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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 극우면 지지자들도 극우일까

우리 안의 극우 5. 누가 극우인가➃
압도적 양당제의 체계적 민의 왜곡 고려해야… ‘이대남 극우화’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등록 2025-07-24 23:04 수정 2025-07-29 13:12
2025년 5월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벨리에서 유세 중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를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2025년 5월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벨리에서 유세 중인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를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극우 정치는 직업적 극우 정치인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극우 정치는 극우 정치인과 그들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유권자, 즉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권력 동학이다. 극우 정치에 의해 민주주의 체제가 위협받고 있다면, 그래서 극우 정치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면, 극우 정치인뿐 아니라 다수의 극우 정치 지지자 또한 분석에 포함하는 게 타당하다.

다만 정치적 발언과 행위가 대부분 발표되고 기록되는 직업정치인과 달리, 지지자들은 투표나 후원을 제외하면 대체로 비공식 활동에 머무른다. 그들은 다수이기 때문에 정치인 개인보다 훨씬 비균질적이고 비일관적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의 정책과 발언을 근거로 그를 극우로 규정하는 일은 기준만 명확하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준석 지지자들이 어떤 이념을 가졌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그보다 훨씬 까다롭고 민감한 작업이다.

제21대 대선 직후 불붙은 이른바 ‘이대남 극우화’ 논란은 그 어려움을 잘 보여준 예시다. 성별·세대별 투표를 보여주는 출구조사 결과에서 2030 남성의 표가 어느 후보를 향했는지가 나왔는데, 20대 남성 즉 ‘이대남’의 경우 36.9%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37.2%가 이준석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글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극우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김문수는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지지한 후보이므로 당연히 극우파(극단 우파)이고, 이준석 역시 극우(급진 우파)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74% 넘는 이대남이 극우 정치인을 지지한 셈이다. 두 후보에 대한 이대남의 지지율은 70대 이상 남성보다 높아, 전 연령과 성별을 통틀어 최고였다.

 

이준석+김문수 지지율 ‘이대남’이 압도적 1위

그렇다면 이대남 극우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까? 그리고 이준석 지지자는 극우일까? 결론부터 밝혀두고 논의를 이어가자.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둘째 질문에 대한 답은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이다. 여기서 핵심은 두 질문이 같은 현상의 다른 측면이라는 점이며, 또한 질문들의 답은 출구조사를 포함한 선거 지표만으로 직접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표율이나 득표율 등 선거 결과가 극우 논의의 중요한 참고 자료임은 맞는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 근거이기는 어렵다. 이유의 하나는 부정확성이다. 출구조사는 당락 예측에서 틀린 적은 없었지만 득표율, 연령별·성별 투표 등 주요 지표에서는 수개월 뒤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하는 실제 결과와 편차가 상당히 있었다. 제21대 대선만 해도 출구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51% 넘게 득표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막상 개표하니 50%를 넘지 못했다. 출구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의 격차가 12.5%포인트였지만, 실제로는 7.27%포인트였다. 득표율에서 오차범위를 크게 벗어났다. 이대남의 후보별 득표율 역시 출구조사로 대체적 경향은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 수치와 상당한 괴리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유의 다른 하나는 정치 대표성 문제다. 정치 대표성이란 쉽게 말해 시민의 정치적 입장을 국회의원 등의 대표자가 얼마나 잘 반영하는가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라는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중도보수’ 정당과 ‘극단보수’ 정당이 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한국의 양당제 정치는 낮은 정치 대표성으로 악명이 높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시민의 의사가 체계적으로 왜곡된다. 대체로 약자·소수자·좌파의 입장은 과소 대표되거나 무시되고 부유층·엘리트·대기업·우파의 입장은 과대 대표된다. 참고로 미국도 양당제와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택한 나라다. 정치학자 제이콥 해커와 폴 피어슨은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승자독식의 정치학’에서 미국의 이런 정치 구조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상위 1%를 위한 불평등 사회를 만드는 원인이 됐음을 일목요연하게 해명하고 있다.1(공교롭게도 미국과 한국은 21세기 들어 극우 군중이 헌법기관을 습격한 세계에서 ‘유이’한 선진국이다.)

 

‘정치적 지지’와 ‘이념’은 다를 수도 있다

민의가 구조적으로 왜곡되는 양당제-승자독식 정치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반영된다 해도 갈등하는 두 정당의 진영논리로 빨려 들어가기 쉽다. 정치평론가 김민하는 이 상황을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라는 말로 요약한다.2

한국에서 어떤 정치세력을 향한 투표는 그들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반대 세력에 대한 반감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정치 대표성은 극우 현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싫어하는데 김문수 후보도 싫은 유권자는, 이준석 후보에게 동의하지 않음에도 대안이 없기에 표를 줄 수 있다. 이 유권자는 상대적으로 ‘덜 싫어하는’ 후보, 그러나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짐으로써 정치적 효능감을 충족하려 할 수 있다. 혹은 특별히 극우 이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민주당에 대한 극단적 반감으로 인해 김문수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혹은 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출구조사에서 김문수·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한 이대남 74%의 일부가 이런 부류에 속할 수 있다.

