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돈이 아니고 내 목숨이거든”이라며 울부짖는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뒤로한 채, 지난 5월 중순 면접을 봤다. (주)불곰 대부(이하 불곰). 업체 이름과 달리 (돈을 빌려주는) 대부보다는 (빌려준 돈을 받아내는) 추심을 주로 하는 업체다. 불곰은 불법의 영역에서 어슬렁거리는 미등록 업체다. ‘대부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에는 추심을 업으로 하는 경우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도록 돼 있다. 그러니 불곰의 추심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10평 남짓한 프랜차이즈 마트에서 남편과 하루 12시간 맞교대 노동으로 500만원의 일수(빌린 돈의 일부를 이자를 쳐서 날마다 갚는 방식)를 갚아나가는 40대 억척 아줌마부터 도박에 미친 실없는 대기업 회사원까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는 곳이기도 하다.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의 실상은 아무도 모른다. 그곳에서 법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미등록 대부업체에서 추심업자로 살았던 닷새, 가계부채가 1천조원에 이르는 시대인데 지난 3월 예정됐던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은 가계빚 1천조원의 실상을 보려고 그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번 주는 추심업, 다음은 대부업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업체명은 가명이다. 장소도 특정하지 않는다.
서울의 한 역사 앞 퇴락한 다방. 후줄근한 분위기의 다방에 어울리지 않게 말쑥한 고급 양복 차림의 40대가 들어섰다. 기자를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가 실패하고 대부업 쪽에 관심이 많아 일을 배우려는 돈 많은 집 아들”로 소개해준 전직 추심업자인 이 사장은 그를 ‘김 주임’이라고 불렀다. 이 사장은 김 주임과 2년 전까지 함께 일했다. 이 사장에게 김 주임이라고 불리는 이는 불곰의 김 사장이었다. 호칭은 힘과 서열에 맞게 조정됐다.
“출근은 다음주 월요일부터.”
김 사장은 ‘형님’의 각별한 당부 탓인지 기자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력서, 주민등록등본, 자기소개서 등 입사 때 흔히 제출하는 서류들은 생략됐다. 이 사장의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말이 모든 걸 보장하는 듯했다.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도 있는 추심업체에서 일해야 하므로 일반 기업체 취직 때보다 더 엄밀한 자격 요건을 필요로 해야 했지만, 현실은 상식과 달랐다.
집요하게, 추심 노하우 1번“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니 편하게 입고 오라”는 김 사장의 지시에 따라 양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었다. 출근은 아침 9시였다. 출근 이틀째, 첫 현장 근무였다. 긴장한 탓인지 약속한 지하철역 10번 출구를 찾기 쉽지 않았다. 출근길 구두굽 소리가 군무의 타악기 소리처럼 퍼졌다. 김 사장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시계를 보니 초침이 9시를 지나고 있었다. 김 사장은 “OJT(On-the-Job Training) 첫날에 지각이라니”라고 한마디 던지더니 곧바로 잰걸음으로 돌아섰다. 그는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 한 갑을 샀다. 그러곤 , 종류별로 가장 두꺼운 신문 세 개를 골랐다. 무료한 시간을 흘려보낼 때 함께 지낼 ‘벗들’이다. 건너편 빌딩 5층이 오늘의 근무지였다. 경비원이 경계하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김 사장의 싸늘하고도 매서운 눈매에 짓눌렸는지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김 사장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대부업이란 금전의 대부(어음할인·양도담보, 이와 비슷한 방법의 금전교부)를 업으로 하거나 채권을 양도받아 추심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것. 법 위반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미등록의 경우 가중처벌. 폭행·협박 등의 금지. 형법상 업무방해, 협박….’ 대부업법과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공정추심법)의 주요 조항을 머릿속에서 되뇌고 있을 때, 김 사장이 사무실 한복판을 가로질러 대표이사실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놀란 상대가 할 말을 찾을 틈을 주지 않았다. “오늘은 해결해주셔야지.” 김 사장은 한마디 뱉고는 바로 소파에 몸을 묻었다. 탁자에 발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잠든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 오셔도 드릴 텐데. 이렇게 하시면….” 그 회사의 대표이사는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사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표이사실 앞 사무실이 술렁였다. 직원이 50여 명은 돼 보이는 그 업체는 공황 상태에 빠져드는 듯했다.
