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가표에 한겨레가 없어 기자님을 찾아왔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몹시 불던 밤, 서울 종로에서 제보자를 만났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단가표라니. 당황하는 기자에게 제보자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기자 생활 7년 만에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일보 **만원, ○○신문 **만원…. 를 뺀 대한민국 언론사 대부분이 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믿기 힘들었습니다. 돈만 내면 기사를 실어준다? 그걸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다?
서준혁씨가 사칭을 했는지 확인하는 취재는 비교적 쉬웠습니다. 제가 연락하는 데마다 담당자가 ‘멘붕’에 빠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당신이 봤던 기사는 다 거짓말입니다.” 그 말에 ㅅ공단 관계자는 저한테 반문했습니다. “기자님은 기자가 맞으세요?”
마침 가짜뉴스 기획으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날이라, 상패를 찍어서 보내준 기억이 납니다. 이해합니다. 아무것도,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기분.
언론홍보대행사가 올린 ‘단가표’가 실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작업은 조금 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조윤영 기자가 가상의 친환경 화장품 업체 ‘페이크’의 대표로 변신했습니다. 7가지 허위 사실이 담긴 가짜뉴스를 진짜 ‘돈만 내면’ 검증도 안 하고 실어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요. 변신을 위해 거금(?) 1만3500원을 주고 회사 근처 문구점에서 산 흰 가운을 걸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설마 이렇게 허접한 사진에 속을까’ 싶었는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알 만한 유명 언론사에 실렸습니다.
언론홍보대행사 ㅈ사의 직원은 친절했습니다. “리드(도입부) 문장을 잡아야 기사처럼 보여요.” 기사 작성 코치까지 해줬습니다. 수습 교육 때가 생각나더군요. 기사를 처음 써보는 사람을 위해 ‘기사란 이렇게 쓰는 것이다’ 가르쳐주는 가이드라인까지 있었습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기사가 이렇게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돈을 내고 가짜뉴스를 실었습니다. ‘변지민 연출, 조윤영 출연’의 가짜뉴스는 포털의 한 페이지를 당당히 장식했습니다. 자판기처럼 돈을 넣자 기사가 나오더군요. 한국의 언론 신뢰도가 세계 최하위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사보다 취재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취재 에피소드가 많은데 이걸 기사에 다 담을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꼭 이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받고 맛집 소개를 해준 방송 프로그램들의 실상을 까발린 다큐 처럼요.
한편으로 지난번 가짜뉴스 기획 뒤 ‘21 토크’에서 에 어울리는 글로 돌아오겠다는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마음 한편이 홀가분했습니다.
‘단가표에 들어 있지 않은’ 좋은 언론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런 실험도 독자분들이 지원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font size="4"><font color="#008ABD">뉴스룸에서</font></font>어느 옛노래에선 “사랑해요, 세상의 말 다 지우니 이 말 하나 남네요”라고 했는데, 저에 대해 세상의 말을 다 지우면 ‘제주’ 하나 남을 듯합니다. 안녕하세요, 제주 사람 서보미입니다. 쉬는 시간이면 복도 창에 매달려 용두암 바다 저 멀리 돌고래 떼의 유영을 구경하고, 체육시간이면 친구들과 바다 수영을 하던 중학교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벌써 제주를 떠나 육지에서 생활한 지 20년 가까이 됐고 그 절반을 기자로 살았네요. 신문 등에서 사회부·경제부·정치부를 거쳤고 에는 2012년에 이어 2016년 두 번째로 왔습니다. 아, 개인 사정으로 휴직했다 1년 만에 복직했으니 세 번째로 온 거네요. 처음엔 ‘막내’였는데 어느새 ‘허리’ 기자가 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에 변지민·이재호·조윤영 기자처럼 좋은 기사를 쓰는 후배 기자가 많아졌거든요. 후배가 훨씬 더 많아진 언젠가, 제주 지역 주재 기자로 제주에 돌아가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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