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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공급’은 주거 불평등 심화… ‘내 집’ 없어도 안심하도록

다 부러진 사다리 말고, 지금 선 땅을 단단하게
등록 2026-09-17 21:20수정 2026-09-23 08:56
주거권네트워크, 2025홈리스주거팀 등 회원들이 유엔이 지정한 세계 주거의 날을 앞둔 2025년 10월1일 서울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거권네트워크, 2025홈리스주거팀 등 회원들이 유엔이 지정한 세계 주거의 날을 앞둔 2025년 10월1일 서울역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주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전세사기·깡통전세라는 재난과도 같은 사태 이후로도 ‘세입자 보호 강화’라는 근본적인 접근은 찾기 어렵다. 정치권에서 오가는 말들을 보면, 전월세 주거난이 심각해진다는 진단은 있는데 적절한 처방은 없다. 힘 있는 정치인들은 오히려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빌미 삼아 주거권과 조세정의에 역행하는 정책을 주장한다. 기막힌 상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6년 9월7일 “전월세 지옥,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임대사업자에게 대출을 풀고 세제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입자가 고통받는다는데 임대업자에게 당근을 준다니. 청년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으니 사장을 도우면 저절로 노동환경이 좋아진다는 식의 뒤틀린 인식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세입자를 걱정한다면서 엉뚱하게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나름의 개혁 조처를 후퇴시키고 있다. 정부는 9월1일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강화 방침을 후퇴시켰고, 9월17일 토지거래허가구역의 실거주 의무 유예 신청 기간을 2027년 말까지 1년 연장했다. “임차인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시장 개입 유예와 부자 감세를 내세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규율하려는 조처는 후퇴하는 반면, “닥치고 공급”만 남고 정작 세입자의 권리를 직접 확대하는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세입자 권리 확대 정책이 안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면서 주택 공급을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빠르게 압도적인 공급을 통해 주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안이다. 8·13 부동산 대책의 주된 내용은 주택 건설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들이다. 대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집 걱정을 해소할 수 있을지, 오히려 주거 불평등을 심화하지 않을지 우려하게 된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가 제일 크게 우려된다. 빠른 재개발을 위해서 각종 규제 완화와 건설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을 늘린다. 정부는 8·13 대책에서 재개발 동의율을 낮추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거 불안을 겪는 세입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개발과 재건축은 참사와도 같다. ‘언덕 위로 그나마 저렴한 곳을 찾아왔는데, 또 어디로 이사를 가란 말이냐’라는 하소연은 2026년에도, 17년 전 용산 참사와 뉴타운 광풍 때부터, 서울 곳곳이 재개발되던 40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정비사업의 주택 순증 효과가 없거나 매우 미미하다는 지적과 급격한 정비사업이 불러일으킬 막대한 이주 수요로 인한 전월세난에 대책이 없다는 지적도 덧붙여야겠다.

‘닥치고 공급’을 우려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미 자산과 소득을 비교적 많이 가진 계층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과 자가주택 구입 촉진 정책은 가진 것이 많을수록 정책의 혜택이 커지는, 역진성이 높은 정책이다. 예를 들면 40년 동안 상환하는 연이율 4%짜리 주택담보대출 4억원을 받으면 매달 약 167만원을 갚아야 하고, 6억원을 받으면 매달 약 25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신규 주택 공급과 구입자금 대출 확대 정책은 안정적인 고소득을 확보한 매우 제한적인 상층에 유리하지, 모든 청년과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럼에도 청년들을 위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을 앞다퉈 내세운다. 하지만 최근 서울 용산과 탄천 중 어디에 청년주택을 지을지를 둘러싼 논쟁은 ‘빠르고 많은 공급’이 가지는 공허함을 잘 보여준다. 용산은 토지 정화가 필요하고 탄천은 물재생센터 이전이 필요하다. 입주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1만 호 공급’이라는 숫자만이 앞선다. 또한 어떤 집이 공급되는지는 논쟁에서 빠져 있다. 몇만 호를 공급한다는 목표 외에 시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책은 논의 테이블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주택 공급 정책의 지독한 아이러니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 집 마련’이 정책의 중심이 되는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세입자로 산다는 건 서러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계속 이사를 다녀야 하고, 월급보다 빠르게 오르는 월세를 감당해야 하고, 집을 고쳐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사기 피해는 ‘전세사기특별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만 4만936건에 이른다.

국토교통부에서 실시한 2024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 사람들이 왜 ‘내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가 나타난다. 조사에 따르면 ‘주택을 꼭 보유해야 한다’는 응답은 86.8%였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유가 중요하다. 왜 집을 보유해야 하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86.2%가 ‘주거 안정’을 1순위로 꼽았다. ‘자산 증식’ 수단으로 주택 보유를 원한다는 응답은 9.8%에 불과했다.

