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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전선, 우리는 | 임원혁

등록 2004-12-03 00:00 수정 2020-05-03 04:23

▣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북핵 문제의 해법은 간단하다. 미국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해소하고, 북한은 북한의 핵 개발과 수출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면 된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안전보장 등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일단 동결한 뒤 사찰을 거쳐 폐기하면 된다. 한·중·일·러는 북-미간에 이와 같은 합의가 이뤄지도록 6자회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미국의 간단하고 복잡한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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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핵 문제가 이렇게 해법이 간단한 문제라면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가? 제네바 합의가 와해된 과정을 보면 결국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미온적이었고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이, 특히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미온적인 이유는 감정적인 부분과 전략적인 부분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신과 악감 때문에 그리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필요에 따라서는 사우디아라비아나 파키스탄처럼 비민주적인 정권과도 타협할 줄 알고,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했듯이 ‘믿어보되 검증하라’는 식으로 ‘악의 제국’ 소련과의 협상에도 임할 수 있는 국가이다.

실제로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미온적인 이유는 감정적 측면보다는 전략적 측면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소 냉전이 끝난 지 오래지만, 미국의 일부 전략가들은 과거 냉전의 틀을 유지하면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즉, 동북아에 새로운 다자간 협력의 질서를 구축하기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 및 일본과 양자동맹 체제를 유지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의 지연은 이와 같은 구도 안에 한국과 일본을 묶어두는 수단이 될 수 있다. 2002년 북한의 경제개혁 조치 도입, 남북 철도·도로 연결 합의, 북-일 정상회담 등 기존 냉전구도의 해체를 의미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은 직후,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북한도 북한대로 핵 프로그램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전력 생산에 기여하는 한편 외부와의 협상 또는 군사적 대치 관계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자기방어적인 측면도 있지만, 대량살상 위협을 하여 미국의 한반도 전쟁 개입을 막는 공격적인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여러 목적으로 유용한 핵 프로그램을 북한이 단순히 경제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북-미 관계의 정상화와 주변국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안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북한이 핵을 보유한 미래보다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미래가 더 밝다는 점을 깨닫게 될 때 핵 프로그램의 포기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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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미국과 북한의 외교안보 전략과 연결되어 있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에 새로운 협력의 질서를 구축한다는 큰 틀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남북 협력은 북핵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보할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의 일환으로 보고 꾸준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일 정권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접촉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커지도록 방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주변국에 대한 외교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일본을 설득함으로써 미국을 함께 설득하는 방향으로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대해서는 동북아의 냉전 구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이를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동북아에서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입지를 확보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북핵 문제의 해결은 이와 같은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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