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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완박’,‘검수완박’의 속도로

등록 2022-05-02 22:27 수정 2022-05-0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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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보다 시급한 건 차별완박(차별 완전 박탈)입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2022년 4월23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중문화제에서 낭독한 발언문의 끝부분 가운데 일부다. 4월11일부터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4월 임시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이다. 이날은 단식 13일째 되는 날이었다.

성별이나 연령, 장애 여부, 종교,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차별금지법은 2007년 국회에서 처음 법안이 발의된 이후 시민사회단체 등이 계속 입법을 요구했다. 정치권이 보수적인 종교계 등을 의식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나중에’라고 입법을 미뤄온 탓이다. 2021년 6월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이를 심사해야 하지만, 법사위는 또 ‘나중에’라며 심사 기한을 2024년으로 연장했다.

국회 밖에서는 누군가 곡기를 끊고 절박하게 ‘차별완박’을 요구하는 동안, 국회 안에서는 한 달 가까이 ‘검수완박’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5년 임기가 끝나기 직전에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을 밀어붙이는 중이고, 국민의힘은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하는 방향으로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조정안에 4월22일 합의했다가 사흘 만에 뒤집었다. 국민의 뜻은 아랑곳없이 국회 안에서 여야가 벌이는 ‘우리들만의 블루스’, 이에 앞서 문재인 정부 5년간의 검찰개혁 움직임, 4월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엄지원 기자와 김규원 선임기자가 짚어봤다.

국회가 지금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을 처리하는 속도라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아도 될 듯하다. 법사위는 4월26일 차별금지법 공청회 실시를 위한 계획서를 채택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4월28일 ‘비상시국선언’을 발표하고 “4월 임시국회는 거대 양당의 정쟁으로 종료됐다. 지방선거 전에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5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시민들을 차별과 혐오에 방치해두는 정치를 ‘나중에’가 아니라 ‘바로 지금’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검수완박 정쟁을 지켜보며 ‘구겨진 마음’을 조금은 펴줄 것 같아, 앞서 소개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 가운데 끝부분을 좀더 자세히 소개한다.

“40년 전 거리에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김순석과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겠다는 박경석의 요구는 왜 아직도 비문명입니까. 최옥란의 죽음과 이형숙의 삶 사이 20년, 세상은 뭐가 달라졌습니까. 변희수를, 김기홍을 죽인 건 누구의 민주주의였습니까. 수많은 이예람들을 죽인 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안보였고 평화였습니까. 인간은 차별을 견디는 존재가 아닙니다. 비인간이었던 이들이 비문명적 방식으로 싸워온 결과 이 세상은 문명을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장애인들의, 성소수자들의, 이주노동자들의, 비정규직들의 세상은 먼저 죽은 이들의 유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결국은 우리가 이깁니다. 왜냐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들에게 일상인 것은 장애인들에게도 일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애자들에게 사랑인 것은 성소수자들에게도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에게 안전한 사회는 여성에게도 안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모두의 평등과 사랑을 위해, 미류, 종걸 그리고 우리 모두의 승리를 위해,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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