 온 50대 남성은 오른쪽 손목이 부어올라 있었다. 그는 이웃한 빌딩 청소부였다. 출근길에 들른 그는 손목을 가리키며 “넘어져서 손목을 다쳤다”라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부어오른 손목으로 빗자루와 대걸레를 잡고 사무실과 복도를 청소했을 것이다. 아침 6시30분에는 경비 옷을 입은 60대 남성이 사발면을 2개 사들고 갔다. 새벽부터 라면을 사가는 그의 등이 약간 굽어 있었다.

자존심이나 몸보다 더 귀한 돈

깊은 밤, 편의점 구석에 있는 현금자동인출기도 인기였다. ‘ATM 단박 대출’이라는 표시가 깜빡거리는 인출기 앞에 남자 두어 명씩이 함께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카드 18만원, 현금 17만원.” 윤종씨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편의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안마시술소 얘기였다. 현금 17만원이 안마의 대가만은 아닐 터다. 밤샘노동 시급이 5천원인 윤종씨는 안마 한 번 받으려면 34시간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을 가지 못한 윤종씨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저도 여자로 태어나고 얼굴 반반하면 돈 더 받는 그 일 하지 않겠어요?” 돈 때문에 학업을 접은 이에게, 돈은 어쩌면 자존심이나 몸보다 더 귀했다.

새벽 4시가 넘으면 편의점은 조용해진다. 10분에 1명꼴로 가게 문이 열린 뿐이다. 이때 알바는 청소를 한다. 가게 문을 열고 바닥을 쓸고 닦는다. 고무장갑을 끼고 사무실 공간을 청소한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가 붙은 1.5평 남짓한 사무실은 용도가 많다. 편의점에 설치된 4개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모니터할 수 있는 화면이 있다. 창고 구실을 하고, 알바들이 옷을 갈아입는 공간으로도 쓰인다. 알바들이 ‘도중집금’을 할 수 있는 금고도 있다. 도중집금이란 카운터에 쌓인 돈을 중간 결산해서 금고에 넣는 것을 말한다. “돈이 많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윤종씨가 설명했다. 금고의 문은 물론 열리지 않는다. 육중한 금고는 돈을 넣을 수 있는 구멍만 내놓고 있었다. 도중집금이 딱히 알바들의 안전을 위한 건 아닌 듯했다. 현장에서 만난 알바 3명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다. 카운터 계산기 모니터에는 ‘상황 발생시 안전요령’ 문구가 간혹 떴다. “화재·강도 등 상황 발생시 즉시 점주님께 연락하고, 연락이 안 되면 SC 또는 관리센터(1577-××××)에 연락합니다. 연락한 내용은 점주님과 SC 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습니다.” SC(Store Consultant)는 지점을 담당하는 본사 직원을 가리킨다. 안전요령에는 비상 상황 때 경찰이나 소방서에 연락하라는 말은 정작 없었다. 비상 상황에서도 본사가 브랜드 이미지만 신경 쓰는 동안, 시급 4천~5천원짜리 알바들은 안전의 사각지대로 밀려나 있었다.

새벽 5시가 넘었다. 밤새도록 부지런히 편의점을 오가던 윤종씨가 보이지 않았다. 찾아보니 사무실 한구석에 숨어서 빵을 먹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먹는 걸 보이기가 좀 그래서”였다. 끼니는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슈가 토스트’와 ‘카라멜 마키아토’엿다. 이게 윤종씨의 한 끼다. 기자도 하룻밤을 삼각김밥 하나와 요구르트로 때웠다. 기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이틀은 삼각김밥, 나머지 날들은 도시락으로 때웠다.

낮밤 바뀌고 환절기 감기 끊이지 않아

새벽은 그나마 알바들이 쉴 수 있는 시간대다. 간이 의자를 가져와서 카운터에 앉기도 한다. 같이 일하는 일바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윤종씨는 학교 다닐 때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눈치 빠른 일처리를 보면 실제로 영리했다. 대기업을 다니던 아버지가 주식으로 재산을 날리자 가세가 기울었다. 누나는 대학을 갔지만, 윤종씨가 대학 갈 돈까지는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고등학교를 다녔고, 학교를 마친 뒤에는 호프집과 편의점 등을 돌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앞으로 요리사가 되고 싶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막연할 뿐이다. “일단 군대나 다녀오려고요.” 야간노동이 젊은 몸에는 큰 무리가 아닌 듯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몸이 의식보다 더 예민했다. “그런데 예전에는 감기에 전혀 안 걸렸는데, 밤에 일한 뒤로는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려요.”

