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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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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불평등을 달라”

우리 안의 극우 14. 누가 극우인가⑬
공존할 수 없는 열망이 만든 울분사회… 불평등 심할수록 경쟁 규칙 왜곡되니 불만 차올라
등록 2025-12-04 23:04 수정 2025-12-11 15:04
2025년 9월21일 대구 동대구역 앞에서 열린 ‘야댱탄압·독재정치 국민규탄대회’에 윤석열 석방을 요구하는 깃발, 미국 극우 논객 찰리 커크의 명복을 비는 깃발, 노란봉투법 폐지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 등이 등장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5년 9월21일 대구 동대구역 앞에서 열린 ‘야댱탄압·독재정치 국민규탄대회’에 윤석열 석방을 요구하는 깃발, 미국 극우 논객 찰리 커크의 명복을 비는 깃발, 노란봉투법 폐지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 등이 등장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팩트, 즉 사실의 힘은 강하다. 하지만 극우·극단주의자에게 사실관계나 논리적 설득은 잘 먹혀들지 않는다. 사실이나 논리보다 훨씬 강력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기 때문이다. 바로 감정·정서다. 중국 음모론을 추동하는 에너지도 이른바 ‘혐중 정서’다. 이 글의 주된 관심은 ‘혐중 정서’ 같은 극우 감정을 사실을 근거로 반박하거나 비이성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극우 감정의 배경을 이루는 어떤 일상 감정(quotidian emotion)을 찾아내고 분석하는 것이다. 미국의 일상 감정인 자부심과 수치심에서 미국의 극우 감정이 주로 터져나온 것처럼, 한국의 일상 감정에서 한국의 극우 감정이 싹을 틔우고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이 글이 초점을 맞추는 한국인의 일상 감정 중 하나가 울분이다.

‘공정세계 신념’(Belief in a Just-World)이라는 개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리 공명정대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실제보다 과도하게 세계를 공정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데, 세상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미래의 삶을 기획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심리학자 멜빈 러너는 경험연구를 통해 이런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적임을 보였다.1

울분은 ‘배신당한 정의감’

울분이란 감정은 이 공정세계 신념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정신의학 전문의 채정호는 “스스로 굳게 믿고 있던 공정세계 신념이 위협받거나 무너뜨려지는 특정한 사건을 겪으면서 울분이 촉발된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서 기능상의 문제까지 야기하면 외상후울분장애(PTED)로 진단한다”고 설명한다.2

울분장애 임상연구에서는 이 공정세계 신념과 유사한 개념을 도입해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그것이 ‘중심기본가정’(zentraler grundannahmen/central basic assumption)이다. 중심기본가정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해 가진 핵심적 믿음이자 양보하기 어려운 가치관이다. 이는 ‘세상은 공정하며 나는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같은 믿음이다. 이 믿음이 어떤 계기로 심대하게 훼손될 때, 예컨대 불의·경멸·모욕 등 상황적 자극이 발생할 때 어떤 개인에게 고통스러운 신체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 대표적 증상이 외상후울분장애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마땅히 이런저런 형태로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데 그 기대가 완전히 배신당했을 때, 인간은 참기 힘든 감정적 격동을 겪게 된다. 요컨대 울분이란 일종의 정의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배신당한 정의감’일 것이다.

물론 이 정의감은 범위가 넓다. 어떤 사람에겐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외상후울분장애 임상 사례에는 이런 개인차가 도드라지게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울분장애 환자의 경우, 식료품점 직원으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어느 날 가게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고 경찰 조사를 받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외상후울분장애를 겪게 되었다. 그런데 사건 이후 의사와의 심리 상담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직원에게 결정적 충격을 준 것은 부당하게 도둑으로 몰린 사실 자체가 아니라, 오랫동안 같이 일한 동료 중 한 사람도 자기편에서 변호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3

공동체 전체의 울분이 정치적 자산으로

그러나 중심기본가정의 범위가 넓고 개인차가 있다는 사실이 곧, 울분이 전적으로 특수하고 개인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신의학 전문의 미하엘 린덴은 울분이 개인의 질환을 넘어선 사회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중심기본가정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으로 작용하는 심리 현상이기 때문에 정의와 중심기본가정의 위반이 역사나 소문 또는 여론을 통해 전달되어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공동체 전체의 사람들이 울분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울분은 정치적 자산이 된다. 동독인들은 서독인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에게, 가톨릭 신자는 개신교도들에게,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에게, 이민자 자녀는 기존 거주자에게, 그리스인은 독일인에게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4

울분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일은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명 정치인의 박해나 죽음에 대한 집단적 울분이 정치적 응집력으로 작동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또한 극우 정치인과 극우 언론이 ‘혐중 정서’를 부추기는 배경에도 이러한 ‘울분의 정치 자산화’가 있다.

