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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어디서부터 길을 잃었을까

등록 2022-06-22 12:03 수정 2022-06-23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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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의 죽을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내려서 놓으리라….” 교수대 앞에서 목사가 누가복음 23장을 읽어 내려갔다. 기도를 요청했던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공산당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오. 그저 이승만과의 선거에서 져서 정치적 이유로 죽는 것이오. 나는 이렇게 사라지지만 앞으로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할 것이오.”(<조봉암 평전>에서)

1959년 7월31일, 조봉암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재심을 청구한 지 17시간 만이었다. 혐의는 진보당 당수로서 평화통일을 주장해 북한에 동조했다는 것. 간첩이라는 의심도 샀다. 대선 후보로 나서고, 진보당을 창당하는 등 이승만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가 컸다. 대법원은 사형을 선고했다. 사법살인이었다. 억울한 죽음은 52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2011년 대법원은 재심 사건에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50년대 진보당과 조봉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 민중당과 백기완. 대학 새내기이던 열아홉 살에 처음 이런 정당과 정치인들의 이름을 들었다. 낯설지만, 궁금했다. 진보정당이 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죽이거나 감옥에 가둬야만 했는지.

스무 살이 된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지켜봤다. 정말로 지켜만 봤다. 만 20살 이상만 투표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일곱 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한 탓에, 친구들은 다 있는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입이 썼다. 그즈음 주변에선 온통 진보정당 이야기만 해댔다.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라는 이제는 촌스러워 보이는 문구와 함께. 대학 선배 가운데 한 무리는 국민승리21을 지지하며 권영길 대선 후보 선거운동에 열심이었다. 다른 한 무리의 선배들은 민중후보운동을 잇겠다고 열띤 토론을 하더니 그 이듬해 청년진보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창당했다. 글로만 봤던 진보정당이 현실에 등장했는데, 나는 누구를 찍을지 말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으니 씁쓸했다.

그해 권영길 국민승리21 후보는 30만여 표(1.19%)를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이제 더 이상 ‘사라질’ 존재가 아니었다. 국민승리21은 2000년 민주노동당, 2008년 진보신당, 2011년 통합진보당, 2012년 진보정의당, 2013년 정의당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25년째 명맥을 잇고 있다. 그 밖에도 노동당, 녹색당, 사회당, 진보당 같은 여러 진보정당이 존재했거나 지금도 존재한다. 이제 누구도 진보정당을 숨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더는 존재가 위협당하지 않는데, 존재가 스스로 흔들린다. 진보정당의 위기다. 한국 진보정치를 대표하는 정의당이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더불어민주당만 아니라 정의당도 ‘심판’받은 선거였다. 대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진보정치는 길을 잃어버린 것일까. 익숙한 질문이지만, 궁금했다.

<한겨레21>은 정의당 안팎의 핵심 관계자 30명에게 묻고 들었다. ‘궤멸’ 수준의 위기라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렇다면 ‘재창당’ 수준의 전면적인 쇄신은 무엇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깊이 분석했다. 박기용, 이경미, 박다해, 고한솔 기자가 30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전·현직 국회의원, 6·1 지방선거 출마자, 보좌관, 당직자 등을 두루 접촉했다. 이번호에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호에 이어진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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