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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울분에 차 있나

우리 안의 극우 13. 누가 극우인가 ⑫
‘이런 처사는 부당’ 내포된 분노와 다른 일상 감정… 한국 사회 경쟁, 불공평한 보상이 배경
등록 2025-11-20 22:09 수정 2025-11-27 06:39
배우 오용씨가 울분이 내포한 복합적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

배우 오용씨가 울분이 내포한 복합적 감정을 얼굴 표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


 

이전 글(제1588호 참조)에서 미국 극우 시민의 분노·혐오 같은 감정은,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일상 감정이 여러 사회 변동에 의해 ‘흑화’된 결과라는 점을 보았다. 그런데 표면에 드러난 극우 감정은 미국과 한국이 유사하지만 그 연원인 일상 감정은 두 나라가 꽤 다르다. 그렇다면 한국의 극우화를 추동한 일상 감정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젊은 세대에겐 낯설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한(恨)의 민족’이란 말이 흔히 쓰였다. 한국인은 한이란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 ‘한’은 무엇인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등과 그에 처한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를 가리키는 민간용어. 응어리.”

‘한의 민족’이나 ‘한의 예술’ 같은 개념이 한국을 상징하는 말로 정착된 데는 20세기 초에 활동한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나기는 1922년 ‘조선과 그 예술’에서 “중국 예술은 의지의 예술, 일본은 정취의 예술, 조선은 비애의 예술”이라고 주장했다.1

야나기가 말하는 ‘비애미’(悲哀美)는 ‘한’(恨) 개념과 결합돼 그의 예술론에 영향받은 여러 학자에 의해 한국 예술과 민족성을 설명하는 담론으로 확장됐다. 참고로 ‘백의민족’이란 말도 야나기가 시초다.

야나기가 조선의 예술품을 사랑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 예술을 비애와 ‘한’의 정서에 가둠으로써 한민족을 집단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동적인 피해자로 고착시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민주화와 경제성장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 ‘한의 민족론’은 점차 그 영향력을 잃었다. 대신에 ‘한국은 한의 민족이 아니라 흥(興)의 민족’이라는 이야기가 한국인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4강에 들어가면서 흥의 민족론은 전성기를 맞는다. 그렇게 ‘한의 민족론’이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2010년대에 다시 일본 학자에 의해 부활한다. 철학자 오구라 기조는 조선 성리학의 이기론을 통해 일본 등 다른 나라와 완연히 구별되는 한국인의 기질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인은 도덕적이라기보다 ‘도덕지향성’이 강한 민족이다. 특히 한국인 특유의 감정인 ‘한’에 대해 오구라는 ‘도덕적 완벽성인 이(理)에 대한 열망이 좌절됐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라고 규정했다.2

민족성·국민성과는 다른 ‘일상 감정’

한국인론이나 일본인론 같은 민족성·국민성 담론이 종종 그러하듯, 오구라의 한국인론도 직관적 설득력이 있지만 비판할 대목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생산양식, 제도, 문화에서 전혀 다른 사회인 조선과 대한민국이 과연 성리학의 개념으로 묶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오구라의 설명은 결국, 조선왕조가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다시 민주공화국이 되는 수백 년 동안 한국인의 ‘고유한 본질’이 변하지 않고 유지됐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본질주의적 요소를 일단 괄호 치고 현상에 집중하면, 오구라의 주장은 이 글의 주제인 한국인의 일상 감정, 곧 ‘울분’을 논의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울분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도덕적 열망이 좌절됐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명확히 해두자. 이 글이 초점을 맞춘 일상 감정(quotidian emotion)은 고유하고 본질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념이 아니다. 예컨대 ‘울분’은 한국인의 일상 감정이지만, 독일인이나 미국인에게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미국인의 일상 감정인 자부심과 수치심을 한국인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상 감정을 논의하는 이유는 본질적 고유성에 기대지 않더라도 감정의 사회정치적 동학에서 사회 간, 혹은 국가 간 차이를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한’이나 ‘흥’을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그 ‘한’과 ‘흥’은 이를테면 ‘울분’이나 ‘기쁨’ 등 일반적 감정 명칭으로 번역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한’이나 ‘흥’을 다른 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만의 특성으로 본다면, 다시 말해 ‘민족 고유의 감정’이 실존한다고 전제하면, 그 가설 자체로 흥미롭긴 하지만 일상 감정과는 다른 층위에서 논의하는 게 합당해 보인다.

특정한 감정은 어떤 나라에서 흔하게 표현되며, 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대화의 소재가 된다. 반면 다른 사회에서 그 감정은 그렇게까지 자주 표현되거나 관심사가 되지 않는다. 즉, ‘어떤 사회의 일상 감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저 민족(국민)만의 독특한 감정이 무엇인가’, 즉 본질적 고유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감정 중 어떤 것이 돌출하는가, 즉 ‘정도’와 ‘양상’의 문제다. 그 정도와 양상은 어떤 사회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 특성에 의해 구조화된다. 일상 감정은 고유하지도, 유일하지도, 본질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특정한 계기에 의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울분은 불평등·소외 등 조건과 깊은 관련

