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오래된 연인, 다시 두근거리고 싶다면

등록 2014-07-01 14:15 수정 2020-05-03 04:27
1

1

순서만 바뀐다. 영화, 커피 그리고 밥. 뻔하다. 내일은 뭐 먹지? 단골집을 만들어놓는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단골집만 방문한다. 할 말도 별로 없다. 일상을 모두 공유하고 나면 조용히 스마트폰으로 시선이 간다. 어차피 일상은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니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도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두근거리는 감정이 식은 커플들의 고민이다. ‘함께 있으면 좋은 감정’보다 ‘없으면 아쉬운 감정’이 더 커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시기랑 맞물린다. 그때쯤 권태감이 밀려온다. 이런 연인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데이트 코스가 있다. (물론 권태기가 뭐냐고 먹는 것이냐고 묻는 닭살 커플도 상관없다.) 애인과 서로의 출신 학교를 같이 방문해보는 것이다.

지난주에 축구 시합이 있었다. 시합 장소는 내가 나온 중학교였다. 평소 가보려고 마음만 먹었던 장소를 10여 년 만에 가게 되었다. 조금씩 바뀐 학교 주변을 보면서 내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땐 여기에 문방구가 있었는데….’ 모래 운동장에 잔디가 깔리고, 곧 쓰러질 것 같던 건물이 새로 지어진 모습을 보니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즐겁게 축구를 한 것도 좋았지만, 잊었던 학창 시절이 생각나면서 추억에 젖는 시간을 선물받게 돼 더욱 좋았다. 그리운 친구도 보고 싶고, 당시 순수했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몰랑몰랑해지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가? ‘바쁘다’는 소리를 항상 입에 달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했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데이트 코스였다.

상대를 사랑하면 그를 알려고 한다. 상대방을 열심히 관찰하고, 질문한다. 그러나 이제 상대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할 때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생략하고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서로의 학교를 찾아가 상대방의 학창 시절 추억을 공유하는 과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로에게 비밀을 하나씩 더 만들어주는 것처럼, 추억을 공유하는 것도 서로를 애틋하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사랑이란 상대의 과거를 받아주고, 감정을 받아주고, 아픔을 받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약자가 되어보는 경험이다. 혹시 모른다. 학창 시절의 기뻤던 혹은 아팠던 추억을 공유한 뒤 둘만의 사랑이 제2의 전성기로 진입할지도.

장슬기 독자

*‘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레디 액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