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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공생 사이의 독도

등록 2011-08-10 15:55 수정 2020-05-03 04:26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이 있다. 냉전 시기 남과 북의 권력자들이 정세의 급격한 변화나 군사적 긴장·충돌을 짬짜미해, 이를 권력 강화에 활용해온 역사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둔 ‘총풍’ 사건이나, 1972년 7·4 공동성명 합의·발표 직후 남쪽에선 유신독재, 북쪽에선 수령제·주체사상 전일화로 정치적 피바람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사료에 따르면, 박정희와 김일성은 유신 선포와 주석제 도입 계획을 서로 미리 알려주었다. 안보를 빙자한 정략이다. ‘적대적 공생’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의 남북 화해협력 노력과 함께 ‘죽은 개념’이 된 듯했다. 그러나 남쪽의 이명박 정부 출범 및 북쪽의 김정은 3대 세습체제 추진과 맞물려 다시 생명력을 얻고 있다. 역사의 역회전이다.
그런데 요즘 한-일 관계를 보면, ‘적대적 공생’ 개념은 한-일 관계 분석에도 적실한 것 같다. 벌집을 건드린 듯 한국 사회를 며칠 동안 들쑤셔놓은 일본 자민당 의원 3인의 울릉도 방문 시도를 둘러싼 소동이 딱 그랬다. 울릉도를 ‘시찰’하겠다던 신도 요시타카, 이나다 도모미, 사토 마사히사는 “난징대학살은 허구”라거나 “식민지 지배란 말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따위의 망언을 일삼아온, 뇌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된 극우 정치인들이다. 일본 정부나 여당이 아닌 야당의 ‘존재감 없는 조무래기 정치인’에 불과한 이들의 울릉도 방문 퍼포먼스는, 한국 쪽의 물리적 반발을 이끌어내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자해공갈과 다름없다. 19세기 말 ‘정한론’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가 조선에 사신으로 보내달라며 “조선이 날 죽이면 이를 이유로 조선을 치면 된다”던 행태를 연상시킨다.
어쨌든 신도 의원 일행은 김포공항으로 입국해 울릉도를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그들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든 말든,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영토주권을 무시하고 일본 배 타고 독도로 바로 가겠다는 게 아닌 바에야, 이명박 대통령이 입에 달고 사는 한-일 우호관계를 고려해 경찰을 옆에 붙여 그들이 좋아한다는 한국산 김과 울릉도 오징어를 배 터지게 먹고 돌아가게 하면 그뿐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한다는 대한민국, 일본의 ‘조무래기들’에게 김과 오징어 정도는 거저 먹일 돈이 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두둑한 배포와 냉정이 필수다. 흥분하거나 두려워하면 진다.
그런데 해프닝성 소극으로 끝날 일을 대통령과 특임장관이 나서서 키웠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고는 독도까지 날아가 ‘1일 초병 체험’에 나서는 “생쇼”(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와 “개인 장사”(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를 하셨다. 독도에서의 여름휴가라, 이색 체험이긴 한데 특임장관이 할 일은 아니다. 이 대통령도 신도 의원 일행을 공항에서 돌려보내라고 ‘지시’하며 사실상 전면에 나서, ‘조무래기 3인방’의 생쇼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일본 언론을 극적으로 자극했다. ‘큰 꿈’을 품고 있다는 이재오 장관은, 일제 만주군 출신 아버지를 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발동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왜 나선 걸까? 강경 제스처로 열혈 국민의 피를 끓게 해 레임덕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파서일까. 아니면 2008년 7월 정상회담 때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하겠다고 하자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보도를 국민이 다시 떠올릴까봐 지레 겁을 먹은 것일까.
대통령과 특임장관의 침소봉대가 초래한 외교적 난맥은,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직업 외교관들의 원색적 냉소가 잘 보여준다. “이재오부터 벌떼처럼 들고일어나서 말이야, 이제 대통령까지 나서고 일본 의원들이 보면 참 좋아할 일이다.” “신도가 누군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까지 나서는 바람에 그 작자들은 500%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한-일 양쪽에 독도 문제를 놓고 서로 이득을 보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
유명한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는 일본의 극우 바람을 경계하며 “가짜 애국주의를 못 버리면 일본엔 희망이 없다”고 했다는데, 그 말은 온전히 한국의 ‘가짜 애국자’들에게로 돌려져야 할 것 같다. 날씨 참 덥다.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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