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봉규
그 옛날 책은 혼자 읽는 물건이 아니었다. 책값이 비싸기도 했거니와 여러 사람이 모여 일정한 리듬을 타며 같이 읽는 문화가 있었다. 심지어 전문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사람도 있었고, 한국에도 전기수(傳奇)라고 불리며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사상가 리 호이나키에 따르면, 12세기까지 서구사회에서 독서는 사회적인 행위였고, 사람들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며 그 단어들을 몸에 익혔다. 책을 읽는 행위에는 공동체가 전제됐고 이런 독서 활동은 ‘신성한 읽기’(Lectio Divina)라고 불렸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조용히 혼자 책 읽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도서관은 친목이 아니라 침묵의 공간이, 독서실이 되었다. 독서에서 행위는 배제됐고, 책을 읽을수록 마음의 양식이 살찌니 정신의 비만이 우려된다.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정열과 혁명의 책도 혼자 읽는 조용한 독서의 대상일 뿐이다. 내가 읽은 책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지 못한다. 노동이나 자본, 탈핵 같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책을 혼자 읽으면 뭐하나. 단지 교양을 쌓기 위해? 그 교양을 쌓아서 어디에 쓰지? 그것이 삶을 더 비참하거나 힘들게 만들지는 않는가?
기본적으로 독서는 함께 읽는 행위다. 함께 읽기에 읽는 힘이 생기고, 함께 읽기에 시야가 더욱 넓어진다. 똑같은 책이라도 혼자 읽을 때와 함께 읽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리기 시작하고, 내가 해석한 구절을 다른 사람이 다르게 해석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다르게 읽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함께 읽는 행위는 내가 다른 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고 그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한다. 일방적인 낭독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그리고 모임에서 만난 관계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서로의 삶을 버티게 해준다.
매번 소통을 얘기해도 소통을 이어줄 매개가 없으면 대화는 이어지기 어렵다. 그냥 얘기만 나누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어디로 가려 하는지에 관한 대화가 필요하다. 책은 그런 대화의 소재가 되고, 어떤 주제의 책을 읽을까 같이 고민하면서 나와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같이 읽는 행위는 단지 생각만을 공유하지 않고 타자의 목소리를, 한 문장을 읽는 타자의 느낌을 공유하게 한다.
지금 필요한 건 같이 읽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움직이는 거다. 같이 읽을 사람들을 어디서 만나냐고? 지금 당신의 페친, 트친, 당신과 통화하는 사람,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책을 읽자고 제안해보자. 공통의 관심사가 있다면 그 관심을 더욱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책을 함께 읽자고 제안해보자.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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