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영화 ‘더 펠링’(The Felling·베어짐)의 한 장면. 한 시민이 벌목을 방해하다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딜라일라(Delilah)는 ‘살려주세요’(SAVE ME)라고 적힌 빨간 하트를 달고 있었어요. 너무 아파요. 진짜 너무 고통스러워요. 계속 울고 싶기만 해요.”(한 주민)
2016년 11월17일 새벽 4시30분. 영국 사우스요크셔주 셰필드시 러슬링스 도로에 큰 토치가 달린 헬멧을 쓴 벌목 작업자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요란한 전기톱 굉음이 공기 중에 가득했다. 7그루가 베어졌다. 120살 딜라일라도 잘려나갔다. 건강하고 팔팔한 라임나무(피나무류)였다.
2015년 4월 이 나무의 벌목 계획을 알게 된 주민들은 이 아름드리나무를 딜라일라라고 불렀고, ‘딜라일라를 살려주세요’(Save Delilah) 캠페인을 벌였다. 2012년 8월부터 셰필드시는 건설 대기업 에이미(Amey)와 ‘미래의 도로’(Street Ahead)라는 도로 개선 사업을 명목으로 매일같이 길거리 나무들을 베어냈다. 25년 동안 22억파운드(약 4조2천억원) 규모였다. 시는 주민설명회 등에서 ‘병들거나 위험한 나무만 벤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실제로는 멀쩡하고 건강한 나무도 ‘도로 설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쓰러졌다. 이날 ‘기습 벌목 작전’에서 나무 밑에 서서 벌목을 막았던 70대 여성 2명을 포함한 주민 3명이 체포됐다.

다큐멘터리영화 ‘더 펠링’(The Felling·베어짐)의 한 장면. 한 주민이 ‘엄청 건강한 상태’ ‘기대수명 150년’이라고 쓰인 펼침막을 나무에 두르고 있다.
이 사건으로 ‘셰필드 벌목 사태’는 전국 뉴스로 떠올랐다. 셰필드시는 멈추지 않았다. 시위대를 향해 소송을 제기하고 공권력 동원을 확대하는 등 더욱 공격적으로 나무를 베는 데 집중했다. 영국에서 2022년 3월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더 펠링’(The Felling·베어짐)은 ‘러슬링스길 벌목 사건’부터 2018년 3월 벌목이 중단되기까지 셰필드시와 주민 갈등이 최고조였던 1년4개월을 주민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그리고 2025년 10월17일 전북 전주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이 영화의 국내 첫 공동체 상영회가 열렸다. 서울환경연합·전북환경운동연합·정의로운시선과 공동체 상영회를 공동 주최한 가로수시민연대의 최진우 대표는 “셰필드시 사태는 전주천 벌목 때랑 닮은 점이 많다. 새벽 시간에 주민 몰래 버드나무 수백 그루를 베어낸 것(2024년 2월29일·제1506호 참조)도 그렇고, 시장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그렇다”며 “자연스럽게 상영 장소가 전주로 정해졌다”고 말했다.
“오늘 작업이 중단된 이유가 뭔가요?”
“저기 무단침입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무단침입이요? 나무를 지키기 위한 행동 말이죠?”
“그 일로 셰필드 시민들은 수백만파운드의 세금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나무를 베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나요?”
“특정 나무에 대해선 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나무를 살리려면 추가적인 설계 변경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건 법적 계약이니까요. 시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비밀스러운 계약이라고들 하는데요?”
“일부 내용은 비공개지만, 계약은 공개돼 있습니다. 아무런 비밀도 없어요.”
이미 약 4300그루가 베어진 시점인 2017년 3월 이 영화의 감독인 재키 벨러미가 카메라를 들고 질문하자, 현장에 나온 셰필드시 문화환경국장이 잔뜩 화난 상태로 이렇게 답했다.
사실 셰필드시는 ‘포트홀(pot hole·노면 파임) 시티’라고 불릴 정도로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미래의 도로’ 사업도 처음엔 도로 개선이라는 선량한 의도로 시작됐다. 그런데 시는 어느덧 도로 보수를 위해 가로수를 무차별적으로 베야 한다고 했다.
시는 주민들과 나무 벌목 관련 자문회의를 구성했다. 시에서 발주한 사업과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 나무 협의체’(ITP)다. 그런데 ITP는 사업 대상인 150개 도로의 나무 중 78.3%는 베어낼 필요가 없다고 결론 냈다. 시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 목표로 했던 6천 그루 벌목을 밀어붙였다. “오래된 가로수를 유지·관리하는 것보다 새 나무를 심는 게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게 시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시는) 애초에 왜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ITP 조사에 동의했던 걸까요?” 게리 스팀슨 셰필드나무행동그룹(STAG) 나무 활동가가 말했다.


