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외 동향 파악이 제대로 되면 (노조) 설립 징후 포착 및 조기 해결이 가능하고, 대외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면 비공식적 협조를 통한 노조 와해가 용이하다.”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이 있었던 2011년 ‘삼성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나오는 내용이다. 삼성은 2011년 6월4일 에버랜드에서 근무하던 조장희(현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씨가 노조를 설립하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복수노조가 시행되는 7월1일 전에 ‘대항노조’(어용노조)를 설립하고 조씨를 징계해고해 노조를 와해할 계획을 세운다.(해당 기사 참조)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청·경찰 등 삼성의 ‘대외 네트워크’가 힘을 발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 노조 와해 재판기록(3만3천 쪽)에 포함된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문건을 통해 한국의 사법시스템을 흔든, ‘보이지 않는 손’을 쫓아간다.
삼성 원하는 대로 대항노조 설립 ‘쉬쉬’
기업 단위 노조의 설립 신고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받는다. 에버랜드에 노조가 설립될 경우 용인시청에 신고해야 한다. 조씨가 노조를 설립할 징후가 포착되자, 에버랜드는 노사 업무를 하던 김아무개 차장에게 ‘시청보안 대책’을 맡긴다. 설립 신고 접수를 맡은 민원실·담당자·담당과장을 ‘섭외’하는 게 김 차장의 역할이었다. 설립총회 회의록과 규약을 만들어 대항노조 위원장으로 선정된 임아무개 위원장이 6월20일 설립신고서를 내도록 했다. 이때 용인시청 지역경제과장이 “(용인시청이) 노조설립필증 결재시 관련 내용이 고용노동부 시스템에 자동 등재돼 (고용부의) 노조 업무 담당자에게 공개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에버랜드는 대항노조 설립 사실이 외부로 빨리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에버랜드는 “용인시청 지역경제과장과 협의해 노조설립필증 교부 시기를 (늦춰서) 23일로 결정”했다. 그러나 용인시청 실무자는 “설립신고서에 특별한 하자가 없는데 필증 발급을 미루기 어렵다”며 설립필증 교부 시기를 늦출 명분으로 “조합원의 재직증명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 덕분에 설립필증은 계획대로 23일 시청에서 나온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발급 시간도 일과가 끝나는 오후 6시로 시청과 협의해 정했다. 일사천리로 대항노조와 단체교섭을 한 뒤 6월30일 단체협약을 맺었으나, 시청에 단협 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7월14일이었다. 보안을 위해서였다. 대항노조를 만들고 단체협약까지 체결했으니 삼성 입장에서는 조씨가 노조를 설립해도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사라졌다. 복수노조를 허용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규정하는 창구 단일화 절차 때문이다. 다음 단계는 조씨를 해고하는 것이었다. 협조자는 경찰이었다. 삼성과 경찰의 유착은 이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노동자의 죽음이 치안부담?’ 경찰권력 주무른 삼성’참조)
조씨가 대포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안 삼성은 6월20일 이아무개 에버랜드 본사 인사지원실장(전무)을 통해 “용인동부경찰서장과 중식 면담을 통해 차량번호판 위조 혐의에 대한 수사 협조를 의뢰”했다. “관련 베테랑 형사를 소개받아서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었다. 다음날 에버랜드 노사 업무 담당자들은 “용인동부서 정보계장을 만나 수사전략을 협의”했다. 6월26일 조씨가 사무실에서 긴급체포된 이후 김아무개 용인동부경찰서장은 이 전무에게 전화를 걸어 “36시간 이후에 (조씨를) 풀어줄 것”이라고 알려줬다. 긴급체포를 했더라도 조사가 끝나면 석방하는데 처음부터 경찰은 ‘36시간’을 예정하고, 조씨 당사자도 모르는 사실을 회사 쪽에 미리 알려준 것이다. 실제 조씨는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실시간 수사 경과 파악, 판사도 접촉 시도
이 수사에 투입된 용인동부서 강력팀 형사는 2018년 12월21일 검찰에 출석해 “형사과장이 수사를 1~2일이면 다 끝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굉장히 재촉했다. 삼성이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적 때문에 수사했다. 직원들끼리 ‘(우리가) 삼성 따까리’ 한다고 얘기했다. (수사)팀장이 삼성 쪽 사람들이랑 자주 통화한 것도 봤다”고 진술했다.
