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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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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식으로

등록 2006-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계삼

“살아가기 어려운 세월들이 부닥쳐올 때마다 나는 피곤과 권태에 지쳐서 헙수룩한 술집이나 기웃거렸다. 거기서 나눈 우정이며 현대의 정서며 그런 것들이 뒷날 내 노트에 담겨져 시(詩)가 되었다고 한다면 나의 시는 너무나 불우한 메타포의 단편들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정말 그리운 건 평화이고 온 세계의 하늘과 항구마다 평화의 나팔소리가 빛나올 날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하여 시는 과연 얼마만 한 믿음과 힘을 돋우어줄 것인가.”(김수영, ‘폭포’의 시작 메모, 1957년)

탐욕에 훨씬 가까운 말, 행복

반공포로 출신의 자유주의자 김수영도 이렇게 간절하게 평화를 갈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4년 뒤, 이승만 치하의 일이다. 일제 말기, 동생이 학병으로 징집되는 속에서도 만주에서 연극을 했던 사람,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미군 군의관의 통역을 하며 거즈를 개키던 사람,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기다리던 여인이 오지 않자 술을 억병으로 먹고 망가지던 사람, 그러고는 다음날 쓰라린 후회를 곱씹는 사람, 눈이 크고 부리부리한 시인 김수영, 그도 ‘시대의 우울’ 때문에 지칠 때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도 온 세계의 하늘과 항구마다 빛나는 평화의 나팔소리를 기다렸고, ‘나태와 안정을 뒤집어놓을’ 폭포 같은 직선의 의지를 갈구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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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행복하게 살자’ 이런 말은 무언가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잘 쓰지 않는다. 이 땅에서 ‘행복’이란 ‘자유’와는 한참 멀고, 돼지 같은 탐욕에는 훨씬 가깝다.

얼마 전에 노모씨가 제 사는 집으로 방송인들을 불러들여서 100분 동안 혼자서 토론이라는 걸 한 모양이다. 그의 웃는 낯을 볼 때마다 나는 좀 슬프다. 4년 전 선거 당시, 나로선 적지 않은 돈을 그에게 부쳐준 내 과오를, 주변 가족들까지 동원해서 그가 당선되는 데 미력하나마 기여했던 내 죗값을 이제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모씨도, 그 뒤를 이으려 목하 몸부림치는 ‘부르도자’ 이모 아저씨도, ‘수첩공주’ 박모 아주머니도, ‘면도기 사드리고 싶었던’ 손모 아저씨도, ‘안락’을 ‘행복’이라 믿는 그 누구도, 죄인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또 다른 우리이기도 하므로. 오직 죄를 물을 수 있다면, 너와 나, 반성하지 않는 자의식,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 ‘후안무치’만이 죄가 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또한 흠결 많은 인간으로 살면서, 피로와 권태로 지쳐 있을 때 50년 전 김수영처럼, ‘평화의 나팔소리’를 기다린다. 내게는 이런 일상이나마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김수영 시절에는 없었을 새로운 종류의 공포다. 이 세상과 관련한 모든 데이터들이 암울하다. 북핵 문제만이 아니다. 석유 생산이 정점에 달하고,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궁지에 몰린 세계 경제가 여기저기서 전쟁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따위의 폭력적인 계기로 제 살길을 찾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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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방향전환을 생각하고 저항을 꿈꾼다. 그것은 고단한 일이다. ‘가까이 가려면 천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어느 시인은 읊었지만, 우리는 날마다 죄의 길을 밟으며 간다. 가령, 이틀 만에 가득 찬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거함에 와르르 쏟아부으며, 좌절한다. 이게 대체 뭔가.

그 시절엔 없었을 새로운 공포

김수영은 이렇게 말했다. “… 중요한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이행이다 우리의 행동/ 이것을 우리의 시로 옮겨놓으려는 생각은/ 단념하라 괴로운 설사// 괴로운 설사가 끝나거든 입을 다물어라 누가/ 무엇을 보았는가 일절 말하지 말아라/ 그것이 우리의 증명이다”(김수영, ‘설사의 알리바이’, 1966년)

나에게 이 시대는 다들 터져나오는 설사를 겨우 참으며 견뎌가는 시간들, 우리는 꾸르륵거리는 속을 움켜쥐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괴로움의 이행, 행동이란, 설사의 알리바이에 다름 아닐 것인가. 막막한 세월, 평화는 어디에 있는가.

*‘이계삼의 노땡큐!’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 필자는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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