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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의 저항, 은밀하고 당당하게

등록 2021-11-01 12:41 수정 2021-11-02 02:26

‘엠제트(MZ)세대의 저항’을 취재하게 된 이유는 최근 ‘스타벅스 트럭시위’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존 노동운동과는 다른 면이 있었는데요. MZ세대로 추정되는 시위 주동자가 블라인드에서 익명으로 활동해서 누군지 알 수 없었고요. 열악한 노동환경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내면서도 민주노총과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죠. 트럭에 항의 문구를 담아 서울 도심을 돌아다녔을 뿐인데 회사 쪽은 노동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MZ세대가 익명성에 기반을 둬 기성 노조와 다르게 저항하는 방식이 보편화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스타벅스 트럭시위’뿐만 아니라, MZ세대가 주도해 만든 사무직 노조를 취재하며 든 생각이었습니다. 엘지(LG)전자, 금호타이어, 대우조선해양 등에서 사무직 노조를 만든 이들도 처음에는 익명으로 블라인드에서 활동했고 전자우편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노조원을 모집했거든요. 사용자 쪽 모르게 은밀하고 빠르게 노조 설립이 진행된 거죠.

몇몇 보수언론이 ‘스타벅스 트럭시위’와 대기업 사무직 노조를 보도하며 ‘기성 노조에 반기를 들었다’는 격한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임금협상을 위해서 양대노총 등 상급단체와 함께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요. LG전자 사무직 노조 역시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직장 내 괴롭힘 같은 문제는 다른 노조와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2018년에 설립된 네이버, 카카오 노조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트럭시위’ 역시 민주노총과 선을 긋긴 했지만 취재하다보니 스타벅스 파트너(직원)들은 그 어떤 이보다 자부심이 넘치는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월28일 전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리유저블컵 데이’ 행사를 치르고 난 다음날 쓰인 블라인드의 글은 이랬습니다.

“리유저블 사태를 견뎌낸 스타벅스의 모든 현장직 파트너들에게.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고객과 역대 최다 대기 음료 잔수를 보고 울며 도망치고 싶어도, 책임감 하나로 이 악물고 참고 버텨준 이들에게 (중략) 우리는 그 누구 하나도 쉽게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오늘 한국 스타벅스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다.”(il11ill1l)

이 글을 계기로 한 파트너는 블라인드에 ‘트럭시위를 기획하자’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가 시위를 마치고 블라인드에 올린 소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학도 안 가고 사회에 먼저 나가보겠다고 속 썩이던 아들을 지금까지 키워내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하신 존경하는 부모님께 (중략) 지난 11일 동안 받은 과분한 사랑들을 바칩니다. (중략) 아직도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는 게 즐겁고 고객과 스몰토크하는 게 좋고, 나의 음료를 마시고 맛있다며 감사인사를 받는 게 너무 좋습니다. 트럭시위는 끝났지만 파트너 처우 개선을 위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길 바랍니다.”(구강기로의 퇴행)

스타벅스에 입사한 지 만 2년 된 한 파트너는 최근 노조위원장이 되겠다며 공개적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MZ세대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저항해나갈지, 기성 노동조합과 함께 갈 수 있을지 계속 따라가며 취재해보겠습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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