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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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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맛 없는’ 오키나와의 단맛

흑당의 도시에서 만난 손님 대접의 전문가들
등록 2026-05-21 23:04 수정 2026-05-28 09:49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호텔에서 신혼여행을 축하한다며 만들어준 디저트. 안담 작가 제공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호텔에서 신혼여행을 축하한다며 만들어준 디저트. 안담 작가 제공


일본 오키나와는 먹으러 가는 곳은 아니라고들 말했다. 오키나와의 바다에 대해서 말할 때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그 보석 같은 물과 모래의 환영에 시달리듯 그윽하고 몽환적인 빛이 어렸다. 그러다가 그곳의 음식에 대해서 말할 때는 금방 멀뚱한 안광을 되찾았다.

오키나와는 미식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 본토와는 다른 나라라고 보는 게 좋다. 역사를 봐도 그렇고 음식 맛을 봐도 그렇다. 참프루도 맛있어지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는 단순한 볶음요리이고, 아름다운 바다에 둘러싸여 있지만 엉뚱하게도 오키나와에서 널리 다루는 식재료는 돼지고기와 소고기이며, 그 고기가 바탕이 되는 오키나와 소바, 라후테 같은 조림 음식,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스테이크도 상위 호환 버전이 금방 생각나는 아는 맛이다. 그러나 언제나 로손 편의점에서는 실망할 일이 없다.

그런 흥미로운 조언을 품에 안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잊을 수 없는 바다와 평범한 음식이 있다는 도시, 오키나와로. 여행이 끝난 지금 오키나와를 떠올리면 단맛이, 머리가 찡할 정도의 단맛이 곧장 혀에 느껴진다.

 

지상 낙원이 주는 압도감

 

나하공항에서 출발한 리무진버스는 오키나와 북부 해변에 늘어선 주요 리조트를 하나씩 돌았다. 버스는 매번 이야기 속 건물처럼 멋진 숙소들 앞에 정차했고, 여름옷을 차려입은 관광객과 그들의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숙소 직원들의 환대와 도움 속에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리무진의 종착역이었다. 늠름한 열대식물이 바다 마을의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공원을 지나자, 유백색 벽에 붉은 테라코타 기와를 얹은 지중해식 건물이 늘어서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로비로 통하는 리조트 정문에서 크림색 유니폼을 입은 버틀러(집사)들이 손을 모으고 미소를 띤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이 내가 처음 가보는 5성급 리조트, ‘더 부세나 테라스’였다.

더 부세나 테라스를 보자마자 나는 조금 충격받았다. 아직 체크인도 하기 전이었지만, 이 숙소를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년에 한 번 이곳에 오기 위해서 형광등 불빛 아래 오늘치 수모를 견디는 사람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자본이 그려 보여주는 휴양의 환상. 남편의 얼굴을 흘끗 보니 그나 나나 이 환상의 어질어질한 당도에 순간적으로 주눅 든 것이 분명해 웃음이 나왔다. 이 호텔이 얼마나 좋냐면, 이 정도의 건물이 돌아가려면 노예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어, 나는 그렇게 속삭였다. 오키나와가 류큐왕국이던 시절, 사탕수수 가공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흑당 생산량이 치솟으며 왕정의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고, 그때부터 농민들의 삶이 흑당에 속박됐음을 설명하는 기사를 막 읽은 참이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왕정보다는 농민들에 훨씬 가까워서, 5성급 호텔 로비에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버틀러와 컨시어지가 관장하는 세계

 

인천공항에서 급히 구매한 나의 첫 여행용 가방이 정문에 서 있던 노련한 직원의 금색 카트에 실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홀가분한 몸으로 로비에 들어서자 곧장 바다가 보였다. 창문 없이 탁 트인 테라스를 이루는 흰 기둥이 오키나와의 바다를 액자처럼 틀 지어 전시하고 있었다.

한 직원이 타일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우리를 넓은 로비의 한 소파에 앉히고는 패션프루트 맛의 시원한 웰컴티를 가져다줬다. 그의 차림새가 며칠 전 갓 아내와 남편으로 태어난 우리에 비해 훨씬 말쑥하고 우아했다. 우리는 오키나와도, 일본어도, 긴 휴가도, 5성급 호텔도, 제 앞길도 잘 모르는 어수룩한 손님들이었고, 컨시어지(안내원)는 우리 같은 손님을 수도 없이 맞아본 전문가였다. 자기가 부린 사치를 낯설어하는 손님, 다리를 모으고 앉아 차를 홀짝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손님 말이다.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직원은 간결하고 효율적인 영어로 체크인을 도와줬다. 호텔에서 마주치는 모든 직원이 그런 식이었다. 출입구에 서서 이마를 손으로 가리며 ‘비가 꽤 오네’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흰옷의 버틀러가 다가와 호텔 로고가 찍힌 튼튼한 장우산을 큰 도자기 그릇에서 쑥 뽑아 내밀었다. 지식과 긍지 모두 대접하는 자의 몫인 공간에서 나는 최고의 호텔이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좋은 호텔은 원하는 것을 준다. 최고의 호텔은 무엇을 원할지를 알려준다.

오키나와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신중하게 고른 비싼 식당의 아늑한 룸에서 밥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디저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상이 치워진 지 얼마 안 돼 다시 블라인드가 걷히더니,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던 직원이 디저트로 이루어진 웬 탑을 들고 나타났다. 식사 중에 드문드문 나눈 짧은 영어 대화로부터 “허니문”이란 단어를 잡아두었다가 몰래 열어준 깜짝 이벤트였다.

디저트 탑의 맨 위층에서 길쭉한 소형 폭죽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제일 큰 접시에 초코시럽으로 손수 적은 글씨가 보였다. ‘HAPPY WEDDING’(해피 웨딩). 다른 직원들도 어느새 몰려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직원들은 “포토? 포토?”라고 외치고 우리는 “생큐! 생큐!”라고 외쳤다. 서로의 모국어를 모르는 채로 우리는 폭죽이 다 탈 때까지 박수를 쳤다. 단것을 많이 먹지 못하는 나는 그 순간부터 이 식당을 나설 때까지 다디단 것을 엄청나게 많이 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앳된 얼굴의 담당 직원은 내 휴대전화를 가져가 붉게 상기된 신혼부부의 얼굴을 0.5배율로 찍어주고는 정보무늬(QR코드)가 인쇄된 종이를 하나씩 주었다. ‘리뷰 플리즈?’ 나는 구글맵 리뷰에 테이블을 담당했던 직원을 칭찬하며 그가 잘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오키나와의 저릿한 단맛

 

한국으로 떠나기 전 블루실 아이스크림을 싱글레귤러 사이즈로 먹을 계획을 세워놓았던 내 앞에 치즈케이크, 미니롤케이크, 휘핑크림, 와인에 조린 딸기와 망고 큐브, 딸기시럽·초코시럽 두 종류의 아이스크림으로 이루어진 탑이 놓였다. 호방한 포크질로 그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입안에 넣었다. 그 정도로 단 것이 뇌신경으로 직행하자, 깜짝 놀라서 그만 울음이 터졌다. 당황한 남편에게 나는 다만 너무 달아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허니문보다도 단 것들의 탑을 최대한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혀가 아리고 목이 말랐다. 차가운 우롱차로 입을 달래며,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쪽지를 적었다. 희고 붉고 검게 얼룩진 접시 한쪽에 그 쪽지를 놓고 식당에서 나왔다. “뭐라고 적었어?” 남편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오키나와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라고 적었어.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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