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연/ 소설가
신이시여. 바로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이 금하신 것만 골라 한, 우리 죄인들을 용서하소서. 서로 사랑하라 하셨으되 우리는 서로 다른 당신의 이름과 경전을 앞세워 서로 죽였습니다. 당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자들의 불행을 비웃고 내세까지 저주하며, 우리한테만 복 달라 빌었습니다. 당신께서 그럴 리 없건만 어떤 나라들만 지극히 편애하시는 듯이 보이는 까닭은, 인간들이 탐욕과 이기심을 당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했기 때문입니다. 내 탓입니다, 내 탓입니다, 내 탓입니다.
이슬람 여성 신도가 예배를 집전하자
세상은 아무래도 부족합니다. 2% 정도가 아니라 30% 또는 50%,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진리에 목말라 자기 앞의 경전에서 편견과 조작에 물들지 않은 신앙의 정수, 진정한 당신의 말씀을 찾으려 합니다. 그것은 어렵지 않지요. 사랑과 평화, 용서, 관용. 우리가 행동은 반대로 해도 입으로는 늘 간구하는 소망, 모든 종교와 종파, 경전이 공히 권하는 지침이니까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모든 경전의 공통점. 여자는 남자보다 죄가 많고, 더럽고, 열등하다. 그러면 이것도 당신의 뜻이겠지요.
얼마 전 미국에서 이슬람 여성 신도가 남자만이 예배를 집전할 수 있다는 율법을 깨고 예배를 이끌어, 이슬람권이 시끄럽다고 합니다. 죄악, 미친 짓, 이슬람교를 혼란시키려는 미국의 음모라는 말까지 나온답니다. 미국 대통령이 종교 전쟁이라 천명한 이라크 전쟁 와중이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지요. 그러나 여자가 예배를 집전하면 혼란스러워진다니, 그건 이슬람교의 문제 아닙니까. 반미 하나로 내부의 문제를 억누르니까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전도사로 설치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미국의 주도적인 종교, 개신 기독교 또한 여자에 관한 한 이슬람교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아직도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교파가 더 많고, 인정하는 교파들도 여자 목사는 소수고, 그 소수조차 목회 현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당신, 거룩한 신께서 여자를 인정하지 않으셨으니까요.
토라(유대교 경전), 성경, 코란이 이것만은 차이 없이 가르칩니다. 여자는 성전에서 조용히 해! 일점일획 가감할 수 없는 신의 말씀으로 각 경전에 수두룩하게 쓰여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한테 순종해! 서로 죽고 죽이는 세 종교가 이 부분만큼은 딱 의견이 일치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인간이 당신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항목이 또 없습니다. 당신의 다른 가르침은 실행하기가 죽도록 힘든데, 이것만은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여자는 언제 어디서나 충분히 차별받고 있으니까요. 다른 건 다 아니라도 이 면에서만큼은, 당신의 뜻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원수를 쳐죽이라고, 당신은 어느 경전에서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건 인간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여자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당신은 모든 경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여성 차별은 잘못입니까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잘못입니다. 저만이 아니라 모든 헌법과 권리장전에 인간은 평등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인간들이 여성 차별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오로지 당신만이 아무런 주저 없이, 또 우주적인 권위로 여성 차별이 정당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성들의 불행은, 당신의 잘못입니다. 신의 죄악, 미친 짓, 음모.
그것이 아랍 자존심의 상징일지라도, 또는 하늘거리는 레이스가 아무리 예쁘더라도, 저는 여자만 머리 가리는 두건 쓰기 싫어 이슬람 성원에도 성당에도 못 갑니다. 70살 이상이면 권사님은 은퇴하고 장로님은 명예장로 되는 교회도 못 갑니다.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우매한 저를 지옥으로 보내세요. 그러나 신이시여, 당신의 완벽함에 금이 갑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당신은 신이 아니고, 신마저 없이 우리 가련한 인간들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견디라고요. 신이시여, 깨어나소서. 태초부터 당신의 뇌리에 박힌 편견을 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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