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가스랑 기름 가격이 올랐는데 (그 때문인지) 땔감 가격까지 오르고 있어요.”
강원도 춘천의 산골에 살며 토마토농사를 짓는 김아무개(49)씨는 나무를 연료로 쓰는 화목보일러를 사용해 집 안을 덥힌다. 슬레이트 지붕에 나무 기둥, 흙벽으로 만든 옛집은 단열이 되지 않는다. 화목보일러의 온기가 닿지 않는 집 안 곳곳에는 스티로폼을 덧대었다. 4살 된 아들과 김씨의 어머니는 집 안에서도 내복을 껴입고 외투를 걸치고 있다.
화목보일러는 열효율이 낮고 화재 위험이 있지만 연탄이나 가스, 등유 등에 견줘 비용이 적게 든다. 그래서 9년째 쓰고 있다. “연탄도 때보고 가스로 바꿔도 봤는데 한 달에 난방비가 40만원이 넘어가더라고요.” 강원도는 추워서 4월까지도 난방을 해야 한다. 한 해를 버티려면 화목보일러에 넣을 참나무 땔감 7t이 필요하다. 그나마도 7t 땔감 가격이 최근 9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올랐다. 전기요금은 월 3만원가량 나온다. 보증금 없이 연세 200만원을 내고 이 집에 사는 김씨에겐, 난방비가 가장 큰 걱정이다.
“오늘날 세계는 처음으로 진정한 세계적 에너지 위기의 한가운데 있으며, 앞으로 수년간 그 영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22년 10월 공개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22’ 보고서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세계적 에너지 위기가 심각하다. 한국은 아직 유럽 등과 달리 체감하지 못하지만, 전례 없는 위기는 김씨 같은 가난한 이들을 향한다. “위기는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특히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국제에너지기구도 우려하는 바다.
‘에너지통계월보’ 등을 보면 한국은 세계 7위의 에너지 소비국(그래픽)이다. 사용하는 에너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2021년 전체 수입액의 4분의 1가량을 에너지·자원 수입에 썼다. 이 때문에 국제 에너지 가격이 들썩이면 한국은 거의 곧바로 영향받는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직후, 거의 모든 에너지 가격의 상승세가 예전보다 가팔라졌다. 가정용 도시가스와 열복합발전 등에 쓰이는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단가(2022년 8월)는 1년 전보다 두 배 넘게 뛰었다.(t당 535달러→1198.8달러) 같은 기간 주로 서민이 난방용으로 쓰는 실내등유 가격(주유소 기준)은 리터(ℓ)당 940.9원에서 1639.5원으로 74% 올랐고, 경유와 휘발유는 2022년 6~7월 ℓ당 2천원(주유소 판매가격 기준)을 웃돌았다. 신도시 지역 아파트에서 흔히 쓰는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주택용 열(온수·난방) 요금도 2022년 37.8%가 올랐다. 2022년 들어 지역난방공사의 열 요금은 한 해에 세 차례 인상됐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메가칼로리(M㎈)당 65.23원(2021년 7월)→ 66.98원(2022년 4월)→ 74.49원(7월)→ 89.88원(10월))
유럽은 한국보다 앞서 이런 상황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진작 천연가스 없이 겨울을 버틸 대비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을 보면 유럽 국가들은 가스비축량을 최대로 채우고, 기업이나 가정이 전력을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전력량이나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전력배급제, 계획정전, 순환정전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 와중에 발전 비중 70%를 차지하는 원전 절반이 가동을 중단했다. 원자로 균열 탓이다. 프랑스 정부는 시민들의 전력소비 감축을 촉구하는 경보를 발령하는가 하면, 일부 지역의 강제 정전 가능성도 언급했다. 독일과 덴마크 등은 실내온도를 19도 이상으로 올리지 말 것을 독려하고, 산업체들이 공정에 필요한 전력을 가스 대신 석탄과 석유로 바꾸거나 전력수요 피크(정점) 시간대를 피하는 방식으로 교대근무를 운영한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타이는 11월 초부터 에어컨 온도 설정, 불필요한 조명과 광고판 끄기 등을 권고했다. 에너지 가격이 더 오르면 이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강제 조처는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 아시아 금융위기 때인 2000년대 이후 처음이다. 일본도 12월1일 겨울철로는 7년 만에 처음으로 가정과 기업에 전기 절약을 요청했다. 전기 공급이 어려워지면 오래된 화력발전소를 다시 가동하거나 원전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에는 아직 위기가 닥치진 않았다. 한국 정부는 세금을 덜 걷고 요금을 묶어 대응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려 LNG 수입물량에 할당관세율 0%를 적용하는 조치를 2021년 11월부터 시행 중이다. LNG 할당관세율 0%는 사상 처음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에너지 수요를 10% 줄이자’는 수요관리 캠페인을 시작했다.
문제는 한국전력이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늘어난 전력생산 비용을 온전히 공기업 한전이 방파제 구실을 하며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2022년 연간 30조원이 넘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 3분기 영업손실은 7조5309억원, 3분기까지의 누적 적자는 22조원에 이른다. 한전의 분기 적자는 2021년 2분기부터 시작해 여섯 분기째 이어지고 있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사오는 전력의 도매가격은 큰 폭으로 올랐지만, 한전이 다시 기업과 가정에 파는 소매가격인 전기요금이 묶여 있는 탓이다.