한편 진보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상실되면서 사회 평균보다 좌파적 지향을 가졌고, 그래서 이념적으로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 가까운 유권자이지만 정작 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한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또 다른 사례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이 실제로는 극단적 반페미니즘이나 소수자·약자 차별에 찬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다면 그는 정치적 진보로 분류되지만 사회적으로는 극우에 가깝다. 정치 대표성이 왜곡될수록 이렇게 정치적 지지와 유권자의 실제 이념 사이의 괴리는 커지게 된다. 이러한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선거 결과를 유권자의 이념 성향과 동일시하기란 아무래도 무리다. 그러므로 ‘이준석 지지자는 극우인가?’라는 질문에도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준석은 극우이더라도 이준석 지지자는 극우가 아닐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독재가 낫다’, 70대 남성 못잖아
2025년 5월29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5년 5월29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그러면 이대남 극우화는 어떨까? 방금 말한 것처럼 이준석 지지자들을 극우로 확실히 규정할 수 없다면, 이대남이 극우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현시점에서 이준석 지지자들의 이념 성향을 알려줄 자료가 많지 않다. 반면 유권자 극우화에 대한 사회학적 조사는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존재한다. 물론 연구자와 조사기관이 제각각이기에 자료가 일관되거나 정합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대남이 극우화됐는지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예컨대 2025년 1월 동아시아연구원의 ‘양극화 인식 조사’를 보면, “상황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는 문장을 가장 많이 선택한 집단은 70대 남성이고 그다음이 20대 남성, 30대 남성 순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사람연구원의 ‘2024 대한민국 내셔널 어젠다 조사’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 안 함’ 비율에서 20대 남성이 전 연령·성별을 통틀어 최고였고 ‘동의함’ 비율은 최저였다. 사회학자 김창환은 한국 청년남성의 극우화가 또렷하게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강력한 정치 지도자는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때로 규칙을 어겨야 할 때도 있다’ ‘정부보다 개인이 자신의 복지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등 총 5개 기준을 전부 만족하는 사람을 극우로 규정했는데, 이렇게 추출된 극우 추정 비율을 보면 20대 남성이 15.7%이고 30대 남성이 16%로, 20대 여성(2.1%)이나 70대 남성(10%)보다 확연히 많았다.3

이대남 극우화에 대해 상반된 의견도 있다. 하나는 “이대남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며 극우화 규정은 낙인찍기”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이대남은 극우화된 게 아니라 보수화됐다”는 입장이다. 각각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지만, 문제는 ‘극우화’나 ‘보수화’가 무엇인지 명확한 개념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극우와 보수를 각자가 다르게 정의하고 현상을 분석해서는 논의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능력주의, 발호하는 극우의 배양토

극우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극우를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려는 시도 또는 이를 정당화하는 우익 이념’으로 정의한다. ‘극우화’는 체제 변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화’와는 다르다. 이처럼 ‘민주주의 퇴행’이라는 관점에서 극우를 규정하면 ‘내란범’ 윤석열과 법원을 습격한 그 지지자들은 물론, “상황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답한 사람도 극우에 속할 수 있다. 이준석 지지자가 모두 극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여러 근거를 살펴볼 때 이대남을 포함해 현재 한국 사회 전반의 극우화가 현저하다는 사실까지 부정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극우 현상은 주로 엘리트가 주도한 “위로부터의 퇴행”이다.4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혐오·차별적 ‘밈’을 폭발적으로 생산·소비하는 주체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퇴행’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의 극우화는 그렇게 위와 아래로부터 민주주의 퇴행이 동시 발현하고 상호작용한 결과다. 이런 관점에서 극우 정치인 이준석이나 그 지지자들, 이대남 극우화 역시 개별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극우화’라는 큰 흐름의 부분적 현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다.

극우에 대한 기존 학문적 정의는 대체로 유럽이나 미국 상황에 기반을 둔 것이어서 지금 한국의 극우화 현상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유사점도 많지만 차이점, 예컨대 극단적 반공주의, ‘약육강식’을 맹신하는 사회진화론적 사고방식, 극우 정당이 제도권에 진입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 등 한국적 특수성도 적지 않은 까닭이다. 특히 시험 성적에 따른 인간 차별을 당연시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지배 규범이 돼버린 현실은 극우가 발호할 최적의 배양토이자 발사대다. 즉, 한국 극우화의 사회적 조건을 분석할 때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 글은 ‘지금 여기의 극우’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본 다음 능력주의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테지만, 그건 아직 한참 뒤의 일이다.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오늘의 극우는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던 문제들이 고름 터지듯 분출되는 현상이다. 이 연재는 내재적 관점에서 극우를 직시하는 연구다. 격주 연재.

 

1. 제이콥 해커·폴 피어슨, 조자현 역,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승자독식의 정치학’, 21세기북스, 2012

2. 김민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이데아, 2022

3. 전혜원, “서울 거주 경제적 상층일수록 극우 청년일 확률 높다”, 시사인(IN), 2025년 7월2일

4. 박선경, ‘한국 정치 엘리트와 민주주의 퇴행’, EAI 워킹페이퍼, 2025년 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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