많은 한국 사람이 분배에서 산술적 평등, 즉 결과적 평등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공정한 경쟁, 불평등을 동시에 열망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많은 한국 사람이 분배에서 산술적 평등, 즉 결과적 평등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공정한 경쟁, 불평등을 동시에 열망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세계가치관조사서 한국의 불평등 선호 압도적

린덴은 “울분장애는 사회가 격변하는 시기에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중심기본가정을 형성하는 것은 문화”라고 지적한다.5

다시 말해서 문화권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중심기본가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회가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중심기본가정은 구성원의 울분을 폭발하게 하는 ‘스위치’가 된다. 앞선 글(제1590호 참조)에서 한국인의 중증도 이상 울분이 독일인의 6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인용한 바 있다. 한국인에게 중심기본가정, 그러니까 건드리면 폭발하는 울분 스위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정’ 아닐까. 이 단어에는 한국인의 울분이 농축돼 있을 뿐 아니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도 관련이 깊다.

공정은 어느 사회에서나 중요한 가치다. 그래서 ‘공정세계 신념’과 울분 감정은 대다수 사회에서 관찰된다.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울분 또는 공정에 대한 감각에는 다른 나라와 어느 정도 구별되는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토대로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공정세계 신념, 쉽게 말해 한국인의 세계관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는 ‘공정한 불평등’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요컨대 한국 사람들은 두 개의 가치, ‘공정성’과 ‘불평등’을 동시에 지향한다.

2018년 진행된 여론조사인 ‘한국사회 공정성 인식 조사’ 보고서는 한국인의 공정성 인식을 비교적 상세히 분석한다. 이를 보면 한국인의 가치관 중 도드라진 것은 차등분배, 즉 불평등한 분배에 대한 강한 선호였다. 많은 한국 사람이 분배에서 산술적 평등, 즉 결과적 평등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수의 차이가 클수록 좋다는 입장이 66%로, 조사 대상의 3분의 2 정도가 차등분배를 선호했다. 서구 등 다른 나라에서 이 선호는 소득·이념·학력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전 계층과 사회집단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6 그러면 이런 특성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나 강할까? 이를 보여주는 지구적 규모의 여론조사가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다.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계 100여 개국 시민의 가치관을 조사해온 이 설문조사에는 핵심 문항으로 ‘소득 평등’(income equality)에 대한 10점 척도 질문이 항상 포함된다.7

질문은 단순하다. “소득이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노력 등에 따라 더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대다수 국가의 시민이 “소득이 평등해야 한다” 쪽에 가까운 답변을 했지만, 어떤 나라들은 예외적으로 “차이가 나야 한다”, 즉 불평등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그 예외 사례의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불평등 선호에서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제6차 세계가치관조사(2010~2014년) 결과를 보면, 독일은 평등 선호가 57.7%, 불평등 선호가 14.6%로 나타났다. 일본은 평등 선호 28.6%, 불평등 선호 25.1%였다. 미국은 불평등 선호가 더 높은 예외적인 나라인데 평등 선호 29.6%, 불평등 선호 36.2%였다. 한국의 경우 평등에 찬성한 비율은 23.5%, 불평등에 찬성한 비율은 58.7%였다. 2020년 발표된 제7차 조사 결과는 더 놀랍다. 한국인의 64.8%가 불평등에 찬성했고, 12.4%만 평등에 찬성했다.(자세한 분석은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2021) 3부를 참조하라.)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은 울분사회다. 울분사회란, 사회 전반에 특권과 불평등이 관대하게 용인되는 한편, 절차적 불공정에는 민감해 개인이 부조리와 억울함을 자주 그리고 강하게 느끼고, 이런 감정이 일종의 사회적 질환이 되어 공동체 성원 다수의 삶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회다. 한국인은 일상적으로 억울함과 불공정을 호소한다. 한국인의 울분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견줘 이토록 강한 데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있겠지만, 한국인 다수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공정한 불평등’이라는 점이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인은 불평등은 잘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다. 또한 특권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특권에 접근할 기회의 불평등에 분노하며 특권은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그런데 불평등과 공정성은 불과 얼음처럼 공존하기 어렵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기득권자들의 힘이 강하고, 그들은 합법적 수단을 통해 경쟁의 규칙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불평등을 내버려두고는 공정성 또한 확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인이 ‘공정한 불평등’이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다. 불가능한 걸 기대하는 사람은 늘 불만에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울분사회의 울분은 만성화된 증상으로 나타난다.

 

1. M. Lerner & D. Miller, ‘Just world research and the attribution process: Looking back and ahead’, Psychological Bulletin 85, pp1030~1051, 1978. M. Lerner, ‘The belief in a just world: a fundamental delusion’, Plenum, 1980.

2. 미하엘 린덴·김종진·채정호·민성길·정찬승, ‘한국인의 울분과 외상후울분장애’, 군자출판사, 34쪽, 2021

3. 같은 책, 201~203쪽

4. M. Linden & K. Rutkowsky, ‘Hurting memories and beneficial forgetting: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s, biographical developments, and social conflicts’, Elsevier, 2013

5. 미하엘 린덴·김종진·채정호·민성길·정찬승, ‘한국인의 울분과 외상후울분장애’, 군자출판사, 178쪽, 2021

6.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 정기조사팀, ‘한국사회 공정성 인식 조사 보고서’, ‘여론 속의 여론’ 제3호, 한국리서치, 2018년 2월2일

7. 세계가치관조사 6차 조사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DocumentationWV6.jsp

세계가치관조사 7차 조사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DocumentationWV7.jsp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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