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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토크] 그 회사의 ‘깨끗한’ 조직 문화

등록 2020-07-04 22:03 수정 2020-07-08 14:41

9년 전에 있었던 일을 기사로 쓰다보니, 예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옛 기사를 많이 찾아봐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2011년 6월 보도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격노 메시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거의 모든 경제지가 이를 주요 기사로 다루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해외의 잘나가던 회사들도 조직의 나태와 부정으로 주저앉은 사례가 적지 않다. 삼성도 예외가 아니다.” “감사를 아무리 잘해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 그룹 구성원들에게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이는 삼성테크윈에서 조직적인 제품 성능 조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왔습니다.(당시 기사 참조) 그러나 이 메시지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불과 3년 전인 2008년 삼성의 편법 승계와 차명계좌 운용, 비자금 사건으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은 뒤 이건희 회장 본인이 경영에서 퇴진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조직문화를 훼손’한 것이지요. 당시 특검이 ‘감사’를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회장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법원은 그에게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재벌 정찰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 사면까지 받습니다. 그 사면의 대가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다스의 미국 소송 비용을 대납해준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이런 식인데도 삼성 구성원들이 ‘부정을 저지르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을까요? 이 회장의 메시지가 잘 전달됐는지도 의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에버랜드에서 생긴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삼성 미래전략실이 온갖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 불법은 국가기관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기에 한국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무척 큽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경영권 승계 문제와 노조 와해 사건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노동삼권을 보장하고, 시민사회단체와의 소통도 확대하겠다고 말했지만, 에버랜드 노조 와해 피해자 당사자의 사과 요구에는 여전히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노조 와해 가해자들도 별일 없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단독] 백혈병 피해 유족에 ‘우수고객’ 조롱한 삼성’ 기사 취재 과정에서 삼성 직업병 문제를 제기해온 시민단체 반올림을 ‘직업병 피해 가족과 이격(사이를 벌려놓음)시키라’고 하고 직업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우수고객’으로 조롱한 경위에 대해 물었으나, 삼성 쪽에서 돌아온 답변은 “입장 없음”이었습니다.

삼성이 ‘사과’와 ‘반성’을 말하는 지금, 3만3천 쪽 재판기록 가운데 가장 뇌리에 남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특검이 장기화됨으로써 삼성인의 자긍심에 상처.”(2008년 삼성그룹 노사전략) 삼성이 “트집잡기에 혈안이 돼 있는 사람들”이라 지적질할지라도, <한겨레21>이 9년 전 삼성의 잘못을 ‘뉴스’로 전하는 이유입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법 위의 삼성 미전실’ 연속보도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8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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