‘더 펠링’의 한 장면. 주민들이 벌목을 막고자 파자마를 입고 나무 옆에 서 있다.
셰필드시의 도로 개선 사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규모 벌목 등으로 에이미와의 계약 내용을 실현하고, STAG를 이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으로 변질됐다. 게리 스팀슨이 말했다. “물론 건강하지 못한 나무도 있어요. 그러나 대부분은 건강하고, 도로에 피해도 주지 않고, 인도 피해도 없는 안전한 나무였어요. 왜 이 나무를 베는 것이 도로 유지에 꼭 필요한지를 증명해 보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텐데, 돌아오는 답변은 ‘베는 게 아니라 멋진 나무를 심는 거다’ ‘나무가 너무 많아 복잡하다’였어요. (러슬링스길 벌목 사건 이후) 우리가 지난 3년에 걸쳐 제시한 구체적인 논거들을 시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게 분명해졌어요.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였어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리고, 나무 아래 서 있는 거죠.”
“나무가 건강하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도로 보수 계약을 맺었고, 그걸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점이었죠. 25년짜리 계약이라고 강조하는데, 나무들은 훨씬 더 오래 살아왔습니다. 대체할 수도, 한번 잃으면 되찾을 수도 없는 존재죠.”(크리스 러스크 STAG 공동대표)
“그해(2017년) 봄과 초여름쯤부터 (시로부터) 사진과 편지를 받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집 앞에 ‘당신은 우리가 범죄행위라고 믿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금지 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죠. 그 편지에는 우리 사진이 여러 장 들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누군가가 우리를 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됐어요.” 러셀 존슨 STAG 나무 활동가가 말했다.
주민 반발에 대한 셰필드시의 선택은 ‘법대로’였다. 한국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행태다. 시는 시민 9명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7월26일 셰필드 법원 존 마일스 판사는 피소송인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벌목을 위해 도로 위에 설치된 안전펜스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금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법을 어기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도 멈출 수 없었어요. 그래서 탄생한 게 게코잉(gekkoing·도마뱀처럼 벽에 붙어 있기)이죠. 펜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최대한 가까이 가면 어떨까 생각했죠. 간단했어요. 펜스를 치기 전 먼저 가서 벽에 기대는 거죠. 펜스를 치려면 저를 밀쳐야 하잖아요. 그러면 폭행이 되죠.(웃음)”(러셀 존슨)
그렇게 시민들은 도마뱀이 됐다가 어느 날은 토끼(bunny·도로를 건너면서 펜스를 뛰어넘어 방해하기)가 됐고 다람쥐(squirrel·나무로 올라가기)가 됐다. ‘나무 전쟁’이 일상이 된 셰필드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던 일이다.