한국인의 대표적 일상 감정은 울분(鬱憤, embitterment)이다. 울분의 사전적 의미는 ‘답답하고 분함. 또는 그런 마음’이다. 이 글이 다루는 ‘일상 감정으로서의 울분’은 사전적 의미도 당연히 포함하지만 그렇다고 개인 심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정신의학 분야의 관련 연구 성과는 울분이 불평등·소외 등 사회·경제적 조건과 깊이 관련됐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먼저, 울분이란 감정이 어떻게 최근 공중보건 및 임상의학의 주요 테마로 부상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울분은 일반적 의미에서 분노(anger)와 비슷해 보이지만 꽤 다른 결을 가진 감정이다. 그것은 촉각적으로는 뜨거움(hotness)이며, 미각적으로는 (영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쓴맛’(bitterness)에 닿아 있다. ‘bitterness’는 ‘억울함’과 ‘비통함’의 뜻도 지닌다. 울분은 ‘이런 처사는 부당하다’ 혹은 ‘나의 노력과 기여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지속되면서 감정적 고통이 격화한 상태다. 반복되는 실직, 직장의 부당한 대우, 이른바 ‘갑질’ 등이 울분을 일으키는 흔한 사례다. 즉, 울분은 ‘불공정하다’는 인식과 결부돼 있다.

초기부터 울분 연구를 개척해온 정신의학 전문의 미하엘 린덴은 울분을 분노보다 복합적인 감정으로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울분이란 “공격을 받아 분노가 생기고 복수심이 들지만, 반격할 여지가 없어 무기력해지고, 뭔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도 없는 상태에 굴욕감이 결합되며 생기는 감정”이다.3

그는 2003년 ‘외상후울분장애’(PTED·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 진단명을 제안하고 2009년 울분 자가측정 도구도 개발했다. 국제질병분류(ICD-10, WHO, 1992) 기준으로 외상후울분장애는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특이반응, 즉 병리적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의미에서 스트레스 반응의 일종인 F43.8 코드로 분류될 수 있다.4

울분, 외상후울분장애 연구는 독일에서 시작되고 발전했다.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출신 시민들에게 우울, 불안, 폭력성 등 다양한 정신의학적 질환이 급증했다. 이에 주목한 연구자들이 그 원인을 추적하다가 맞닥뜨린 게 바로 울분이라는 감정이었다. 서독 시민보다 상대적으로 빈곤하던 동독 출신 시민들은 통일 이후 사회통합 과정에서 차별·모멸·무시 등을 겪었고, 이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고통으로 발현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외상후울분장애라 불리는 증상이다. 이렇듯 울분 연구는 시작부터 경제적 불평등과 문화적 인정 같은 사회적 갈등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외상후울분장애’ 심각한 독일보다 한국이 6배

한국에서 관련 연구를 주도한 학자 중 한 명인 정신의학 전문의 한창수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에 대한 집단 심리상담을 통해 외상후울분장애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텄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처럼 천재지변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사회시스템으로 비극이 증폭될 경우 사회 구성원들은 집단적으로 불신과 분노를 느낀다. 불신이 누적되며 울분으로 발전할 수 있다.”5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린 2025년 4월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유가족들이 기억영상 시청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린 2025년 4월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유가족들이 기억영상 시청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또한 한창수는 ‘울분을 통해 본 한국인의 정신건강 세미나’에서 “우울증은 약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지만, 울분장애는 약으로 치료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

2018년 ‘한국인의 울분’ 조사를 기획한 보건정책학자 유명순 등은 ‘한국인의 울분’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의 54%가 울분 상태에 있고, 중증도 이상의 울분을 겪는 이가 독일보다 6배 높았다. 2024년 유명순 연구팀은 ‘한국인의 울분과 사회·심리적 웰빙 관리 방안을 위한 조사’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49.2%가 장기적 울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심각한 수준의 울분을 겪는 응답자도 9.3%였다. 심각한 울분을 겪는 이의 60.0%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정신의학 전문의 채정호는 한국인의 울분이 유별나게 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력 대비 적당한 보상이 있다면 공평할 터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적정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당연히 쉽게 분노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데, 좋은 직장을 잡기는 어렵고, 남을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깔아뭉개야 내가 살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마음, 또 나는 흙수저로 정말 무한 고생을 하고 있는데 금수저 족속들은 너무 쉽게 잘 살고 있다는 불공정은 분노의 촉발제가 된다. (…)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이 봐서는 젊은이들의 울분이 막연한 정서이고 무지와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막상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정서의 기본이 불행하고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울분이다.”6

경쟁사회가 촉발한 ‘빼앗기고 있다’는 감정

결국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 분위기, 불공평한 보상 등이 울분을 촉발하고 강화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울분이 집단적 감정으로서 크게 분출된 것처럼, 한국인의 울분 수준이 유의미하게 높다면 그것은 한국의 민족적 혹은 유전적 특질 때문이라기보다 한국의 제도와 문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 회에서는 울분과 외상후울분장애의 메커니즘과 더불어,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이 어떻게 울분과 관련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야나기 무네요시, 송건호 옮김, ‘한민족과 그 예술’, 탐구당, 1976(朝鮮とその芸術, 1922)

2. 오구라 기조, 조성환 옮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 모시는사람들, 2017

3. 미하엘 린덴·김종진·채정호·민성길·정찬승, ‘한국인의 울분과 외상후울분장애’, 군자출판사, 33쪽, 2021

4. 같은 책, 133쪽

5. 한창수, ‘세월호 비극, 울분 장애냐 외상후 성장이냐’, 중앙일보, 2014년 4월25일

6. 같은 책, 42쪽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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