삼성은 수원지검 사건 담당검사와도 접촉해 수시로 수사 경과를 파악했으며, 재판에 넘겨진 뒤에는 판사까지 접촉하려 했다. “삼성전자 박○○(담당 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 변호사를 통해 담당 판사에게 ‘이 건은 해고와 관련 없다’고 설득.”(11월28일)
조씨가 ‘회사 기밀자료’를 유출했다고 회사가 고발(7월15일)한 사건도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경찰이 네이버를 압수수색한 사실, 피의자인 조씨가 진술한 내용, 검사의 수사 지휘 내용과 수사 진행 경과 등이 모두 회사 쪽에 전달됐다. 조씨를 사찰하던 차량을 신고해도 삼성이 경찰서 상황실에 전화해 설명(8월29일)하면 무마됐다. 조씨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타고 온 차량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경찰이 차적 조회로 확인해주기도 한 듯하다.(11월25일) 삼성과 경찰 사이 가교 역할은 최아무개 에버랜드 총무그룹장이 맡았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내가 에버랜드 총무그룹장으로서 경찰서 보안협력위원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과 형사에게 수사 경과를 확인했고 빨리 수사를 끝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삼성이 가장 접촉을 많이 하고, 깊은 관계를 맺은 곳은 노동청이었다. 삼성은 관할 노동청인 경기지청을 수시로 방문해 김아무개 지청장, 소아무개 과장, 이아무개 팀장 등과 ‘중식 면담’ ‘석식 면담’을 하며 이들을 ‘심성관리’했다. 에버랜드 소속 임직원뿐만 아니라, 삼성이 지역별 대관 업무를 위해 만든 조직인 ‘지역협의회’ 임원과 고용부 출신 황아무개 삼성전자 상무도 ‘로비’에 투입됐다. 특히 황 상무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그는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고용부의 근로감독 결과를 불법파견이 아닌 것으로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인물이다.(‘삼성전자 인사팀 외장 하드서 발견된 고용부 문건 ‘빨간펜’’ 참조)
황 상무는 최주현 당시 에버랜드 사장이 삼성노조의 유인물 배포를 막은 부당노동행위 혐의 피의자로 출석해야 할 상황에 놓이자, 김 지청장을 만나 “조사가 아닌 예방 차원의 방문, 보안 유지 철저 약속, 무혐의 처리 예정”이라는 답변을 받아낸다.(11월9일) 에버랜드 노사담당자와 사내변호사는 최 사장의 출석 전에 미리 경기지청을 방문했다. 신문조서 작성을 완료해놓고(11월16일), 최 사장은 경기지청을 방문해 신문조서 내용을 확인한 뒤 서명만(11월18일) 하기 위해서다. 최 사장이 경기지청을 방문한 시간은 20분. 신문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이라면 삼성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경기지청이 신문조서를 허위로 쓴 셈이다.
경기지청은 애초 삼성에 밝힌 대로 무혐의 처분하려 했는데 고용부 본부에서 현장조사를 나오는 등 추가 수사의 기미가 보였다. “김 지청장이 ‘본인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며 자신감을 피력”(11월22일)했지만, 황 상무는 고용부 본부 권아무개 당시 고용부 노사협력정책관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고소 건과 관련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는 고용부의 입장을 확인”했다. 권 정책관은 황 상무에게 “해당 건 관련 이채필 고용부 장관(에게) 보고(할) 계획”이라는 내용도 알려준다. 권 정책관은 황 상무의 부탁을 받아 삼성전자서비스 근로감독 결과를 바꾸게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로비 투입된 고용부 출신 삼성전자 임원
삼성노조 동향 파악을 담당했던 김 차장은 부당노동행위 피고소인으로 수사받으면서,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경기지청 근로감독관과 저녁식사를 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검찰 수사와 관련해 “12월1일 검찰 지휘 재상신 예정”이라는 정보를 나누고(11월28일), 근로감독관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무혐의 의견으로 판단되며 노조 성향을 알고 있는 만큼 회사(삼성)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2012년 9월28일). 검찰 조사에서 검사가 “근로감독관에게 청탁한 것 아니냐”고 따져묻자 김 차장은 “제 입장을 설명했을 수는 있지만 잘 봐달라고 청탁을 한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노동청뿐만 아니라 노조 조합원, 노동조합이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는 노동위원회에도 삼성은 손길을 뻗쳤다. 조장희씨가 초심에서 기각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신청하자, 황 상무는 이아무개 중노위 기획총괄과장을 만나 “공익위원 선정 협조 요청”을 한다. 중노위는 심판 사건에 참여할 공익위원(3명)을 사건별로 배정하는데 조씨 구제신청에 회사 쪽에 우호적인 사람을 배정해달라고 로비한 것이다. 이에 이 과장이 “이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공익위원 선임 건도 각별히 챙기겠다”고 답했다고 미전실 문건은 적고 있다.(12월28일)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이 접수된 경기지노위의 이아무개 위원장을 만났을 때도 “알겠다, 적극 협조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2012년 1월13일) 사건별로 배정된 공익위원의 성향 파악은 물론이고, 공익위원에게 청탁하기 위한 ‘섭외’ 시도도 삼성은 가능한 것이다.
문건 속 경찰·공무원 “기억나지 않아”
삼성과 접촉한 것으로 미전실 문건에 언급된 당시 용인동부경찰서장은 검찰 조사에서, 고용부 경기지청장·중노위 과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삼성 노조 와해 사건과 관련한 대부분의 법적 분쟁에서, 경찰·노동위에서는 삼성이 이긴 반면, 법원에선 노조와 조합원들이 승소했다는 점이다. 회사가 고소한 형사사건은 무죄 판결되고, 회사가 행한 징계는 무효가 잇따랐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 ‘법 위의 삼성 미전실’ 연속보도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88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