다큐멘터리영화 ‘더 펠링’(The Felling·베어짐)의 한 장면. 한 주민이 ‘당신의 도시가 자랑스럽나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민주주의와 존중, 상식이 죽었다는 내용의 삽화도 그려져 있다.
시는 민간 건설사인 에이미에 ‘합리적인 물리력’을 써도 된다고 허용했다. 나무 하나를 베는 데 한꺼번에 경찰관 30여 명이 투입됐다. 나무에 가만히 기대고 섰을 뿐인 시민들이 건장한 용역 직원들에 의해 사지가 붙들려 펜스 밖으로 끌려 나왔고 경찰에 체포됐다. “밀양 할머니들이 공권력에 끌려가던 모습이 떠올라서 눈물을 참기 힘들었어요.” 공동체 상영을 보고 난 뒤 김상윤 전북녹색당 대표가 말했다.
“그저 가만히 있는 시민들을 다짜고짜 바닥에 내던졌어요. 합리적인 건 아니죠.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어요. 놀라운 건 시가 우리에게 ‘이 방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는 겁니다.”(크리스 러스크)
함께했던 시민 사이먼 크럼프와 캐빈 페인 등이 이 일로 유죄판결(집행유예)을 선고받았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행동이 의도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평화롭고 정당했습니다.”(캘빈 페인)
2018년 1월22일 미어스브룩파크 도로에서 셰필드시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주민들도 ‘이 나무는 절대 못 데려간다’고 외치며 노래를 불렀고, 공원 난간을 붙들고 펜스 치는 걸 막았다. 난간에 붙은 주민들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주민과 에이미 직원 등 수많은 사람이 다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는 지는 것처럼 비치지 않고 싶어 했어요. ‘이 끈질기고, 목소리 크고, 꽤 배운 소규모 활동가 집단이 우리를 우습게 만들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생각한 거죠. 경찰도 이용하고, 용역 직원도, 법원도 이용했어요.”(앨리스 페어홀 STAG 나무 활동가)
이렇게 진행되던 벌목은 2018년 3월26일에 이르러서야 전면 중단됐다. 주민들이 중앙정부 정보위원회(ICO)에 제기한 정보공개 민원이 1년 만에 받아들여지면서 셰필드시의 ‘6천 그루만 벨 것’이란 말이 거짓말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세필드시가 25년간 가로수의 절반 이상인 1만7500그루를 베기로 계획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산림위원회가 불법 벌목 조사를 시작했다. 2022년 3월부터 1년 동안 마크 로콕 전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관은 청문회 등을 통해 독립적인 조사를 진행한 뒤 “셰필드시는 진실을 왜곡하고, 부정직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2023년 6월 셰필드시는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향후 셰필드시 나무 관리는 시와 STAG 등 시민사회가 협력해나가기로 결정했다. 기존 벌목 대상 나무 가운데 1% 미만만 벌목 필요성이 인정됐다.

‘더 펠링’의 한 장면. 장난감 트럼펫을 불며 항의하던 57살 여성이 ‘고의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있다.

‘더 펠링’의 한 장면. 새벽 4시30분 러슬링스 도로에서 ‘기습 벌목’이 이뤄지고 있다.
나무 지키기 과정에서 무수한 질문이 쏟아졌다. ‘베어진 것은 정말 나무뿐일까.’ ‘이 도시의 주인은 정말 시민인가, 아니면 소수 유력 정치인과 관료인가.’ ‘경찰은 정말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그런데 왜 사기업 편을 들까.’ 이런 고민은 나무의 생명만 살린 게 아니었다. 셰필드의 민주주의와 상식도 살아나려 꿈틀대고 있다.
2021년 5월 셰필드시의회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은 과반수 의석을 상실(46→41석)했다. 대신 5석이 늘어나 13석이 된 녹색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했다. 2018년 초부터 나무를 지키는 사람들이 주축이 돼 시작된 ‘여긴 우리 도시’(It’s Our City) 캠페인을 계기로,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한 주민투표에선 지방정부 운영 방식도 바뀌었다. 셰필드시의회 의원 84명 가운데 10명이 독점적으로 집행부(내각)를 구성하던 ‘집행부 체제’가 폐지됐다. 대신 모든 시의원이 위원회를 꾸려 행정에 참여하는 ‘위원회 체제’가 시행된다.
“나무하고 사람이 싸우면 항상 나무가 져요. 이게 지금 우리 현실이거든요. 생태하천협의회가 있고 거버넌스(협치)가 잘 이뤄진다는 전주에서도 전주천 벌목 사태가 벌어졌잖아요. 민주주의는 후퇴하기도 하잖아요. (셰필드 주민들처럼) 이런 문제를 이겨내는 방법, 우리에게 맞는 민주주의를 함께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영회 뒤 간담회에서 문지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말했다.
전주(전북)=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다큐멘터리영화 ‘더 펠링’(The Felling·베어짐)의 포스터.

‘더 펠링’의 한 장면. 나무를 지키기 위해 나선 시위대가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더 펠링’의 한 장면. 한 시민이 펜스 설치를 막기 위해 벌목 예정지에 미리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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