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용노조가 아닙니다.” “노조에 가입하면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검 검사실에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피의자로 출석한 ‘에버랜드노동조합’ 조합원들은 검사의 추궁에 하나같이 이렇게 항변했다. 복수노조 시행(2011년 7월) 직전인 2011년 6월17일 설립된 에버랜드노동조합을 삼성은 ‘대항노조’ 또는 ‘친사노조’ ‘우호노조’라고 불렀다. 삼성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은 에버랜드에서 근무하던 조장희씨 등이 노조를 설립하려 하자, 조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을 해고 등 징계하는 한편, 대항노조를 설립해 단체협약을 먼저 체결하는 방식으로 조씨가 설립한 ‘삼성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막으려 했다. ‘진성노조’ 와해 수단으로 다른 노조를 세운 것이다.
삼성이 설립한 노조의 조합원은 서류상으로 많게는 20여 명까지 가입해 있었다. 고졸부터 박사, 조리·청소·영업·연구원까지 하는 일도 다양했다. 그러나 삼성 미전실조차 ‘PU’(페이퍼유니언·서류상 노조)로 분류했기에,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온 조합원들이 검사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해주겠다’는 회사의 약속을 믿고 노조를 이끌었던 전·현직 노조위원장은 2019년 12월 1심 재판에서 미전실·에버랜드 임직원 10명과 함께 유죄 선고를 받았다. 노조와 조합원들의 속사정을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재판기록(3만3천 쪽)에 포함된 미전실 문건과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통해 살펴본다. _편집자
2011년 6월4일, 에버랜드에서 조장희(현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지회 부지회장)씨 등이 노조를 설립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전실은 사흘 뒤부터 “향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DH 등 대책(을) 준비”한다. 여기서 ‘DH’는 ‘대항노조’를 말한다. 미전실은 2011년 7월1일 복수노조 시행에 대비해 대응 시나리오를 이미 만든 상태였다. 진짜 노조를 뜻하는 ‘진성노조’가 설립될 경우, 이에 대항하는 어용노조를 만들어 진성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빼앗고 노조를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이 핵심이었다.
노조 설립 소식에 어용노조 개문발차
조씨가 노조를 설립하려 한다는 소식에 회사는 노조 설립에 대응할 상황실을 만든 뒤, 원래 노사 업무를 맡다가 이와 관련 없는 업무와 지역으로 옮겨간 임아무개 차장을 노조위원장으로 세우기로 한다. 당시 상황실장을 맡은 이아무개 에버랜드 인사지원실장(전무)이 “어차피 노조가 설립될 거면 (위원장을)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하자, 노사 업무를 맡던 김아무개 차장이 수소문했고 임 차장이 낙점됐다. 임 차장 말고도 노조원 3명을 “평판조회를 거쳐”(김 차장 진술) 추가로 선정했다. 대항노조 설립은 “미전실 강경훈 부사장에게 보고를 했고, 승인을 받아 실행됐다”(이 전무 진술).
이후부터는 속전속결이었다. 6월17일 경기도 수원 영통에 있는 중식당에서 ‘에버랜드노동조합’ 설립총회를 열어 위원장, 사무국장, 회계감사를 뽑았다. 6월20일 작성된 미전실 문건(에버랜드, 문제인력 노조설립 기도 대응 동향)을 보면, 에버랜드에서 노사 업무를 맡은 서아무개 차장이 노조 설립에 필요한 설립신고서, 총회 회의록, 규약, 임원 명단, 노조 직인을 비롯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서와 회사 쪽 답변 공문, 단체협약 최종 합의안 등 서류를 준비했다. 노조와 회사 쪽의 단체협약 최초안과 회의록은 최종 합의안을 우선 써놓고, 이틀 뒤인 22일에 쓰기로 계획했다. 수학시험의 답을 미리 써놓고, 풀이 과정은 나중에 쓰는 격이다.
문건에 적힌 단체교섭 요구서는 6월22일 접수된 것으로 나와 있다. 임금·단체협약이 체결된 것은 단체교섭 시작 이틀 만인 6월29일이었다. 보통 노조의 단체협약 체결은 노사 간 기싸움 등으로 오랜 기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온 삼성에서 노조 설립과 단체협약 체결이 단 12일 만에 끝났다. 회사는 6월30일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조장희씨가 삼성노조를 해도 2년 동안 단체협약 체결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협약 체결을 서두른 것이다. 게다가 노조 설립신고서와 총회 회의록 같은 문건은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미전실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회사가 작성한 것이 드러난 셈이다.
에버랜드 노사 담당 직원들은 어용노조라는 게 발각될까봐 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6월19일부터 교육했다. “용인 쪽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고, 대외적으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노사 업무 담당 문아무개 부장 진술) 서울과 수원의 호텔에서 퇴근 뒤 진행했다. 그러다 “업무 및 동료들의 눈치 등으로 퇴근 후 교육에 대한 부담을 호소”해 근무시간으로 변경됐다.(6월22일 에버랜드 일일동향) 교육 내용은 상황별 ‘대내외 행동지침’과 단체교섭 시뮬레이션 등이었다. 복수노조 시행일인 7월1일, 노조 설립이 드러났을 때를 대비해 임 위원장에게 언론 인터뷰 교육도 했다.
