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쉬는 시간에 하이퍼캐주얼 게임을 즐기는 직장인.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모두의 주머니에 하나씩 들어 있는 디지털 장난감. 요즘에는 숏폼 영상과 함께 ‘하이퍼캐주얼 게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5분 뒤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며, 혹은 잠들기 전의 무료한 시간에 사람들은 블록을 쌓고 공을 튀기거나 뭔가를 합쳐 키우거나 장애물을 피하거나 구슬을 떨어뜨리거나 선 긋고 영역을 먹거나 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 짧은 순간을 채우는 단순한 규칙의 모바일게임을 통틀어 ‘하이퍼캐주얼 게임’이라고 부른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말 그대로 극단적으로 단순한 게임을 가리킨다. 3초면 규칙을 이해할 수 있고, 한 판의 길이도 분 단위에 머무는 단순함은 전 지구적 호응을 얻으며 성장해왔다. 30억 명의 인류가 모바일게임을 하고, 그중 약 60%는 하이퍼캐주얼 게임이다.
게임이 대중화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하이퍼캐주얼 게임의 비중을 생각한다면 이 말에는 오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플레이되는 게임은 ‘엘든 링’이나 ‘지티에이’(GTA) 같은 대작 게임이 아니라 이러한 하이퍼캐주얼 게임이다. 그리고 이 두 부류는 같은 게임이라곤 해도 굉장히 다른 형태로 작동하는 매체다. 게임이 대중화됐다는 말은 사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이 대중화됐다는 말에 가깝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장르라기보다는 게임 비즈니스 모델의 형식과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언뜻 봐도 단순한 이들 게임은 누군가의 스마트폰에 설치되기까지 들어가는 최초 설치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추고 매출은 광고 시청과 같은 방식으로 회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 사업 구조의 특수성은 게임 형식에 영향을 미친다. 누구나 쉽게 설치하고 플레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게임이어야 하고, 단순한 만큼 개발 기간은 더욱 짧아지며, 짧은 만큼 게임들의 생명주기도 빨라진다. 비슷한 방식의 게임이 계속 인게임 광고에 노출되는 이유다.
이는 의류산업계의 스파(SPA·제조와 유통 일원화) 방식과 유사하다. 유통사가 생산자보다 우위에 있고, 트렌드에 맞춰 빠르게 기획해 대량생산한 뒤 팔리지 않는 물건은 바로바로 내리는 스파의 방식은 하이퍼캐주얼 게임에서도 동일하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프로토타입 중 먹히는 몇 개가 광고 모델을 타고 앱스토어에 올라온다. 그 결과가 하이퍼캐주얼 게임들이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이 이토록 유행하는 것은 분명 사람들에게 일련의 재미를 주기 때문이겠지만, 막상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의문이 앞선다. 페이스북 게이밍이 11개국 1만3천 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하이퍼캐주얼 게이머의 67%, 한국의 61%는 자신이 게임을 하는 이유로 ‘스트레스 해소’를 꼽았다. 흥미로운 것은 실제로 이 게임들을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었냐는 질문에 미국 46%, 한국 30%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점이다.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음에도 해소용 도구를 놓지 않는 현상에 대해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류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홀로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이미 짚은 바 있다. 그는 기분 전환을 위한 행위가 인간이 자신의 현실이 가진 비참함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수 있는 행동이지만, 정작 그 행동의 결과가 인간을 비참함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아마도 1600년대의 파스칼이 본 기분 전환용의 무언가가 가졌던 맥락을 디지털 시대에 이어가는 연장선상의 매체일 것이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전통적인 디지털게임과 달리 짬이 난 순간을 활용해 즐기는 방식이어서, 출퇴근 시간이나 잠들기 전의 무료한 시간에 즐기기 좋다. 클립아트코리아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전통적인 디지털게임과 달리 짬이 난 순간을 활용해 즐기는 방식이어서, 출퇴근 시간이나 잠들기 전의 무료한 시간에 즐기기 좋다. 클립아트코리아
무료함을 넘기기 위한 장난감들은 그저 잠시 무료함을 회피할 뿐 무료함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아니 도리어 증폭하는 면이 없지 않다. 미국과 중국에서 이뤄진 2009년에서 2020년 사이의 무료함에 관한 자기진단 기준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 무료하다고 느끼는 빈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다양한 매체가 분초 단위로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드는 시대에 도리어 무료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늘어간다는 것은 이들 매체가 무료함을 없애기보단 도리어 증폭한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무료함을 달래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역설은 17세기의 파스칼을 거슬러 기원전의 그리스 시대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의 탄탈로스가 받은 형벌은 손을 뻗어 과일을 따려 하면 과일나무가 위로 솟아오르고,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면 수위가 내려가 마실 수 없는 형벌이었다. 탄탈로스에서 시작해 팡세를 거쳐 하이퍼캐주얼 게임에 이르는 누천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딱히 해소되지도 않을 무료함을 상대로 뭔가를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살아온 것이다.