1시간쯤 흘렀을까. “카드 막아준 지가 언젠데. 이러면 안 되지.” 김 사장이 고성을 지르자, 대표이사가 자기 방에 들어섰다. “(필리핀) 팔라우에 우리 팀이 가 있거든.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이 나면 투자자가 20억원을 내놓기로 했고. 100억원 펀딩은 식은 죽 먹기라고. 제품이 이미 나와 있어. 그러니까 하루만 봐줘.” 대표이사는 김 사장을 달래려 했다. 그가 진 빚은 530만원이었다. “씨발, 수십억원을 벌면 뭐해. 법인카드 함부로 긁고 못 막아서 쩔쩔매면 그게 사장이냐고.” 김 사장은 대표이사를 몰아붙였다. “보증 세워.” 김 사장은 이렇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김 사장은 아침에 산 3종의 신문을 샅샅이 훓고 나서 낱말풀이로 넘어간 상태였다. 점심시간인지 사무실 바깥이 술렁였다. 김 사장은 자장면 두 그릇을 배달시켜 신문지를 깔고 먹었다. 드디어 대표이사가 동업자인 한 임원과 함께 나타났다. 그 임원은 보증서에 자신의 인감(이라고 주장하는 도장)을 찍었다. 김 사장은 그제야 대표이사실을 나섰다. 자장면 두 그릇 값은 치르지 않았다. “이렇게 안 하면 못 받아. 한 번 할 때 집요하게.” 김 사장이 기자에게 처음으로 알려준 ‘추심 노하우 1번’이다.
추심은 연기다. 굳이 비유하면, 미국 프로레슬링과 비슷하다. 프로레슬링의 세계에 미리 짜놓은 각본과 달리 생과 사를 오가는 부상이 존재하듯이, 추심의 세계에도 가끔은 폭력이 난무할 때가 있다. ‘집요하게’가 포인트다. 추심업자에겐 노회한 연기이지만, 채무자 처지에선 오줌을 지릴 수 있는 현실적 폭력이자 공포다. 신입은 추심의 노하우를 이렇게 현장에서 보고 몸으로 익힌다.
2010년 한 해 동안 금융감독원 사금융애로종합지원센터에 접수된 불법 추심 민원 건수는 1136건이었다. 5년 전인 2005년(374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카드 대란’으로 불법 추심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2003년 접수된 760건의 1.5배를 넘어선다. 2009년 공정추심법, 신용정보법 등이 시행됐지만 불법 추심의 증가세는 꺾이지 않는다.
추심의 신종수법, SNS 신상털기사흘째, 첫날처럼 법원으로 출근했다. 채무자인 ㄱ씨의 550만원 빚을 해결하는 게 오늘의 일이다. 김 사장은 이미 지난달 ㄱ씨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다. “요즘은 채권회수 소송이 워낙 많아서 형식적으로 판결해줘. 채무자가 채권자와 다투지 않고 인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재판 신청을 하면 며칠 안 돼 판결문이 나와. 잘 봐두라고.” 김 사장이 기자에게 전수한 ‘추심 노하우 2번’이다.