7월12일 조장희씨 등이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삼성지회)를 설립함으로써 에버랜드는 복수노조 사업장이 됐다. 복수노조일 때는 조합원 수가 강력한 경쟁의 도구가 된다. 하지만 에버랜드노조는 조합원 가입 독려나 홍보 등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초대 회계감사인 김아무개 조합원은 “공개적인 홍보 활동을 한 적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한 번도 안 했다”고 답했다. 설립 이후 노조원이 가입과 탈퇴를 반복했지만, 새로운 조합원이 누군지 아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누군지 모른다고 답하는 조합원이 많았다.
어용노조 생존 프로젝트 가동
에버랜드노조의 미래는 노조와 회사가 결정했다. 조합원 가입도 마찬가지였다. 미전실 문건에 “친사원 노조 활동 구체화 및 향후 추진 일정을 검토”하기로 한 이튿날인 8월11일 ‘친사원 노조와 업무 협의’를 했다. 네이버에 노조 카페(Ever NJ) 운영과 조합비 납부, 사용내역 증빙이 업무 협의 내용이었다. 조합원도 “검증된 인력으로 보강”하기로 하면서, “임 위원장의 사전 접촉 근거와 승인 절차 등 스토리(를) 작성”하기로 했다.
2013년 1월 삼성노조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에 가입한 이후에는 에버랜드노조 조합원 수를 늘리고, 노조를 한국노총에 가입시키는 등 “어용 시비를 차단”하려 했다. 대외 활동으로 “한국노총 용인지부 의장을 사전 접촉(1월)하고, 한국노총 가입 검토 및 용인지부 행사 참석 등(2월)”을 계획한다. 대내 활동으로는 “2월 퇴근시간 노조 가입 선전전 등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직원 왕래가 드문 장소를 선정, 소문 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삼성 미전실은 밝혔다. “우호 노조위원장 등 핵심 간부를 대상으로 인터뷰 요령 및 대응 논리 등을 반복 교육”하고 “이를 위해 교육 매뉴얼을 작성하고 핵심 조합원을 재선정, 교체”한다는 계획도 세웠다.(금속노조 가입 파급효과 및 대책, 2013년 1월7일) 실제로 에버랜드노조는 2013년 3월8일 임시총회를 열어, 부위원장·회계감사·사무국장을 교체하고 한국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정한다.
또 2013년 12월 급식사업 부문이 ‘삼성웰스토리’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사하고, 2014년 6월 에버랜드에서 대외협력 업무 등을 맡았던 김아무개씨로 에버랜드노조 위원장이 바뀌었다. 이때 노조위원장 업무인수인계서는 회사 쪽에서 노사 업무를 맡은 서아무개 차장의 컴퓨터에서 작성돼 출력한 것이었다. 이 문건에는 서 차장이 ‘가필’한 글씨까지 남아 있었다. 2014년 11월에는 노조와 노사 담당자가 웰스토리 분사에 따른 조합원 ‘탈퇴 계획’을 논의했다. 웰스토리 분사에 따라 에버랜드노조가 삼성지회에 밀려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잃을까봐 노조원 감소를 걱정한 것이었다.
해고 걱정에 불법행위 가담한 노동자들
노조 활동을 회사가 주도하다보니 조합원들의 검찰 진술은 안타까울 정도로 앞뒤가 안 맞았다. 설립총회 회의록에 노조 규약을 조합원에게 나눠주고 배포한 것으로 돼 있는 1기 노조의 사무국장이자 7년차 조합원인 김아무개씨는 “나는 문서 작업을 하지 않았고 회의록도 처음 본다”, 규약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4명이 참여한 노조의 사무국장이었지만 “노조를 설립할 때 도움을 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노조에 가입해준 것이다. 그것만으로 큰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2기 노조의 사무국장은 2013년 8월 자신이 사무국장으로 당선된 노조 정기총회 회의록에 ‘서기’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검찰 조사에서 그 회의록을 “처음 보는 문건”이라고 말했다가 자신의 도장이 찍힌 것을 보고 말을 바꾼다. 이때 작성된 회의록에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 경위를 묻자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사 쪽의 평판조회 같은 검증을 거쳐 에버랜드노조 조합원이 된 이들의 가입 동기는 ‘고용 보장’이었다. “고졸 출신이 권고사직을 많이 당해서” “삼성전자(또는 삼성물산) 사람들이 많이 에버랜드로 넘어와 구조조정당할까봐” 등의 이유를 댔다. “이름을 걸고 고용을 보장해줄 것”이라거나 “노조에 가입하고 단체협약을 맺으면 고용이 보장된다”는 이 전무나 임 노조위원장의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문 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회사가 사직을 권고하는데 이를 견디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사람은 100명 중에 1~2명 정도밖에 안 된다. 사직을 권고하지 않고 정년을 보장해준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버랜드노조 조합원들이 검찰 조사에서 ‘어용노조가 아니’라고 항변한 것 역시, 고용이 위태로워질까봐 거짓말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이 전무를 포함한 임직원 10명과 에버랜드 전·현직 노조위원장 2명이 부당노동행위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동삼권 빼앗는 ‘이상한 노조’
회사 쪽에서 고용 보장을 약속받고 직원들이 에버랜드노조에 가입하던 그때, 에버랜드에 설립된 또 다른 노조인 삼성노조의 조장희 부위원장은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에버랜드노조는 그 존재만으로 삼성노조 조합원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단체교섭권 등 노동삼권을 빼앗는 칼이 된 것이다. 현재 금속노조는 에버랜드노조를 상대로 ‘노조 설립 무효확인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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