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다. 이제 막 15개월 된 딸을 둔. 대한민국에 돌을 갓 넘긴 첫딸을 가진 엄마야 많고 많겠지만, 엄마 나이가 마흔을 넘은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좀 늦게 엄마가 되었다. 요즘은 평균 결혼 연령이 많이 올라가고 덩달아 여성들의 출산 연령도 상당히 높아졌지만, 그래도 내 경우는 평균보다 훨씬 늦게 결혼하고 그보다 더 늦게 엄마가 되었다. 세상에 제 자식 귀하지 않은 부모 없다지만 나 또한 마흔에 얻은 딸이 예쁘고, 예쁘고, 어여뻐서 어쩔 수 없이 딸바보가 돼가고 있다. 많은 엄마들이 그러하듯,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모유를 먹이며 천기저귀와 포대기로 키워오다보니 거의 한순간도 품에서 떨어뜨려놓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한국전쟁은 난리도 아니라는 어느 연속극의 유행어처럼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며 십 몇 개월을 보낸 뒤 처음으로 딸아이를 떼놓고 3시간 정도 외출하던 날이었다. 딸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이 소리 저 소리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은 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버스에 앉았는데, 아이를 업고 타면 늘 조심하고 긴장하는 버스 안에서도 그저 창밖 풍경만 멍하니 바라보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사진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저장된 사진은 1천 장이 넘었다. 그 사진들을 한장 한장 천천히 넘겨 보는데… 수많은 딸아이 사진 중 부모님 사진은 단 3장밖에 없는 거였다. 제 자식 크는 거 보느라 부모님 늙으시는 건 못 보고 지나가는 어리석은 자식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딸아이는 눈썹부터 손가락, 발가락, 코딱지, 심지어 똥 누는 모습까지 찍어놓으면서 하루하루 나이 드시는 부모님 얼굴엔 인색했던 나의 카메라. 생각해보면 육아에 지쳐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오늘 하루가 늙어가는 부모님껜 마흔여덟 시간으로 늘려 살고 싶은 하루하루인 것을. 자식 낳아봐야 부모 마음 안다지만 그래봤자 반의 반의 반도 모른 채 나 또한 늙은 부모가 돼갈 것이다.
휴대전화에 카메라 기능이 더해지면서, 또 그 카메라 화소 수가 높아지고 성능이 좋아지면서 이제 우리는 사진 찍기 정말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 편한 렌즈에 우린 무얼 담고 있을까. 예뻐 죽을 것 같은 내 새끼, ‘이 정도는 먹어줘야죠~’ 음식 사진, 그 음식값을 아낌없이 내준 사랑하는 남친 사진, 가끔 나도 숨이 턱 막힐 만큼 반하는 마이 셀카(뿌연 안개 효과시에만)도 좋지만, 아직도 2G폰을 쓰시는 엄마나 눈이 침침해 휴대전화는 오로지 전화 용도로만 쓰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아보는 건 어떨까. 신문 읽으시는 사진, 고구마 드시는 사진, 웃으시는 사진, 부끄럽다 찍지 마라 손사래를 치시는 사진, 다 같이~ 찰칵 부모님과 셀카 사진까지. 확 그냥 막 그냥 여기저기 막 그냥 부모님 사진 한번 찍어보자. 굴욕 샷이면 어떤가. 함께 보고 함께 웃자. 자, 스마일~ 레디 액션!
미모의 재원 독자*지난주 발행된 제1001호 95쪽에 실린 ‘10살 소년을 지키기 위해’ 기사 중 첫 문장의 ‘지난 1월27일’은 ‘2월27일’로, 세 번째 문단의 ‘서울대 의대를’은 ‘고신대 의대를’로 바로잡습니다.*‘레디 액션!’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하는 코너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제안하고 싶은 ‘액션’을 원고지 6~7장 분량으로 써서 han21@hani.co.kr로 보내주세요. 레디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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