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한 아기를 보았다. 점심 때 늘 다니는 학교 앞 청국장집에서였다. 양푼에 쓱싹쓱싹 숟가락을 비벼대는 젊은 엄마 옆에서 아기는 강아지처럼 누워 있었다. 젖살이 뽀얗게 오른 손발, 먹머루빛으로 끔벅이는 눈동자, 온 얼굴을 무너뜨리며 짓는 웃음까지, 아기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노라면 사람이 세상에 나고 죽는 일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아기 앞에서 나는 근본주의자가 된다.
저들은 앞으로 어떻게 이 계절을 건널까
“몇 개월 됐나요?” 내가 물었다. “6개월요.” 젊은 엄마는 명랑하게 답했다. 이 아이는 2006년 2월에 태어났고, 한국 여성의 평균수명을 따른다면 대략 2080~2090년까지 이 세상에 거주할 것이다. 2090년, 이 숫자가 나를 아득하게 한다.
나는 올여름 언제나 지구온난화를 생각했다. 7월 중순에는 예년 강수량의 다섯 배가 넘은 ‘물폭탄’이 쏟아지더니 그 뒤로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채 혹서와 열대야가 이어졌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다들 에어컨 그늘에 피하는 것 같지만, ‘몸’으로 버텨야 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다. 손님도 없는 시장거리 좌판에서 시든 나물을 파는 노파,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후끈한 공기 속에 느릿느릿 생선 트럭을 모는 아저씨들을 나는 오후 두세 시 땡볕 아래에서 만난다. 저들은 앞으로 어떻게 이 계절을 건너갈 것인가….
우리 사회는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생태적 전환을 거의 포기해버린 것 같다. 7월1일부터 시판되고 있는 바이오디젤은 정유업계와 산업자원부의 ‘애틋한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국 BD 0.5(디젤유 99.5%, 바이오디젤유 0.5%)로 낙착됐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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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2편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만년 빙벽이 쉴 새 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나온다. 이 추세대로라면 북극의 빙하가 사라지는 날이 닥칠지도 모른다. 아마존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고 있고, 최근 유럽의 여름은 더워서 살 수 없을 지경이라 한다.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최고 기온과 강우량 등 기상 관측 기록들이 모조리 갈아치워지고 있다. 이 모두가 지구 평균기온이 0.6도 상승한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 추세로만 유지돼도 2100년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3.5도 상승할 것이라 한다. ‘가이아 이론’을 제창한 선구적 생태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지금은 열렬한 핵에너지 옹호자가 되어 있다는 소식이다. 그가 미쳐버린 것일까. 그는 지구온난화 문제가 너무나 시급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핵에너지로 전환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수업 도중에 지구온난화를 두고 이렇듯 침을 튀기는 나에게 아이들은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간단하게 답한다. “자동차를 타지 않는 길밖에 없다.” 내 단호한 답이 숱한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선진 산업국들의 후발국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와 다름없는 저 ‘교토의정서’ 따위보다는 한 사람이 자동차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가치로운 일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타고 가는 저 자동차의 석유가 이라크 민중의 목숨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 태워 없애는 이 석유가 결국 미래 세대들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임을 우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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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자동차 운전면허 따지 말거라
나는 어른 세대는 이미 틀렸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이 미증유의 위기를 직감하고, 익숙한 삶의 방식과 결별하기 위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없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다음 세대들은 다른 행성에서 살게 될 것처럼, 정신없이 쓰고, 먹고, 버리는 광란의 파괴만이 이어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 중 단 몇 명이라도, 수능이 끝나면 온 고3 교실에 물결치는 ‘운전면허학원’ 행렬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닐 것을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아이들은 내 서슬에 눌려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한다. 이런 주입식 교육이라니….
내가 지금껏 살면서 제일 좋았던 일은 내 아들을 낳은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밥집에서 만난 저 아기, 자라나서 초경을 하고, 연인을 만나고, 결국 임신과 출산 앞에 설 저 아기는 2100년 이후를 살아갈 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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