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집권해온 더불어민주당은 이제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시대적 과제라며 갖은 편법을 동원해 본회의까지 법안을 끌고 왔다. 자성의 노력 없던 검찰은 직접수사 권한을 박탈당할 위기에 놓이자 검찰총장부터 평검사까지 한목소리로 규탄하고 나서며 ‘검사동일체’가 건재함을 과시했다. 검찰개혁에 어떤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그쳐온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입법을 숫자로 밀어붙일 기미가 보이자 뒤늦게 나서 조정안에 합의하곤 사흘 만에 이를 뒤집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은 국회의 합의가 공론화된 뒤에야 헌법 요건에도 맞지 않는 국민투표를 제안하며 ‘혹세무민’하고 있다. 정작 국민의 뜻은 안중에 없다. ‘기득권’을 두고 권력의 맨얼굴들이 보정 없이 드러난 광경이다.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은 이르면 5월3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에 올라 재가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앞두고 <한겨레21>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정권이 가장 진지하고 집요하게 추구해온 검찰개혁의 성적표를 따져봤다. 국회에서 처리될 두 법안의 한계와 의미도 짚어봤다. _편집자주
‘검찰’로 시작해 ‘검찰’로 끝났다. ‘검찰과의 전쟁’. 역사가 문재인 정부의 5년을 기록한다면 목차 첫 줄에 기록될 표제다.
2017년 5월10일, 취임사에서 ‘권력기관 개혁’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인선은 ‘민정수석 조국’이었다. 비검찰 출신, 개혁 성향의 법학자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에 기용하면서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새 정부의 주요 의제로 삼겠단 의지를 분명히 했다. 개혁을 위한 파격 인사가 훗날 정권을 뒤흔들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2022년 5월9일 오후 6시를 기해 청와대를 떠나는 문 대통령의 마지막 ‘결재’ 안건 중 하나도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사의 수사 범위를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 범죄 두 영역(2대 범죄)으로 축소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해온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 테이블에 관련 법안이 오를 수 있도록 편법과 꼼수를 총동원해 막판 속도전을 펼쳤고, 두 개의 관련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은 4월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여당의 ‘회기 쪼개기’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 진행 방해)마저 무력화된 터다. 두 법안은 4월30일 또는 5월3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1954년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를 갖는 내용의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뒤 역대 어떤 정권도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건드리지 못했다. 마침내 검찰권력 개혁의 가능성을 내다보지만 ‘성과’인지 ‘패착’인지를 아직 단언할 수 없다. ‘성공적 개혁’으로 평가받으려면, 세 가지가 담보돼야 한다. 첫째, 명분. 둘째, 내용. 셋째, 과정. 현재까지 검찰개혁은 셋 모두에서 두루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울 듯하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는 동안 정치적 명분이 퇴색됐다. 검찰을 포함한 권력기관 개혁은 진보·개혁 진영의 오랜 숙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한겨레>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1%는 ‘이번 정부에서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검찰개혁을 꼽았다.(2017년 5월12~13일 전국 만 19살 이상 남녀 1천 명 대상 전화면접조사, 응답률 20.3%,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정치와 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도 정치개혁(21.3%), 재벌개혁(12.7%), 언론개혁(11.8%)보다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드러나 특히 공분을 얻던 때다. 개혁의 적기였다.
문재인 정부는 보수정권 10년의 ‘적폐청산’에 도로 ‘칼잡이’들을 동원했다. 청산 대상이면서 주체인 이중성을 가진 검찰은 개혁 요구가 있을 때마다 사정 수사를 통해 존재 이유를 재확인하곤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에 ‘특수통 검찰주의자’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고,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갈등 중이던 2019년 6월엔 그를 검찰총장에 지명했다. 시민들에게 사인과 악수 요청을 받는 검찰총장이 탄생하자 주춤했던 여권의 검찰개혁 요구는, 그해 연말에야 ‘조국대전’과 함께 갈급해졌다.
