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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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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의자에서 떨어트린 폭탄에 소녀는 죽었다

10년 전 개봉한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오늘의 이란 침공…초등학교 오폭한 미국, 분업화된 전쟁의 참혹한 민낯
등록 2026-03-19 20:34 수정 2026-03-24 14:18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한 첫날, 이란 미나브에 있는 여자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175명이 사망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여자 초등학생이었다. 참사 초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쏜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얼마 못 가 초등학교에 떨어진 것이 ‘토마호크 미사일’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전세계에 토마호크를 보유한 나라는 7개국이다. 그중 전쟁에 개입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어쩌다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가. 아직 조사하고 있으나, 학교가 건설된 부지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의 해군기지가 있었던 10여 년 전 지도를 활용한 탓에 발생한 ‘오폭’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대두되고 있다. 이토록 기초적인 문제로 어린 생명들이 한순간에 몰살당했다는 것에 거대한 무력감을 느낀다.

영화 ‘허트 로커’ 스틸컷. ㈜NEW와 ㈜까멜리아이엔티 제공

영화 ‘허트 로커’ 스틸컷. ㈜NEW와 ㈜까멜리아이엔티 제공


오늘날 전쟁의 온도는 불길처럼 뜨거우면서 금속처럼 차갑다. 양극단의 온도가 전쟁에 혼재해 있다. 토마호크 미사일이 일으킨 폭발은 너무나 뜨겁지만, 그 미사일을 발사한 일련의 과정은 소름 끼치도록 차갑다.

오폭이 일어난 미나브에 미군은 없었다. 토마호크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생각하면,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미군조차 최소 수백㎞ 거리에 있었을 것이다. 미사일 발사를 지휘한 사령부는 그보다 더 멀리 있었으며, 전쟁 개시를 승인한 트럼프는 안락한 마러라고 리조트에 앉아 있었다. 그중 누구도 미사일 폭발의 열기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명령은 금속 스피커를 타고 하달됐으며, 금속 버튼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 겨눈 자리에 빵 파는 소녀가

2016년 개봉한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는 현대전이 어디까지 차가워질 수 있는지를 무겁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국과 미국, 케냐가 케냐 모처에 숨은 테러리스트 집단을 생포하기 위해 합동작전을 개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3개국이 공동으로 벌이는 작전이지만, 정작 현장에는 케냐 특수요원 몇 명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지휘를 맡은 영국군은 영국 본토에서, 드론(무인항공기)을 지원하는 미국군은 미국 본토에서 작전을 수행한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케냐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은 ‘하늘 위의 눈’, 즉 드론의 시선으로 파악된다.

3개국의 작전은 생포를 목표로 시작됐지만, 일련의 감시 속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자살폭탄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곧 사살 작전으로 바뀐다. 테러리스트들이 은신처를 떠나는 순간 그들을 잡을 길이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형 테러로 이어지고 말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 작전을 지휘하는 영국 장교는 드론에 장착된 헬파이어 미사일을 은신처에 떨어뜨려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작전을 시행하려던 그때 은신처 바로 근처, 미사일의 폭발 범위 안에서 한 소녀가 빵을 팔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이대로 미사일을 떨어뜨리면 소녀도 휘말리게 된다. 소녀를 비롯한 민간인의 피해를 피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을 살려 보내면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테러리스트들을 죽이면 소녀까지 죽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이 내린 결론은 ‘소녀가 죽지 않을 가능성이 큰 위치에 미사일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영국 지휘관은 폭발 범위를 측정하는 대원에게 “부수 피해 가능성이 45% 이하가 되어야 한다”고 지시한다. 하지만 이 은신처에 그런 위치는 없다. 영국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정해진 결론을 강요한 셈이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결국 미사일은 떨어졌다. 억지로 산출해낸 45%의 확률은 불행한 방향으로 현실화됐다. 소녀는 불길에 휘말렸다. 부모가 달려와 딸을 안고 울부짖으며 도움을 요청하자, 케냐 반군이 달려와 기관총을 내려놓곤 소녀를 차에 실어 병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소녀는 살아나지 못했다. 영국 장교들은 작전 종료를 선언했다. 작전을 참관한 정부 쪽 인사는 참혹한 결말에 눈물을 흘리며 영국 장군에게 이렇게 따져 묻는다. “당신들은 이런 일을 그저 안전하게 의자에 앉아서 시켰어요.”

작전이 끝나고 작전을 수행한 자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 그대로 남겨진 것은 딸을 잃은 부모뿐이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테러리스트를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과 미국의 진심을 이들이 이해해줄 필요가 있을까. 도움이 절실할 때 그곳에 찾아온 것은 영국도 미국도 아닌 반군이었다. 부모는 누구의 편이 되겠는가. 이들이 반군의 일원이 되어, 혹은 테러집단의 일원이 되어 서방국가에 대한 증오를 폭력적으로 쏟아낸다면 그것은 누구로부터 시작된 문제일까.