법은 채무자의 권익을 위해 진전돼왔다지만, 법원에서는 여전히 채권자의 편의가 우선시되고 있었다. 법원의 ‘권위’가 실린 판결문으로 안 되는 게 없었다. 일단 판결문으로 채무자의 주민등록 초본을 뗐다. 주소가 적혀 있다. 주소를 확보한 다음 제3채무자인 은행을 상대로 채무자의 잔고가 얼마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것도 판결문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은행(계좌)이 5개라고 했거든. ‘돈이 없다’에 100만원 걸지.” 우체국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기업은행, 농협 등 5개 은행 통장의 잔고를 다 더하니 60원이다. 김 사장은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김 사장은 이미 ㄱ씨가 사는 아파트, 남편 직장, 시아버지 거주지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일부는 법원과 동사무소(주민자치센터)를 통해, 나머지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낸 것이다. 특히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불곰처럼 회사원이 많은 곳에 사무실을 두고 그들을 ‘주고객’으로 삼는 업체에 유용한 추심 도구가 된다. ‘신상털기’ 프로그램이 유용한 건 물론이다. 불곰은 ㄱ씨의 미니홈피로 결혼 사실을 확인하고 집주소까지 곧바로 알아냈다. 그 미니홈피를 연결해 인터넷으로 교류하는 친구나 친척 명단도 확보했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채무자는 추심업자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훤히 꿰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쉽게 무장해제당한다.
“아파트가 남편 앞으로 돼 있어. 남편이나 시아버지 찾아갈 것도 없어. 아파트를 압류하겠다는 전화 한 통이면 바로 토해내.” 김 사장의 능숙한 일처리는 기계적으로 계속됐다. ㄱ씨의 집안 가재도구를 압류하는 데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이 또한 심리적 압박용이다. ㄱ씨의 가족관계만 파악한 게 아니다. 채무의 쓰임새까지 파악했다. “생활비가 없다고 빌렸지만 실은 명품 산다고 카드 돌려막다가 우리한테 온 거야. 동산 압류도 편하지. 이런 경우는.” 김 사장은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는 듯했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채무자의 재산 확인, 재판 준비까지 마쳤다. 김 사장의 업무 처리는, 추심업계 용어로 이른바 ‘피를 묻히지 않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런 업무를 어떻게 익혔을까. 김 사장은 한 지점에만 200명이 넘는 추심 직원이 있는 대형 신용정보회사에 다니며 노하우를 익혔다. 재판 절차는 법무사나 변호사를 통해야 했지만, 현실에선 추심업체 직원들이 직접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변호사? 돈 받으러 다닐 때는 다 똑같아. 변호사나 나나 다를 게 없어.” 하지만 변호사나 미등록 업체의 추심은 불법이다. 김 사장은 합법적 일처리를 배워 불법의 세계로 들어왔다.
김 사장은 500건의 추심을 일간·월간·연간 계획표에 담아 현장과 법원을 오가며 진행하는 베테랑이다. 김 사장은 추심업이 주된 업무이지만, 대부분의 다른 대부업체처럼 전주(錢主)를 두고 카드 대납과 일수도 한다. 추심은 일부 신용정보회사에서 의뢰받은 것도 있고, 개인이 “떼인 돈을 받아달라”고 의뢰한 경우도 있다. 혼자 하기 어려운 추심은 협력업체와 공조하기도 한다. 수입은 불규칙적이다. 한 주에 한 건 정도 해결하는 경우도 있고, 대여섯 건이 한꺼번에 터지기도 한다. 한 업체의 대표이사실을 점거한 당일, 430만원짜리 건설업체 채권이 해결됐다. 김 사장은 성공 보수 86만원에 서류처리 비용까지 더해 모두 100만원을 받았다. 채권액의 23%에 이른다. 최근 3~4년 사이 건설 경기 악화로 건설업 관련 채권이 부쩍 늘었다. 대부분 금액이 커 대부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제3자도 헛구역질 난 공포의 30분김 사장이 해결하지 못하는(않는) 채권도 있다. 출근 나흘째 되는 날, 그 일을 경험했다. 김 사장은 “우리가 가급적 다 해야 하지만 말이야”라며 해결되지 않은 2천만원 채권을 들고 ‘○○캐피탈’ 박 사장을 만났다. “김 사장처럼 펜대 굴리믄서 일하믄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당가.” 