이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완(21·가명)씨는 대학을 중퇴했다. 어머니의 욕심대로 의대를 가려고 재수까지 했지만 공부에는 처음부터 마음이 없었다. 가까스로 들어간 요리 관련 학과도 스스로 그만뒀다. 작곡 공부를 해서 힙합 그룹인 ‘다이나믹 듀오’ 같은 뮤지션이 되고 싶다. 수줍음이 많은 동완씨는 학교를 그만둔 것이 부모님에게 죄스럽다. 그래서 돈이라도 벌려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밤샘이 영 몸에 맞지 않는다. 주말에 이틀을 일할 뿐이지만, 주중에도 불면의 밤은 길다. “이틀 밤을 새우고 나면 주중에도 낮밤이 뒤바뀌어서 엉망이에요.” 평일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아르바이트하는 대학 휴학생 민환씨는 그래서 아예 심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 시급이 700원이나 싸지만 주간 아르바이트를 고집한다. “몸이 심하게 축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침 6시30분을 넘어서자 윤종씨의 체력도 바닥났다. 카운터에 아무렇게나 기대서 쪽잠을 자기 시작했다. 주말에 근무한 동완씨도 카운터에 머리를 처박고 잠이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새벽 시간에도 손님이 끊기지는 않았다. 문이 열리고 종이 울릴 때마다 알바들은 자리에서 유령처럼 일어섰다가, 돈을 받고, 앉았다. 아침 7시가 지나자 고객은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바뀌었다. 삼각김밥과 우유, 요구르트를 찾는 이가 많아졌다.

철야 알바에게는 인수인계를 준비하는 시간이 왔다. 계산기에 있는 ‘인수인계’ 버튼을 누르고, 돈통에 담긴 5만원권부터 10원짜리까지 개수를 세서 계산기에 입력하면 결산이 된다. 이때가 알바들이 긴장하는 시간이다. 액수가 안 맞으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기자의 알바 둘쨋날, 2만7330원이 모자랐다. 그날 카운터에 기자가 섰다. 어리바리한 알바가 사고를 친 셈이었다. 시급 5천원짜리 알바에게는 타격이었다. 윤종씨도 안타까운지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별수 없었다. 기자의 지갑에서 2만7730원을 털었다. 주말에 알바하는 동완씨에게 얘기하니, 그도 이렇게 보탰다. “저도 처음 알바를 할 때 하루에 4만원까지 채운 적이 있어요.” 손이 둔한 알바들에게 하룻밤 노동만큼의 돈은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지기 일쑤였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우리나라 최저임금위원회가 정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4320원이었다. 또 근로기준법 적용지침을 보면, 야간근로 노동자는 통상임금의 150% 이상을 받도록 돼 있다. 낮에 일하는 민환씨가 받는 시급은 4300원이었다. 야간노동을 하는 윤종씨나 동완씨가 받는 시급은 5천원이었다. 어느 누구도 법과 지침이 정한 기준을 넘게 받지는 못했다. 기자 역시 이만큼 수당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권고지침에서는 야간근무 시간은 근무시간 가운데 간이수면 시간을 포함해 8시간 이내로 규정됐다. 편의점에서는 간이수면 시간도 보장되지 않았다. 근무시간은 10시간을 넘겼다. 기자가 접한 알바 3명 가운데 법규정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알바들은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한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시작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조사가 야간노동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밤샘이 야간노동자의 몸을 조금씩 허문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28일 밤에서 7월2일 아침까지 고작 4일 동안 밤샘한 기자 역시 이 기사를 쓰는 7월8일까지도 새벽 3~4시께 잠에서 깨어나 아침까지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불면노동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밤톨 같은 사례인 셈이다.

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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