세입자가 겪는 서러움을 몇 가지 수치로 살펴보자.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자가주택 점유 가구는 한집에 평균 11.5년을 거주하지만, 임차 가구는 평균 거주 기간이 3.6년에 불과하다. ‘내 집’이 없으면 한 동네에 정주할 권리가 3분의 1 이하로 축소되는 매우 차별적인 사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한편 청년의 평균 거주 기간은 1.6년으로 그보다 더 짧다. 이사를 강요당하는 집에서 부담하는 월세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최근 5년간(2021~2025년)의 서울 10평 이하 소형주택의 월세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2025년 서울 평균 원룸 월세는 70만원이고 신축은 100만원에 가깝다.

전월세 문제가 심각하다보니 민간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대안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주거 안정보다 수익을 우선하는 기업에 주거 문제 해결을 의탁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공급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인 ‘청년안심주택’에서도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시 정책사업에서 전세사기가 발생한 것이다. 한 세입자는 “전세사기를 피해 서울시를 믿고 청년안심주택에 입주했지만, 그 믿음은 결국 배신당했다. 이제 누굴 믿어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한 사업자 지원은 확실했지만, 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의 상황을 돌아보는 공적인 감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이 오히려 세입자의 주거권을 심각하게 위협했다니,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공이 공급하고 공공이 감시해야
2023년 4월17일 새벽 인천 미추홀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살던 30대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ㄱ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알려졌다. 사진은 이날 오후 ㄱ씨 집 앞 모습.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23년 4월17일 새벽 인천 미추홀구의 한 연립주택에서 살던 30대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ㄱ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알려졌다. 사진은 이날 오후 ㄱ씨 집 앞 모습.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자가주택 공급도, 민간주택 공급 확대도 그 자체로는 청년과 세입자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공임대주택을 제외한 주택 공급이 청년과 세입자를 위한 주거 정책으로 현저하게 불충분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집을 소유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세입자로 살아도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을 중계하는 정치, 조감도로 장밋빛 허상을 제시하는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 아파트 가격 말고 실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다루는 지표에 관심을 갖는 정치가 필요하다. 세입자가 한집에서 몇 년을 사는지, 주거비가 소득에서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 등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지금 세입자에게 필요한 주거 정책 세 가지를 꼽아보면, 먼저 전세사기 예방 입법이 가장 시급하다. 대항력 발생 시점 조정, 최우선변제금 제도 현실화, ‘바지임대인’ 예방을 위한 매매 통지 의무 부여 등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겠다고 한 과제들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25년 6월 이후 새롭게 체결된 임대차계약에는 전세사기특별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증금을 지킬 제도 개선도 없고, 피해 구제 안전망도 없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둘째, 계약갱신권과 계속거주권을 강화해 세입자가 한집에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자가 가구 평균 11.5년과 임차 가구 평균 3.6년의 차이는 너무 크다. 임차 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을 5년, 7년, 10년으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약갱신청구권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셋째, 빠르게 오르는 임대료를 사회적으로 통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 원룸 월세가 최저임금보다 빠르게 오르고, 일부 대학가에선 1년 사이 월세가 20% 넘게 뛰었다. 급격한 임대료 상승 지역을 ‘주거난 지역’으로 정해 특별한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도 상상해볼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중심에는 늘 부동산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실제 거주하는 세입자는 부동산 정치에서 부차적인 존재로 치부돼왔다. 이제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에 세입자 권리 확대를 놓아야 한다. 그리고 모두를 주거 사다리로 떠미는 정책이 아니라, 지금 발 딛고 사는 땅을 단단하게 만드는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겪는 월세 부담과 잦은 이사, 보증금 불안과 집에 대한 서러움을 각자도생의 문제로 남겨놓지 않는 정치가 필요하다.

집 없으면 못 사는데, 집 때문에 못살겠다

세입자들은 이미 다양한 권리 확대 경험이 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차상한제는 세입자들의 한숨이 모이고 모인 결과다. 조금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공공임대주택 제도는 철거민들의 투쟁 속에 만들어졌다. 최근에 벌어진 전세사기·깡통전세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해를 본 세입자들이 연대하고 끈질기게 요구해서 결국 특별법을 만들었고, 여러 차례 특별법을 개정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피해주택 매입과 피해회복률 3분의 1을 보장하도록 재정을 지원하는 임차보증금 최소보장까지 끌어냈다.

세입자들이 서로 연결될 때 집을 둘러싼 규칙을 바꿀 수 있다. 다가오는 10월1일 저녁, 서울 홍대입구역 7번 출구 앞에서 모이자. ‘세계 주거의 날’(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 2026년 10월5일)을 맞아 집 걱정 성토 대회가 ‘집 없으면 못 사는데, 집 때문에 못살겠다’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같이 모여서 허깨비 같은 주거 사다리 말고 구체적인 우리의 집과 권리를 요구하자.

서동규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관련 기사
□1632호 표지이야기_청년 없는 청년 주거 정책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926.html
<청년 주거 정책 나올 때마다 두렵고 약이 받친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927.html
<청년들 “세입자로 살아도 삶이 위태롭지 않은 사회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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