무료함을 달래는 기술로서 디지털게임은 하이퍼캐주얼의 부상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중이다. 그 변화를 이해하려면 디지털게임이 원래 전제했던 것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디지털게임은 원래는 놀이를 위해 독립된 시공간을 전제하는 매체였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게임기 전원을 켜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쥐건 게이머들은 “앞으로 나는 몇 시간은 게임을 한다”고 주변 시공간에 스스로를 선언해야 했다. 고전적 게임 연구에서는 이를 ‘매직 서클’, 일종의 마법 결계라는 비결로 표현했는데, 이렇게 선언된 노는 시공간이 깨어지는 순간 플레이어는 짜증과 분노를 동시에 경험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다거나 전화가 오면 현실에서 잠시 분리됐던 플레이어의 매직 서클은 손쉽게 부서지고 만다. 그럼에도 게임이 사랑받았던 것은 놀겠다고 선언한 그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전통적인 디지털게임처럼 놀이를 위한 시공간을 별도로 분리해내지 못한다. 잠깐의 몰입은 가능하지만, 이는 현실로부터 충분한 양의 시간을 분리해내지는 못한다. 출퇴근 시간에서 짧은 짬을 낼 때 이 게임들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놀이 시간을 먼저 선언하지 못하고, 짬 나는 순간을 활용해 찰나를 즐기는 방식이 하이퍼캐주얼 게임의 작동 방식이다.
별도의 시공간이 필요한 디지털게임에서 짤막한 짬을 내어도 플레이할 수 있는 하이퍼캐주얼 게임으로 게임산업의 중심이 이동하는 흐름은 현대인의 여가에 작용하는 변화를 드러낸다.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데서 오는 재미는 짧은 시간 동안의 무료함을 회피하는 재미에 중심을 내주고 있다.
이런 변화는 비단 게임산업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숏폼이 대표적이고, 중간광고 삽입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짧게 끊어가는 여가에 점점 익숙해진다. 두텁게 배경설명을 하며 시작하는 ‘레 미제라블’보다는 스마트폰에서 빠르게 전개해가는 웹소설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오는 시대다.
디지털 시대의 여가는 절대량 자체의 증가와 무관하게 점점 더 짧은 주기로 향한다. 주 6일 노동 시대에 견주면 우리는 더 많은 여가시간을 확보하지만, 그 시간은 현실로부터 분리된 큰 덩이라기보다는 현실 사이사이에 짧게 스며드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긴 영상을 2배속으로 보고, 영화를 10분 요약 결말 포함 리뷰로 보는 흐름은 게임에 이르러 따로 게임할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분절된 심심풀이 놀이로서의 하이퍼캐주얼 게임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매직 서클 위에 서 있다. 현실로부터 분리된 놀이의 결계가 아니라, 현실의 틈새에 스며드는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직 서클이 전제한 것은 놀이를 위해 현실을 잠시 유보하는 자발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앞 30초, 버스 도착까지의 3분 사이에 선언은 불가능하다. 결계는 세워지기도 전에 현실이 돌아오고, 게임은 중단이 아니라 소멸의 방식으로 끝난다.

하이퍼캐주얼 게임은 전통적인 디지털게임과 달리 짬이 난 순간을 활용해 즐기는 방식이어서, 출퇴근 시간이나 잠들기 전의 무료한 시간에 즐기기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이퍼캐주얼 게임의 도래는 단순히 게임의 형식이 바뀌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매직 서클이 사라진 자리에서 여가는 현실의 대안이기를 멈추고 현실의 부속물이 된다. 놀이가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빈칸을 메우는 충전재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파스칼이 말한 기분 전환이 그나마 어떤 행위로의 몰입을 전제했다면, 하이퍼캐주얼 게임의 기분 전환은 몰입 이전에 이미 중단될 운명을 안고 시작된다. 탄탈로스의 과일나무는 최소한 손을 뻗을 시간은 주었지만, 지금 우리의 과일나무는 손을 뻗기도 전에 다음 정거장 안내 방송과 함께 사라진다. 여가의 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번에 누릴 수 있는 여가의 호흡이 짧아진 탓이다.
결국 문제는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놀이로서 완결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매직 서클이 작동하던 시절의 여가가 현실 바깥에 잠시 머무는 경험이었다면, 하이퍼캐주얼 게임 시대의 여가는 현실 안에서 현실을 잊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스마트폰을 쥔 손가락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지만, 정작 무료함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탄탈로스의 블록 맞추기는 멈출 수가 없다.
이경혁 게임제너레이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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