한 시민사회 인사는 이렇게 돌이켰다. “검찰개혁을 거시적 안목 속에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정략적 판단에 이용했다. 조국 사건으로 검찰과의 관계가 급전직하하자 정파적 이해관계로 검찰개혁에 나섰으나, 만들어진 것도, 국민에게 호소한 것도 없고 1년 내내 갈등으로 소란만 일으켰다.” 여권이 ‘집토끼’를 잡기 위한 방편으로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물러난 뒤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총장의 ‘추-윤 갈등’이 대표적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매일 언론을 장식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피로감만 커졌다. 당시 민주당에서도 “공연히 윤 총장의 존재감만 키워준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선판이 열리면서 시들해지는가 싶었던 검수완박 목소리가 느닷없이 삐져나온 것도 대선 패배 뒤 책임론에 몰려 있던 민주당 지도부가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한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검찰개혁, 대장동 특검 등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입법 과제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당이 흔들림 없이 개혁을 추진해나갈 생각이다. 저희 민주당은 새 정부 출범 이전까지 검찰개혁을 완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2022년 3월24일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여기에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하고 한동훈 검사장이 채널에이(A)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윤석열 정부에서 주요 보직에 임명될 가능성이 커지자 여당 내 위기감이 기름을 부은 듯 폭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때 높은 지지를 받았던 검찰개혁은 ‘국민 여론’이라는 명분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를 받아 2022년 4월13일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만 19살 이상 남녀 1017명 대상 유무선자동응답조사, 응답률 4.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검수완박 움직임에 대한 찬성 의견은 38.2%인데 반대 의견은 52.1%로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중도층’이라고 밝힌 응답자에게선 찬성 의견이 36.1%, 반대 의견이 55.4%로 더 벌어진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소수의견에 그쳤다. 김해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저는 이번 민주당의 조급한 검수완박 추진에 ‘악당론’과 ‘지키자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민주당에서 이 두 가지를 주요 동력으로 삼으니 시대 상황에 적합한 거대담론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이나 검찰 등을 악당으로 규정하면서 악당은 궤멸시켜야 한다고 보는 악당론’과 ‘진영 내 특정 인물을 성역화하면서 누구누구를 지켜야 한다는 지키자 프레임’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상대책위원인 조응천 민주당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나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수사-기소권 분리 원칙은 찬성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개혁하는지가 중요하다. 검찰에서 박탈한 수사권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선 정해져 있지 않다”고 우려했다. 역시 비상대책위원인 이소영 의원도 “추진 초기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우리의 검찰개혁은 점점 국민의 공감을 잃어갔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후회와 반성 위에서 이번 검찰개혁의 방향과 절차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내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과거 금태섭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표결에 기권표를 던지고 징계받거나 지지자들에게 여전히 공격받는 걸 보면서 누가 반론을 낼 수 있겠나. 대선 뒤 의원실에 전화나 전자우편, 편지 등으로 검수완박에 나서달라는 당원 메시지가 답지하기 때문에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선 이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개혁 명분이 정치적 상황논리에 휘둘리니 개혁 내용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2021년 1월 조정된 검경 수사권 문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에 대한 평가와 보완조차 없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앞서 이루어진 제도개혁이 기대와 달리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혁을 추진함이 옳다. 전문가와 법률가 단체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극단적인 검수완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당 기간 형사사법 시스템에 큰 공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검찰개혁 이슈에 앞장서온 참여연대도 “형사사법체계 개편이 시급하게 필요하고 검찰개혁은 지속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는 전제 아래 “형사사법체계 개혁이 졸속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며, 검찰개혁의 큰 그림 속에 조직적 차원의 ‘수사-기소 분리’가 논의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애초 ‘수사권 박탈’에만 방점을 찍은 검찰개혁의 방향 설정이 문제라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검찰개혁 전 과정에서 목표나 지향 가치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채 검찰권력을 들어내는 데만 급급했다”고 짚었다.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핵심은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에 입각해 움직이는 검찰조직에 있는데 수사권에만 집착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문제는 조직과 수사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수사권이 문제라고 본다면, 수사 권한이 경찰에 가면 경찰공화국이 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가면 중수청공화국이 되는 것이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고 돼 있는 검찰청법 제7조 같은 대목을 혁파해 조직을 바꾸고, 수사권 이양으로 비대해질 경찰권력을 어떻게 통제할지도 고민해야 했다.”
일각에선 ‘개문발차’(차량이 문을 연 채 출발하듯 부족함이 있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가 중요하다고도 한다. 선 입법, 후 조정에 나서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법 과정에서 여야가 극단적 갈등을 빚은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은 당장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 본회의 상정 이튿날인 4월28일 중수청 설치를 위한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애초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 아래 만든 여야 합의안에는 ‘사법개혁특위를 구성해 가칭 중대범죄수사청(한국형 FBI) 등 사법체계 전반에 대해 밀도 있게 논의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법개혁특위 구성 이런 것(합의)도 파기됐다. 구성에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 아래 만든 여야 합의안을 번복(4월25일)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다만 민주당 역시 애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양향자 의원 사·보임’ ‘민형배 의원 기획 탈당’ 등 국회법을 무력화하는 갖은 꼼수를 벌인 잘못도 있는 게 사실이다.
사법개혁특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검찰의 수사권을 넘겨받을 중수청 설치에도 제동이 걸린다. 향후 여야가 사법개혁특위를 통해 중수청 설치에 합의하면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권도 폐지한다는 게 여야의 합의 사항이었다. 중수청이 제때 들어서지 못하면 수사체계에 큰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상희 교수는 “만약 사법개혁특위가 정상적으로 굴러가면 미흡하고 어려우나마 한 걸음 내디뎠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의 구도 속에선 사법개혁특위가 돌아가더라도 경찰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중수청이 최소한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각 수사 단위들의 권한 분산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로 시작해 검찰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벌인 ‘검찰과의 전쟁’ 끝에 누더기가 된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건 승리였을까.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사권 분리는 이번에 반드시 해내야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정치보복성 수사’ 가능성을 넘어 다음 기회는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긴 하다. 과거엔 국민 다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등 여러 사건으로 검찰권력에 치를 떨었는데 지난 5년을 거치며 검찰개혁 문제에 피로감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감당할 몫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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