박 사장은 호기롭게 김 사장을 타박했다. 둘 사이에 익숙한 장면인 듯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박 사장은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추심업자다. 박 사장은 식사 전 기도를 할 때 근육이 너무 발달해 손을 겨우 맞잡을 정도로 팔뚝이 굵다. “(두꺼운 팔뚝을 보고) 덤비지 말고 조용히 갚으라고 운동 좀 했재.” 박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폭력 사용도 불사하는 일종의 ‘해결사’다. 박 사장의 사무실도 오피스 타운에 있다. 말쑥한 고급 양복을 즐겨 입는 걸 빼면 일처리 방식은 김 사장과 180도 다르다. 박 사장은 평소 혼자 일하지만 필요할 때는 ‘동생’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김 사장이 해결하지 못한(않은) 채권은 추심업계에선 ‘악성 채권’으로 불린다. 놔두면 휴지 조각이다. 4년 동안 방문, 전화, 서류 통지 등 일반적인 추심 수단이 통하지 않았다. 김 사장은 “우리는 못(안) 하지만 박 사장이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에게 빚이 넘어왔다는 건, 추심업계의 단계 분류법에 따르면 돈이 존재하는 ‘세계의 끝’에 다다랐다는 뜻이 된다. 추심 ‘단가’도 다르다. 김 사장이 착수금을 받지 않고 20% 정도의 성공 보수를 받거나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데 반해, 박 사장은 착수금 200만원에 성공 보수가 (채권액의) 50%다. 못 받을 돈을 받아주는 것이니 많이 떼가는 것이다. 박 사장은 이쪽 업계에서는 유명해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구’로 활동한다. ‘무에서 피를 뽑아낼 수 없다’는 서양 속담보다 ‘마른 수건도 야무지게 짜면 물이 나온다’는 우리 말이 박 사장한테 더 잘 어울린다. 박 사장과 함께 김 사장이 인천을 찾았다. 채무자 집은 송도신도시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였다. 문을 뜯어낼 듯 두들겼다. 박 사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채무자 ㄱ씨가 문틈을 살짝 열자 박 사장이 바로 낚아채 집에 들어섰다. 온 집안이 술 냄새로 가득했다.
“원칙적으루다가 몸을 건들지 않는 것으로 허고. 대신 초장에 겁먹고 오줌 지릴 정도로 기를 죽여야 해. 덤빌 생각 못허게. 그래야 신고도 못허고 조용허게 진행돼. 일도 빨리 끝나고. 소리가 크게 나는 걸로 골라서 적당히 부술 게 있으면 부수고. 주로 결혼사진, 가족사진이 좋지. 강아지나 고양이도 좋고. 어찌돼도 재물손괴밖에 안 되니께.”
아파트에 오르기 전 박 사장이 농담처럼 건넨 몇 마디는 일종의 매뉴얼이었다. 박 사장이 기자에게 전수한 ‘속전속결 추심 비기’다. 3년을 넘게 끌어온 김 사장과는 달리 박 사장의 추심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박 사장은 손에 잡히는 많은 물건을 내동댕이치고 부쉈다. 당하는 처지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상관없는 제3자도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지금 이 상황을 내가 당한다면’이라는 상상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채무자 ㄱ씨는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엄두를 못 냈다. 사연을 읊조릴 뿐이었다. 어슬렁거리던 박 사장이 갑자기 돌아서서 집을 나섰다. “저 정도면 하느님도 못 받는다”고 내뱉었다. 사채가 얹히고, 카드로 돌려막다가 빚이 기하급수로 불어난 생계형 부채였다. “사업으로 진 빚으로 시작했나본데 저리 돼버렸네.” 박 사장은 이날 추심을 접었다. 박 사장한테는 예외적인 경우다. ‘해결사’로 불리는 박 사장은 이른바 ‘생계형 채권’을 취급하지 않는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추심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계형 채무자에 꼬이는 ‘똥파리’ㄱ씨처럼 생계를 위해 불법 추심 위험을 감수한 채무자 수는 얼마나 될까. 김 사장의 채권 목록을 들여다봤다. 분석은 불가능했다. 