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삼성 노조 와해 재판기록 3만3천여 쪽을 추가로 입수했다. 여기엔 삼성 미래전략실 문건과 삼성 관계자들의 진술이 담겨 있다. 문건이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힘 있는 삼성, 그 위의 미전실은 삼성을 위해 입법을 추진하고 불법을 저질렀다. 다시 구속 위기에 몰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월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노동삼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며 ‘사과’와 ‘반성’을 말했다. 잘못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밝혀야, 사과의 진정성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21>이 10년 전 삼성의 행적을 다시 기록하는 까닭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법 위의 삼성 미전실 - 국가 경영의 꿈’이다._편집자 주
삼성의 지역별 대관 조직인 ‘지역협의회’를 통해 공무원 등에게 접대는 물론 현금까지 지급했음을 보여주는 미래전략실(미전실) 문건을 <한겨레21>이 입수했다. 또한 노조 설립을 준비하는 직원이나 민주노총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외부 정보원을 두고 활동비를 지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치부가 드러날 상황에 처하면 삼성은 주로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 중심에는 역시, 미전실이 있었다.
대관 업무 담당자가 퇴직하자
1997~2006년 삼성SDI 울산사업장에서 노무·대관 업무를 맡다 건강상의 이유로 2007년 9월 희망퇴직한 ㄱ씨. 그는 퇴직 뒤 회사에 금전을 요구했다. 당시 미전실이 작성한 ‘삼성SDI 문제인력 특이 동향’을 보면, 삼성은 ㄱ씨의 금전 요구를 “대관 업무로 인한 건강 악화를 주장하며 대관 선물 리스트 등 회사 기밀 폭로를 빌미로 협박”했다고 받아들였다. 이에 2009년 5월 “위로금 3억5천만원(수술비 1회 포함)에 합의 후 종결”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0년에도 ㄱ씨는 추가 자료를 회사에 제시했다. 삼성은 “치료비 1억5천만원 지원 및 ‘협박 자료’ 일체 반납에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ㄱ씨가 2011년에도 “회사에 취업 알선을 요구”하고, 2011년 7월 설립된 “삼성노동조합(현 전국금속노조 삼성지회) 누리집에 ‘반삼성 글’ 게시를 시작”하자 삼성은 대책 마련에 다시 나선다.(삼성SDI, 퇴직간부 회사 협박 동향, 2011년 10월27일) 실제 당시 ㄱ씨는 삼성노조에 “양심고백을 하겠다”며 자신이 가진 자료를 폭로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언론과도 접촉했다.
삼성은 ㄱ씨가 보관한 자료가 공개될 경우 미칠 파장에 대해 분석했다. 공개 때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한 자료로 삼성 ‘울산지역협의회 현금 장부’를 꼽았다. 여기엔 삼성의 “대외 섭외를 위한 현금 지원”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역협의회란 삼성이 지방자치단체·경찰·고용노동청 등을 상대하기 위해 지역별 대관 업무를 맡은 조직이다. 2011년 6월 기준 삼성의 지역협의회는 수원·중부·경북·울산·호남 총 5곳에 있었으며, 지역별로 임원을 포함해 5~10명의 각 계열사 파견직원이 근무했다.(지역협의회 운영 현황, 2011년 6월14일) ㄱ씨가 일했던 울산지역협의회는 삼성SDI 울산사업장과 삼성정밀화학 울산사업장 등 7개 계열사 7개 사업장이 관할 지역이었다.
