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 당선자가 2025년 11월4일(현지시각) 당선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자본의 심장에 붉은 장미를 꽃피웠다. 34살 조란 맘다니는 미국 뉴욕시장에 당선된 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싸울 것이다. 왜냐면 우리가 바로 여러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맘다니가 ‘우리’라고 일컫는 이들은 “창고에서 상자를 나르느라 손가락에 멍이 들고, 배달 자전거 핸들을 잡느라 손바닥이 갈라지고, 주방에서 일하느라 손목에 화상을 입어도, 그 손으로 권력을 잡을 순 없었”던 노동자다. 도시의 집세가 비싸 매일 편도 2시간씩 통근하는 ‘웨슬리’, 일주일에 7일 동안 택시를 운전해야 하는 ‘리처드’ 같은 사람들이다.
맘다니는 ‘예멘 가게 주인’과 ‘멕시코 할머니’ ‘세네갈 택시기사’ ‘우즈베키스탄 간호사’ ‘트리니다드토바고 요리사’ ‘에티오피아 이모님’ 같은 다양한 이민자들도 한 명씩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더했다. “이 도시는 여러분의 도시이며, 이 민주주의 또한 여러분의 것이다.”(이번호 이슈)
맘다니의 당선 수락 연설과 이후 행보에서 인상적인 건 세 가지였다. 하나는 그가 인민의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보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맘다니가 노동자들의 상처 입은 손을 눈앞에 보듯 묘사하고, 뉴욕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이민자들의 세세한 직업을 읊는 모습을 보면서 노회찬 전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를 수락하며 한 ‘6411번 버스 연설’이 떠올랐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투명인간”을 조명해 우리 눈앞에 보이게 한 그 연설 말이다.
다른 하나는 맘다니가 인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 이들을 직접 인터뷰한 뒤 △시내버스 무료 승차 △무상 육아 △아파트 임대료 동결이라는 생활물가 정책을 3대 공약으로 밀어올렸다는 점이다. 그는 여기에다 교사 수천 명을 추가 고용하고, 정신건강 위기와 노숙인 위기를 다루는 ‘지역사회 안전부’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23분 동안 이어진 당선 수락 연설에서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이나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 기업 하기 좋은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공동의장단에 참여한 리나 칸(가운데)이 2025년 11월5일(현지시각) 열린 기자회견에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지막으로는 맘다니가 인수위원회 공동의장단을 전원 여성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최연소 연방거래위원장을 하며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던 리나 칸을 선임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칸은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어젯밤(맘다니 당선일) 목격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시장 선출이 아니라, 과도한 기업 권력과 자본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명확히 거부한 행위였다”고 말했다. 이는 부유층과 대기업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상층계급 자산가의 탐욕에는 미온적 태도를 견지했던 민주당 주류의 위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 모든 면이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투명인간”을 다시 가시화하면서 이들에게 “우리가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들이 겪는 구체적인 삶의 어려움을 정책으로 길어올리는 동시에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들에게 경고장을 날릴 수 있는 정치. 한겨레21은 그런 정치를 말하는 글을 책에 담고자 한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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