우선 대출 목적이 제대로 적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서류철은 돈을 받는 데 필요한 문서(주민등록등본, 판결문, 압류통지서류 등)로 최적화돼 있었다. “쌀 살 돈도 없어서 빌린 생계형은 최대로 잡아봐야 (500건 가운데) 30건이 되지 않는다”는 김 사장의 말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500건 가운데 건설·유통업에서 나온 것으로 분류 가능한 300여 건을 제외한 100여 건 안에 그 지독한 빚의 수렁에 묶인 사연들이 숨어 있으리라 추정할 뿐이다. “어쨌거나 그 정도라도 (돈을) 빌릴 곳은 우리밖에 없다”는 김 사장의 말처럼, 생계형 채무자들이 돈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은 일수나 카드 대납밖에 없었을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0년 대부업체 신규대출 자료를 보면, 생활비 충당을 이유로 고금리 대부업체를 이용한 경우는 43.3%에 이른다. 원래 생활비를 이유로 형성된 생계형 채권은 추심업계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아왔다. 품도 많이 들지만, 불법 추심업계에도 최소한의 상도의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생계형 채권을 뜻함)를 단체권(1만 건 단위로 사고파는 채권)으로 사는 업자들은 추심으로 돈벌기를 포기한 바보거나 채무자 피까지 빨겠다고 작정한 파리떼다.” 김 사장이 생계형 채권 추심에 매달리는 경쟁업자를 한 수 아래로 내려다보듯이 종종 하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업체끼리의 추심 경쟁이 격해져 이런 최소한의 상도의도 깨진 지 오래다. 영화처럼 ‘똥파리’가 판친다. 불법 추심 신고 사례가 급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닷새째. 하루 더 법원을 오가며 서류로 만난 사람들은 영업 능력이 모자라 빚만 떠안고 퇴출된 법무사, 병원비를 이유로 대출을 했다가 갚지 못한 40대 회사원, 생활비를 이유로 대출한 (김 사장이 “분명히 명품 사다 일 치르는 것”이라고 단정한) 20대 여성, 도박에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30대 회사원 등이다. 그들의 우편함은 채무 불이행자 등록 예정 통지서, 형사고소 확정통보(이른바 고소장), 법절차 대상자 확정통보, 유체동산·전월세 보증금 및 통장 가압류 확정통지, 재산관계명시 명령신청 예정통보 등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불곰에서 보낸 5월 중순의 닷새 동안 세상은 급증하는 가계부채의 원인을 두고 약탈적 대출, 불법 추심이라는 여론으로 들끓었다. 하지만 기자는 ‘불법 추심업자’로 일한 닷새 동안 금융기관이나 경찰 등의 감독·감시를 받은 적이 없다. 김 사장도 만에 하나를 대비할 정도의 주의만을 기울였다. 오랜 직업적 본능에서 우러난 ‘여유로운 조심스러움’이었다. 김 사장은 “나랏님은 우리 편이니 걱정할 것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실 불곰은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돼 있을 때도 영업 현황을 조사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불곰이 소재한 지자체에 담당자는 5명이 되지 않아 법에서 규정한 조사 업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대부업법에는 시·도지사가 ‘수시로’ 대부업자 등의 영업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매년 행정안전부 장관 및 금융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불곰을 떠나고 6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김 사장이 ‘혹시나’ 하며 걱정했던 가계부채 종합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김 사장과 박 사장은 평소처럼 분초를 아껴가며 일하고 있을 거고, 박 사장은 새벽기도를 절대로 거르지 않을 터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대부업체는 등록업체만 전국 1만4014곳에 이른다. 김 사장, 박 사장과 같은 미등록 업체들의 경우는 실체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 아래서 1천조원 빚에 눌린 서민 채무자들의 신음은 계속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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