삼성 울산지역협의회가 ‘대외 섭외를 위한 현금 지원’을 했다면, 대관 업무 상대방인 공무원 등에게 현금을 준 것을 뜻한다. 지역협의회는 경찰서·지자체·고용노동청 등에 기업 관련 민원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삼성은 이 장부가 공개되면 “지역협의회 실체가 노출”되고, “대관·언론 등 사회 이슈가 우려된다”고 봤다. ㄱ씨가 갖고 있던 자료에는 현금 장부뿐만 아니라 대관 선물 명단, 법인카드 접대 내용도 있었다.(삼성SDI, 퇴직간부 회사 협박 동향, 2011년 10월27일)
목적은 ‘무노조 경영’ 유지
삼성이 “대내외 정보 채널”을 중시한 이유는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사내외 동향 파악이 제대로 되면 (노조) 설립 징후 포착 및 조기 해결이 가능하고, 대외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면 비공식적 협조를 통한 노조 와해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ㄱ씨가 보관한 문건 가운데는 ‘SDI 울산 노조설립신고서(Paper Union)’도 있었다. 삼성SDI에서 노조 설립 징후가 포착되면 “군청(에 상주) 근무”(하는) 직원이 한발 앞서 ‘알박기 노조(유령노조)’ 설립신고서를 내 실제 노조를 설립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이 설립신고서가 공개되면 “군청 근무·유령노조 설립 시도 등 노조 설립 방해 근거로 활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공무원 등에게 로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계에도 ‘삼성 사람’을 심었다. 삼성은 “산별·지역 노동계 내부 협조자를 확보”할 것을 목표로 “대외 정보활동 경험이 있는 노사 간부를 중심으로 협조”해 “노동계 특이 사항을 체크하고, 임직원 가운데 외부 세력 연계·접촉 현황을 파악”하려 했다. 계열사는 “지역협의회와 협조”하라는 지시도 추가돼 있었다.(2011년 그룹 노사전략) ㄱ씨가 갖고 있던 자료에는 민주노총에 대한 ‘도청’ 관련 진술서와 동영상이 포함됐다. 해당 진술서와 동영상은 KT노동조합 간부였던 ㄴ씨의 것으로 적혀 있다. 이 밖에 ‘외부 모니터(정보원으로 추정) 진술서’와 ‘외부 모니터 활동비 입금 내역’도 있다. 돈을 주고 민주노총 동향을 감시한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삼성은 이 자료에 대해 “공개 땐 언론 보도 사회 이슈화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총 동향 파악 관련 내용 노출 땐 ‘반삼성 궐기대회 추진’ 등이 우려된다”고 분석했다.(삼성SDI, 퇴직간부 회사 협박 동향, 2011년 10월27일) <한겨레21>은 6월24일 ㄴ씨에게 전화를 걸어 ‘ㄱ씨를 아느냐’고 물으니 ㄴ씨는 “모른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삼성이 ‘노동계 인물’을 포섭해 활용한 정황은 더 있다. 2012년 삼성SDI 노사전략 문건에는 “금속노조 내부 핵심 간부 우군화: 충남 금속지부장 외 1명, 울산 금속 간부 1명”이라 쓰여 있다. 실제로 2011년 10월 삼성SDI 천안사업장 직원 ㄷ씨가 같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그해 설립된 삼성노조에 가입할 것을 제안하자, 이 자리에 참석한 ‘모니터’는 “ㄷ(씨)에게 동조하는 다른 인력들도 없고, 외부 노동계와도 멀어져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삼성SDI에 ‘보고’했다. 이에 삼성SDI는 “ㄷ(씨) 동조자가 없어 (노조) 설립을 해도 단기간 내 와해될 것이라고 민주노총 충남본부 등에 전달해 (ㄷ씨를) 지원하지 않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미전실에 보고한다.(삼성SDI 문제인력 삼성노조 가입 제안)
“집안 식구들까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삼성이 이른바 퇴직자를 포함한 ‘문제인력’을 “안정화”(더는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조처)하는 방법은 주로 돈이었다. 미전실 문건을 보면, 삼성은 ㄱ씨에게 삼성SDI 협력사에 취업을 알선한 것으로 적혀 있다.(삼성SDI 퇴직자 협박 건 사실상 종결, 2012년 1월27일) 노조를 설립하려던 이들에게도 자녀를 계약직으로 취업시키거나, 당사자가 원하는 해외 사업장으로 발령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동향을 파악하고 감시하며 엇나가지 않게 관리하는 ‘심성 관리’도 지속했다.