영화는 여기까지 나아가진 않지만, 아이를 이송하기 위해 기꺼이 폭발 현장에 내려진 반군의 기관총은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낳는다. 누군가는 전쟁의 불길이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차갑게 임무를 수행하며 윤리적 딜레마를 호소하지만, 누군가는 바로 그 불길 속에서 고통을 울부짖는다.

작전을 잘게 쪼갤수록 책임·죄의식도 분산

기술 발전과 복잡화한 세계가 만들어낸 전쟁의 거리감은 바로 이런 모양이다. 영국이 분석하고 지휘해 미국이 조종한 드론이 케냐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 이 영화가 보여주는 ‘차가운 전쟁’의 모습은 단지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자면 분업화된 전쟁이다. 표적 분석, 군사적 판단, 공격 허가, 지휘, 조종 등 드론이 미사일을 떨어뜨리기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필요한 주체들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은 전쟁에서 살상행위가 갖는 윤리적 책임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는 기능을 한다. 물리적 거리감과 분산된 책임 속에서 개별 군인들의 죄의식은 쉽게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 ‘허트 로커’ 스틸컷. ㈜NEW와 ㈜까멜리아이엔티 제공

영화 ‘허트 로커’ 스틸컷. ㈜NEW와 ㈜까멜리아이엔티 제공


이란 미나브에서 초등학생들을 학살한 그 작전도 마찬가지다. 오폭은 누가 책임지는가. 표적을 잘못 분석한 사람인가? 전쟁을 개시한 사람인가? 미사일 발사를 지시한 사람은 어떤가?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른 사람은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져야 마땅한가? 마치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집행 버튼을 여러 개 설치해 누가 진짜 집행자인지 알 수 없게 하는 것처럼, 현대의 전쟁은 전쟁에 수반돼야 할 죄의식을 최대한 흐릿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전쟁의 온도는 여전히 사막의 불길처럼 뜨겁다. 무인기 폭격은 전쟁을 열 수는 있어도 닫을 수는 없다. 결국 미국이 이란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거듭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 지상군이 투입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지상군이 투입되는 순간부터 전쟁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평범한 이란인이 더 많이 죽어나가고, 전장에서 참상을 직시하며 작전을 수행할 군인에게도 더욱 지독한 죄의식이 찾아올 것이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전쟁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면 그 작품에는 필시 반전 메시지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장기화된 전쟁의 광기를 표현한 ‘지옥의 묵시록’이나 참전군인들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켰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전장의 긴장감에 중독된 군인을 그려낸 ‘허트 로커’ 같은 작품이 모두 그렇다. 전장은 불길처럼 뜨겁고, 그곳에서 군인은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미쳐버리거나 육체적·정신적 상해를 얻는다.

편안한 의자와 불길 치솟는 전쟁터의 거리

전쟁의 온도란 이토록 양가적이다. 누군가는 전장과 멀리 떨어진 안전한 위치에서 차갑게 판단하고 지휘하지만, 누군가는 뜨거운 전장의 위험지대에서 판단하고 수행한다. 둘 중 누가 전쟁의 참상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트럼프와 백악관은 다른 의미로 미쳐 있다. 트럼프는 초등학교 오폭 사태에 관해 묻는 말에 “나는 모른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넘어갔고, 미군의 죽음에 대한 질문에는 “전쟁엔 언제나 죽음이 따른다”는 간편한 답변으로 넘어갔다. 폭격 장면을 게임 장면과 이어 붙여 희화화한 영상이 백악관 공식 계정에 버젓이 올라왔다. 트럼프가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다면 그토록 가볍고 무책임할 수 있을까.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앞으로 전쟁과의 거리감이 더욱 멀어질 것 같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아이 인 더 스카이’가 개봉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그 10년 사이에 인공지능(AI)이 전쟁의 중심에 데뷔했다. 이제 현대전은 드론을 조종하고 금속 버튼이라도 직접 누르는 인간조차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미사일 버튼을 누른 미군은 자신이 저지른 짓에 구토를 쏟아냈지만, AI는 죄책감을 느낄 일도 미쳐버릴 일도 없다.

인류의 운명조차 ‘자동화’에 내맡길까

미국은 이번 이란 폭격에서 AI 시스템을 활용한 덕에 첫 24시간 만에 1천여 개 표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며 자랑을 늘어놨다.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이라는 AI가 표적을 분석하고 선정하면 인간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토록 대단한 AI 시스템은 왜 잘못된 표적을 선정했는가. 최종 결정을 내린 인간은 왜 그 정보를 검증하지 못했는가.

세 가지 AI 모델에 가상 전쟁을 수행시켰더니 AI들이 21차례 전쟁 중 약 95%에 해당하는 20차례에서 최소 한 번 이상 핵무기 버튼을 눌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보도됐다. AI가 판단하고 AI가 수행하는 전쟁에서 살해한 자와 살해된 자의 심리적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자 그 누구도 전쟁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거나 미쳐버리지 않아도 되는 순간. 나는 그때가 바로 인류가 전쟁으로 자멸하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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