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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LP를 어루만지는 돋보기를 쓴 노인을 연상할지 모르겠지만 레코드 페어에 가보면 제법 많은 소년·소녀들도 음반을 고른다. 하지만 레코드를 듣는 취미가 쉽거나 단순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곧잘 듣는 “아직도 집에 턴테이블이 있어!”라는 말에는 신기함과 유별스러움이 묻어난다. 간편하게 내려받은 음원을 휴대전화로 재생하는 요즘 레코드라니.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토킹박스’라는 원통형 축음기를 만든 것은 1877년의 일이다. 이후 스탠더드플레이(SP)에서 롱플레이(LP)로, 모노에서 스테레오로 진화하면서 일회성을 탈출한 음악은 예술을 넘어 생활의 일부가 됐다. 레코드의 재생 메커니즘은 단순하다. 레코드의 소리골을 따라 바늘(Stylus)이 맞닿아 신호를 읽고 카트리지를 통해 소리로 변한다. 이 과정은 물리적 마찰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레코드의 소리골이나 바늘은 마모되면서 음질을 현격하게 떨어뜨린다. 바늘이야 교체하면 그만이지만 레코드는 다시 구입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콤팩트디스크(CD)는 물리적 마찰을 없앤 반영구적 미디어였다. 메이저 음반사들은 새 음반과 더불어 과거 축적됐던 SP와 LP의 음원들을 한꺼번에 CD로 만들어 팔면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다. 축배는 오래가지 않았다. LP와 다르게 CD는 복사가 가능했으며, 이후에는 음원을 축출하는 방법이 보편화하면서 급속도로 음악시장을 냉각시킨다. 음악을 듣는 방법도 변했다. 뮤지션들의 노고를 담는 콘셉트 음반에서는 콘셉트가 실종됐고, 레코드의 두 면을 채운 음악을 연이어 듣는 진득한 감상법도 사라졌다. 공들여 만든 커다란 재킷의 아트워크를 보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레코드는 단순히 음악을 저장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그 음악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완성품이었다.
클럽의 DJ나 소수의 음악 마니아들이 찾던 레코드가 부활한 것은 왜일까? 먼저 소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레코드로 만들어졌던 음반을 CD로 들을 때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원음반에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따뜻한 아날로그, 인간의 감성’이라고 표현한다. 많이 오르긴 했지만 저렴한 가격도 한몫 거든다. 김현식이나 들국화, 유재하 같은 가요 음반들은 1만원 안팎에 구입이 가능하다. 국내에 나왔던 클래식이나 재즈 레퍼토리 또한 비슷한 가격이다. CD의 시대에 재발매하지 않았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도 레코드밖에 없다. 오디오 애호가의 입장에서도 매력은 넘친다. 턴테이블은 카트리지·톤암·플래터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조금만 세팅을 달리해도 색다른 소리가 들린다. 즉, 자신의 소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렴한 중고 턴테이블이 인기를 얻고, 요즘 잘나가는 몇몇 뮤지션들의 새 음반을 LP로 발표한다는 것은 편리와 고음질을 추구했던 음악시장의 새로운 판도로 읽힌다. 음반 한 장은커녕 한 곡도 제대로 듣지 않고 건너뛰는 시대에 레코드는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쉽게 복사될 수 없는 고유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안겨준다. 판을 닦고 바늘을 올려놓고 소리를 기다리는 절차상의 번거로움 역시 속도 우선 시대를 거스르는 소소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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