전기요금을 원가인 연료비에 연동하는 제도는 2021년 시작됐으나, 말만 연동제일 뿐 실제로는 연동되지 않는다. 전기요금은 한전이 신청한 안을 산업부 전기위원회가 기재부와 협의해 인가한다. ‘기준 연료비’로 1년치, ‘연료비 조정단가’로 3개월치의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한다. ‘연료’는 석탄과 천연가스, 유류 등이다.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된 2021년 1분기 정부는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를 킬로와트시(㎾h)당 -3원으로 정했다. 국민생활 안정과 물가상승을 고려해 조정단가는 거의 유지했다(4분기에 0원으로 조정). 2022년엔 기준 연료비가 9.8원 인상됐다. 2022년 초부터 전쟁으로 원가가 급등했으나, 연료비 조정단가에는 겨우 5원 반영되는 데 그쳤다(기본요금 2.5원 인상 별도).
반면 한전이 발전사의 전기를 사올 때 적용하는 구매금액인 계통한계가격(SMP)은 급등했다. 2021년 1월 ㎾h당 70.65원이던 것이 10월 107.76원이 됐고, 2022년에는 9월 이후 계속 200원대를 기록 중이다. 10월엔 251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SMP가 3배 이상 급등했음에도 전기요금은 19.3원(기후환경요금 2.0원 포함) 올랐다. 기업과 가정이 부담해야 할 전기생산 비용을 고스란히 한전이 떠안는 구조다. 한전의 부실화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재생에너지 사업 등 미래 투자에 제약이 생기고 심한 경우 블랙아웃(대정전) 같은 재난 상황이 초래된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연료비 연동제는 기준 연료비가 해마다 조정되는 것을 전제로 도입된 제도다. 한데 지금처럼 전기요금이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하지 못하면 에너지원 간 상대가격에 왜곡이 발생한다. 최근 열 요금이 크게 올라 난방비용이 증가한 가구에서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 등 전기로 난방하는 것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선진국은 전력 사용량이 감소 추세인데 우리만 여전히 늘고 있다. 전기를 국가에서 공짜로 제공할 수 없다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며, 한 번에 올리는 게 부담이라면 계속 올릴 것이라는 신호라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원가를 반영하지 않은,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은 과도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국내 전기요금은 2021년 3원 인상 전까지 2013년 11월 이후 8년간 인상되지 않았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다른 나라에 견줘 매우 낮은 수준에 묶여 있다.
한전 자료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61, 산업용 전기요금은 88 정도다. 주택용은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저렴하며 가장 비싼 독일의 31%, 일본의 40% 수준이다. 산업용은 일본의 58%, 영국의 64% 수준으로 낮다. 요금이 싸니 거침없이 쓴다. 인구 1인당 전기 사용량은 2021년 5.1% 증가한 1만330㎾h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비교가 가능한 2019년 기준(1만134㎾h)으로 캐나다, 미국에 이은 세계 3위다.
2021년부터 고유가가 지속됐는데 국내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건 전적으로 싼 전기요금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면 자동차 이용을 자제하고 대중교통을 찾지만, 전기요금은 그런 구실을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일단 유동성 위기인 한전의 채권 발행 한도를 늘리기로 했다.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 대비 현행 2배에서 5배로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은 12월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지만, 여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발의해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전의 채권 발행액은 2022년 말 법정 한도인 70조원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데, 이대로면 2023년엔 110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대응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2013년 당시 고유가 상황에서 이집트가 에너지 공기업들의 적자를 키우면서 전기와 가스를 원가 이하로 공급했는데, 결국 정부 예산의 22%가 넘는 35조원(현재가치 기준) 규모로 적자를 키우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기업들의 적자 규모는 이집트 정부의 보건의료·교육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았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고유가 상황이 한두 해 만에 끝난다면 모르겠으나 유럽과 미국의 LNG 장기계약 물량 도입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최소 4년 이상 간다고 봐야 한다. 한전 적자를 지금처럼 두면 부채와 이자까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 정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전이 빚을 늘리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한다. 공기업 한전채는 국채와 같은 AAA등급인데, 이런 최고 등급 채권이 시중 자금을 쓸어담으면서 다른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 15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 등의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기요금이 연료비와 연동되지 않는 구조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화석연료 사용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2022년 11월 발표한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보고서는 한전에 대해 “연료비가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는 구조를 감안했을 때, 변동성이 크고 비싼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노출이 지난 10년 동안 한전의 수익을 악화한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운동단체들도 이 기회에 ‘밑 빠진 독’이라 할 한전의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면서 ‘연료 수입이 필요 없는’ 태양광·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씨 같은 에너지 빈곤층에 대해선 지금도 요금을 할인받거나(한전의 복지할인 요금제로 40%까지 할인), 에너지바우처를 통해 전기와 도시가스 등의 요금을 지원받지만, 전기요금이 오르면 이런 지원도 확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 등은 최근 채권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을 앞두고 한도 증액은 화력발전 감축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국회에 발송했다.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정부가 결국 한전에 공적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면 조건을 달아야 한다. 한전의 석탄 퇴출 목표를 제시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불공정 대우를 해소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춘천=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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