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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012년 12월, 삼성 CEO 세미나 동영상 보니

거대한 노조에 맞서는 외로운 삼성?
등록 2020-07-12 11:42 수정 2020-07-16 00:03
2012년 12월 삼성 미래전략실 주관으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인터뷰 동영상을 갈무리한 검찰 보고서.

2012년 12월 삼성 미래전략실 주관으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인터뷰 동영상을 갈무리한 검찰 보고서.

2011년 7월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삼성은 계열사의 복수노조 대비 태세를 크게 강조하고, 최고경영자(CEO)들의 관심도 독려했다. 노사 업무를 맡은 임직원은 물론 계열사 CEO를 대상으로도 ‘노조 와해’ 전략을 교육하고, 교육한 대로 이행하는지 항목을 매겨 점수로 평가하기도 했다.

2012년 12월 미래전략실 주관으로 열린 ‘CEO 세미나’에서는 ‘노조 설립 후 CEO의 고충’을 맡은 김봉영 당시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됐다. 검찰 수사기록에 첨부된 이 인터뷰에서 삼성 고위 임원들의 노조에 대한 ‘혐오’가 그대로 드러난다. 김 사장은 주요 발언은 이렇다.

“지난해 7월 문제 인력 4명이 회사의 징계를 회피하고자 하는 그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외부 세력과 연대해서 노조를 설립했다. 이로 인해서 그동안 유지해오던 비노조 경영 체제가 깨지면서 그 자체만으로도 임직원에게 많은 충격을 가져다 줬다. 노조는 비록 10명 미만의 소수인력이지만, 외부 세력과 연대를 해서 희사를 괴롭히고 있고 여러 가지 경영활동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아주 사소한 사안도 노동부라든지 경찰, 검찰 등 관련 기관에 고발을 남발하고 있다. 현재도 25건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회사에서 소요되는 비용, 시간의 손실이 굉장히 많이 발생되고 있고, 특히 회사가 부당 노동행위로 제소를 당할 경우에 대표이사가 조사과정에 출석해야 되는 그런 부담감이 있다.”

그러나, 2019년 12월 삼성에버랜드 임직원 12명이 유죄를 선고받은 삼성노조와해 사건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관계는 회사가 ‘문제인력’ 4명에게 한 징계가 노조에 대한 ‘업무방해’라는 것이었다. 문제인력이 회사의 징계를 회피하고자 노조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노조를 설립하려 하니 회사가 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징계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노조가 고발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오히려 회사가 노조를 ‘와해’할 목적으로 고발을 ‘남발’했다. 회사가 조합원들을 형사고발한 것은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징계 역시 법원에서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단독] 삼성생명 금융정보도 사찰…미전실의 노조깨기 참조)

‘유노조기업 CEO로서 소회’ 영상에는 현 삼성준법감시위원인 성인희 전 삼성정밀화학 사장이 출연한다. 성 전 사장이 삼성준법감시위원으로 선임됐을 때 일부 언론은 ‘노조에게 헹가래 받고 퇴임한 사장’이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노동삼권 보장’ 대국민 사과 이후 긍정적인 변화의 징조라고 보도했지만, 인터뷰 영상에서의 발언은 결이 다르다.

“노동조합은 단순한 사원 대의기구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조합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집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노조가 있게 되면 임원이나 간부가 현장을 지휘하거나 리더십 발휘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미전실의 전신인 삼성 회장비서실 인사팀장과 삼성증권 사장, 우리·KB금융지주 회장 등을 거친 황영기 당시 법무법인 세종 고문(현 한미협회 회장)도 ‘전 삼성증권 사장’ 자격으로 ‘삼성의 비노조 경영철학에 대해’ 발표한다.

“민주노총 노조, 한국노총 노조도 데리고 있어봤는데 하나같이 다 힘들다. 공장 해외 이전, 생산라인 재배치, 출퇴근 시간 변경 등 노조 허가(를) 다 받아야 한다. (중략) 삼성 사장들은 비노조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인사 전문가라든지 구조조정본부(미전실 전신)에서 많은 해결을 해주기 때문에 그런 혜택을 보고 있다. 결국은 노조라는 그 거대한 집단과 삼성은 어떻게 보면 외로이 맞서 싸우는 형국이다.”

황 회장이 언급한 “구조본의 문제 해결”은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에버랜드의 노조 와해 사건이라는, 국가기관이 동원된 불법행위로 이어졌다. 그 불법행위로 수많은 노조 조합원이 해고됐고 삼성전자서비스 조합원 두 명은 목숨을 끊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법위의 미전실’ 연속보도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8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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