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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따뜻한 햇살 쏟아지는 침대에서 가볍게 눈을 뜹니다. 혹은 친구들과 환호하며 먼바다를 바라봅니다. 일촉즉발, 생과 사를 넘나드는 모험영화나 재난영화 같은 데서 가장 좋은 순간은 늘 마지막이었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제자리로 돌아오니까. 세상과 함께 주인공한테도 안온함이 찾아들 테니까. 이 위기가 있어 그 순간은 한결 더 안락할 테니까. 어린 시절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니 <구니스> 같은 영화에 열광했던 마음입니다. 주인공 지치고 아픈 모습 보기 괴로울 때, 마음만은 한발 앞서 결말에 두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안심했습니다.
#내 자리는 6호차 2D. 옆 사람 자리는 6호차 2A. 두 좌석 건너 멀찍이 앉은 사람을 봅니다. 동대구역 향하는 KTX, 긴장돼 콧날 위 마스크 철심을 괜히 톡톡 건드립니다. 2월20일부터 매일 열렸던 대구시 코로나19 브리핑 자료로 눈을 돌립니다. 다급하게 치솟던 확진자 수, 글에서마저 느껴지던 긴장감은 최근으로 올수록 느슨합니다(4월19일 대구시는 코로나19 브리핑을 종료합니다). 모험은 이렇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야. 평소에도 종종 생각하지만, 이런 날들에 더 자주 흥얼대는 노래를 듣습니다. 시인과촌장의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가게와 가게 사이 건너다니며 2박3일 대구에 있는 동안 틈날 때마다 들었습니다. 기타 전주가 나오는 순간부터 왠지 마음 놓입니다. (눈치챈 독자도 있으시겠지만) ‘보통의 날들을 기다리며’(제1309호) 기사 어딘가 알 듯 모를 듯 노래 가사를 담았습니다. 같이 안심하고 싶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람이 상처 입습니다. 사건은 어떻게든 끝이 난대도, 상처만은 남는다는 걸 이런저런 취재 하며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풍경 속에 상처 부여잡고 홀로 우두커니 선 사람. 사건과 재난, 그 처절한 과정 가운데서도 가장 아린 모습입니다. 고깃집 하는 김 사장님, 카페 하는 우 사장님, 주점 하는 도 사장님, 식자재 납품하는 정 사장님. 차려내신 밥 먹고 차 마시면서 듣는 얘기가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할 때면 그래서 자주 아찔했습니다. 빚으로 파낸 구멍을 또 몇 년 메워야 합니다. 그런 뒤에도 안온함은 쉽게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재난 속에 봐버렸으니까. 나의 제자리만은 원래도 이토록 불안한 것이었구나. 모험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것 떠올리며 사장님을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안심을 찾는 내가 미안했습니다.
#김 사장님에게 그래도 위로라면 손님입니다. 걱정하다가도 손님 얘기에 슬쩍 웃는 사장님 얼굴을 보다가, 우리 동네 사장님 얼굴을 떠올립니다. 실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영업에 대해 말해야 할 때, 쉽게 한국 서비스업 부가가치 하락의 주요 원인이라고 적고,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면, 부가가치를 줄여가며 손님 몫을 얹어주는 사장님 얼굴을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마감 이틀 뒤 토요일 저녁 김 사장님과 통화. “손님은 이제 좀?” “오늘, 기다려봐야겠죠.” 기다림의 결과는 차마 묻지 못했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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