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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158명, 듣겠습니다 들려주세요

등록 2022-12-09 02:17 수정 2022-12-10 15:35
한겨레21 1441호 표지 <미안해, 기억할게>

한겨레21 1441호 표지 <미안해, 기억할게>

이름, 나이. 처음 기자가 되고 나서 반드시 챙기라고 배운 기본 정보는 이 두 가지였다. 세상 누구를 취재하더라도, 분명히 확인해야만 했다. 황예람인지, 황예란인지, 황예랑인지. 한국 나이로 30살인지, 만 나이로 30살인지. 익명의 그늘에서 추상화된 개인이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로서 취재원을 명확히 밝히기 위함이었다.

이태원 참사로 안타깝게 희생된 158명. 누군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줘야 한다고 나섰다. 애초에 국가애도기간이라는 선언만 하고, 유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사과하지 않은 대통령과 정부의 탓이 컸다. 경찰과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추모와 애도는커녕 유가족들에게 무례했다. 마약 때문에 아이들이 쓰러진 게 아니냐며 마약을 검사하기 위한 부검을 하지 않겠냐고 묻지 않나, 장례비를 지원해줄 테니 영수증을 챙기라고 하지 않나, 한 달 안에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유가족끼리 만나고 싶다고 해도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정부가 그 모양이라고 해도 유가족에게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당신의 가족 이름을 실명으로 공개해도 되냐고 미리 묻지 않고 그 이름을 공개한 행위는 이 정부의 무례함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기자들이 취재원의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는 과정은, 단순한 사실을 기록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옮고 그름,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 윤리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숫자가 아니라 그 삶이 하나하나 기록돼야 한다고, 믿는다.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김훈) 일터에서, 사회적 재난의 현장에서 숨져간 이들을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다보니, 우리는 다시 이태원 참사라는, 엄청난 죽음의 숫자 앞에 섰다.

그래서 <한겨레21>은 유가족들의 말을 기록하기로 했다. 고 이상은씨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빈소에서 기자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면서 인터뷰 요청을 했는데 그땐 그게 너무 화가 났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상은이가 그래도 25년 동안 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냥 잊히고 묻히는 게… 우리가 가고 나서도 누구 하나 기억해주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네 흔적을 남기는 게 맞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상은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꿈이 있었는지 이런 얘기가 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차곡차곡 쌓인 유가족들은, 참사 한 달이 지난 지금 자신들의 목소리가 더 큰 울림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는 ‘듣는 존재’다. 세상에 닿지 못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저 높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닿게 하는 존재가 기자라고, 생각한다. 희생자들이 158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박가영, 오지연, 이상은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반짝반짝 빛나던 생애로 기록되는 순간, 우리는 그 하나하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했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이 사회와 정부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이번호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박가영, 오지연, 이상은씨의 오비추어리(부음 기사)를 싣는다. 가족에게 사진을 받아, 희생자의 얼굴도 그림으로 남긴다.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떠난 이들,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기록하고 싶다. 참사 이후 못다 한 이야기를 건네줄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린다.(전자우편 han21@hani.co.kr, 독자폰 010-7510-2154)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1441호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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