삼성이 들키고 싶지 않은 약점을 알고 있는 퇴직자의 ‘안정화’와 ‘심성 관리’를 위해 거액을 쓴 사례는 여럿이다. ‘자동차 마니아’인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버랜드가 운영하는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레이싱’을 즐겼다. 이 회장이 몰던 수억원대 슈퍼카는 삼성화재 교통박물관에 보관돼 있었다. 2008년 8월과 2009년 2월 교통박물관에서 퇴직한 직원 ㄹ씨 등 3명은 2011년 1월7일 이건희 회장의 김영택 비서팀장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우리 3명은 지난 20~30년 동안 어른(이건희 회장) 일을 위해 앞만 보고 그렇게 달려왔는데, 근무하는 동안 보고 듣고 해왔던 모든 일들. 남은 물론 집안 식구들까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근무해왔다. (중략) A(이건희 회장)를 위해 죽으라면 죽을 정도로 충성을 해왔고, 그래서 사표를 쓸 때도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사표를 제출했죠.”
삼성에버랜드 이아무개 전무와 만난 자리에서 ㄹ씨는 10억원을 요구했다. 삼성은 이후 “개별 면담을 실시하여, 구체적 요구 사항 등을 파악한 후 별도 지원 여부를 결정. 나머지 인력들은 지속적으로 관찰 및 동향 파악 집중”하기로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2008년 8월과 2009년 3월 스피드웨이를 퇴직한 이들이 각각 위로금 4억원과 3억4천만원을 받은 뒤 삼성 계열사·협력업체에 재취업했다. 나머지 퇴직자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불만은 무엇인지도 꼼꼼하게 파악한 삼성. 결국 이건희 회장을 도우며 그의 사생활을 지켜본 퇴직자들이 퇴직 뒤 불만을 품을 것을 우려해 거액의 위로금으로 입을 막고, 추가 요구가 들어오자 대책 마련에 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교통박물관·스피드웨이 퇴직자 관련 동향, 2011년 2월8일)
유령집회 공개되자 “실제 집회 하라”
치부가 드러날 위험이 다가오면 삼성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삼성SDI ㄱ씨가 한창 금전을 요구할 때인 2011년 11월11일, 미전실 인사지원팀 주관으로 계열사 인사 담당 임원들의 ‘화상회의’가 열렸다. 강경훈 당시 인사지원팀 부사장이 지시했다. “각 사 및 지역협의회에서는 이 시간 이후 향후 문제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노사 경비 사용 내역이나 대관 연락처 등 일체의 자료들을 새로이 생성하거나 자료를 남기지 말아야겠습니다. 현재 혹시라도 보관 중인 장부가 있다면 즉시 폐기 조치할 것을 당부드립니다.”(화상회의 공지사항, 2011년 11월11일) 대관 업무를 ‘합법적으로 하라’는 게 아니라 ‘걸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나온다. 2011년 <한겨레>가 연 ‘정보공개청구 캠페인’에서, 대학생 3명이 경찰서에 접수된 삼성의 ‘유령집회 개최 현황’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보도했다. 삼성이 사옥 근처에서 집회가 열리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경찰서에 미리 ‘초일류 캠페인’ ‘핵심가치 결의대회’ 등의 집회 신고를 하고 실제로는 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언론 보도였다. 그러나 미전실이 내놓은 대책은 이랬다.
“각 사에서는 집회 신고와 관련해 관할 경찰서와 협조 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주 1회 정도 실제 대응 집회를 개최해 유령집회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켜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집회 신고 내용에서도 단순 캠페인성에서 탈피, ‘결의대회’ 등으로 보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화상회의 공지사항, 2012년 3월 날짜 미상)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