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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거짓 사이, 이 순간에도 학살

등록 2022-05-04 00:25 수정 2022-05-04 09:41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이 석 달째로 접어들었습니다. 4월26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이날 회담에선 “전쟁을 빨리 끝내는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말만 오갔습니다. 그 하루 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국영방송 인터뷰에서 “핵전쟁 위험은 실재하며 심각한 수준이다.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은근한 엄포를 놨습니다.

제1410호 표지이야기는 인류가 전쟁범죄와 제노사이드(집단학살)에 대응해온 역사와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단죄해야 할 이유, 그 가능성을 살펴봤습니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공론장에선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책임자들이 국제법정에서 사법처분을 받을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매우 낮거나 오랜 시간이 걸릴 거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에선 무고한 민간인이 러시아군의 무차별 도시 공격과 명백한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학살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공식 집계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 수’를 보면, 2022년 4월27일(현지시각)까지 민간인 2787명(어린이 135명 포함)이 숨지고 3152명이 다쳤습니다.

사망자 2787명 중에는 아직 성별이 확인되지 않은 주검이 1129명(40.5%)이나 됩니다. 희생자 10명 중 4명은 육안 검시로 성별이 파악되지 않는 겁니다. 이는 사망자의 몸은 물론 착용한 옷이나 소지품으로도 성별을 알기 힘들 만큼 주검이 심하게 훼손됐다는 뜻입니다. 유엔은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과 루한스크 지역, 이줌 등 지금도 교전이 벌어지는 도시들은 이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실제 민간인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표지이야기가 보도된 뒤, 온라인 댓글들을 살펴봤습니다.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러시아가 잘못한 게 뭐냐’는 의견이 갈리는 건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후자 의견 대다수는 근거가 미약하거나 러시아 정부와 언론의 주장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 자유 지수’의 2021년 순위를 보면, 조사 대상 180개국 중 러시아는 150위에 그칩니다. 푸틴 집권기에 러시아 언론 대다수는 관영 선전매체로 전락했습니다. 상위 30개국 중 23개국이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입니다.

이 순위가 곧 서구 언론은 무조건 옳고 진실만 전달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수많은 개별 언론사가 경쟁하며 전하는 현지발 소식과 현지인들의 증언, 소셜미디어를 종합하면 사실과 거짓은 자연스럽게 구별됩니다. 우크라이나 현장을 직접 취재하거나 목격할 수 없는 환경에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수많은 외신과 정보 중 신뢰도가 더 높은 정보에 귀 기울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를 마냥 ‘서구 대 비서구’ 대립 구도로 치부하는 일이야말로 객관을 가장한 진영 논리이거나 게으른 태도일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 분명한 것은, 러시아의 일방적 침략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팩트’(사실)입니다. <한겨레21>은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팩트와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팩트에 내포된 의미를 전하겠습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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