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회원들이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영화 ‘카운터스’ 갈무리.
2010년대 초반, 일본에서 큰 사회문제가 된 극우단체가 있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약칭 ‘재특회’다. 이들은 처음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일중국인·재일조선인 등에 대한 인종차별 선동과 혐오발언을 일삼았지만, 몇몇 극우 언론의 지원을 받으면서 전국적 지부를 거느린 ‘오프라인’ 조직이 됐고, 거리에서 혐중·혐한 발언을 위협적으로 외치는 행동으로 주류 언론의 관심을 끌며 ‘가장 뜨거운 극우’로 등극했다. 이 소식은 한국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관련 서적이 출판됐고, 다큐멘터리영화가 개봉됐으며, 당시 일본에 여행 간 사람은 거리시위에서 혐오표현을 외치는 재특회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르포라이터 야스다 고이치는 저서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서, 재특회가 아무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뜨려 일본인들의 공포심과 혐오감을 조장해왔다고 고발한다. 재특회 오사카지부가 만든 ‘조선진주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전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1945년 이후, 현재 특별 영주권을 가진 재일 코리안 1세(조선인, 한국인) 또는 일본에 귀화하거나 반도로 귀국한 조선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범죄 조직을 가리킵니다. 패전 후 그들은 일본 각지에서 강간, 절도, 폭행, 살인, 약탈, 경찰서나 공공기관 습격, 토지·건물의 불법점거, 철도나 음식점에서의 불법행위 등 여러 범죄를 일으켰습니다. 자칭 ‘승전국민’이라고 주장하고, 스스로를 조선진주군이라고 부르며, 각지에서 무리를 지어 날뛰며 흉악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연합군 총사령부(General Headquarters)의 자료에 따르면 최소한 4천 명의 일본인 시민이 조선진주군에게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3만 명이나 되는 조선진주군은 패전 직후의 혼란을 이용해, 구일본군에게서 훔친 총이나 칼로 무장하고, 군복을 입고, 전국에서 조직화했습니다. (…) 한낮에 일본인 부녀자가 강간을 당하며 도움을 요청해도, 총으로 무장한 그들에게는 경찰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1
그러나 야스다에 따르면, 이 전단을 제외하고 조선진주군이 나온 문헌은 전무했다. 재특회가 조선진주군 사진이라고 명시한 어떤 사진은 알고 보니 일본의 무장경찰대를 촬영한 것이었다. 즉, 조선진주군은 일본 시민에게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완전히 날조된 서사였다. 한국은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최근의 한국은 점점 일본과 비슷해지고 있다.
한국은 유럽 등에 견줘 난민과 이주민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다. 난민,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의 정착을 극히 제한해왔기에 오히려 극우적 배외주의의 전면화가 어느 정도 억제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논란 같은 사례는, 한국에서 극우적 혐오 정서가 언제든 폭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당시 여초 커뮤니티 등에서 확산된 음모론 중 하나를 보면,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 반대합니다”라는 요구와 함께 “무슬림 근로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매뉴얼”이라며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장애 여성에게 접근하라.(쉽게 넘어온다) 무조건 한국 여성을 임신시켜라.(임신시켜서 혼인신고를 하게 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2
무슬림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에, 강간에 대한 공포가 합쳐지면서 이와 유사한 허위정보는 엄청나게 확산됐다. 지난 10년 사이 타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 감정은 갈수록 증폭됐다. 급기야 2024년 초에는, 이주민을 쫓아다니며 불법 체포를 하거나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자경단체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3 10여 년 전 일본에 출현한 재특회를 보며 우려와 비판을 쏟아내던 한국에서, 재특회보다 훨씬 폭력적인 ‘한국판 재특회’가 등장한 것이다.
공포와 혐오는 극우 현상에서 일종의 ‘디폴트 감정’이다. 혐오스러운 타자의 침범을 허용하면 순수하며 평화로운 ‘우리’ 공동체가 오염되거나 파괴될 것이라는 극우의 감정 서사는, 그것이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유력한 극우 정치인일수록 이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할 줄 안다. 많은 나라의 극우 현상에서 공포와 혐오 감정이 쉽게 발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만 해도, 많은 사람은 이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기보다 일종의 ‘돌발적 사건’으로 여겼다. 물론 트럼프를 지지하는 ‘티파티’ 같은 일부 극우 유권자 집단이 조명되기는 했지만,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쉴 새 없이 천박한 언어를 쏟아내는 부동산 재벌이 광범위한 지지 기반을 형성하여 공화당의 주류로 자리 잡고, 나아가 21세기 내내 유지돼오던 미합중국의 기조를 뒤집어엎으리라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2025년 2기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자, ‘트럼프 시대’의 도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사실상 사라졌다. 좋든 싫든 트럼피즘이 미국을 완전히 바꾸고 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 배경 중 하나가 극우 대중의 부상이다.
‘감정노동’ 개념으로 잘 알려진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는 이들, 미국의 극우 성향 유권자(대부분 백인)에 일찌감치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2011년부터 2016년에 걸쳐 루이지애나주에 가서 주민들 삶 구석구석에 쌓인 감정의 더께를 들춰냈다. 이 오랜 작업의 결과물이 2016년 펴낸 책 ‘자기 땅의 이방인들’이다.(한국어판은 2017년 출간) 루이지애나는 공화당이 초강세를 보이는 지역인데 다른 민주당 강세 지역보다 평균수명이 5년 정도 짧고, 인간개발지수와 아동행복수준은 전체 주 중 49위, 건강 수준은 꼴찌인 곳이다.
혹실드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자동차 정비사, 주부, 배관공, 건축업자, 우편배달원, 트럭 운전사, 회계사, 세일즈맨 등이다. 이들은 극우 반국가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티파티’ 지지자이기도 했고, 일부는 트럼프의 팬이었으며, 석유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의 직접적 피해자이면서도 환경 규제의 격렬한 반대자였다. 처음에 혹실드는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추적하려 했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러한 접근 방식을 버리게 된다. 감정사회학의 장을 열어낸 세계적인 학자답게, 혹실드는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정서적으로 이해해보기로 결심한다.
혹실드의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2024년 출간한 책 ‘도둑맞은 자부심’에서 애팔래치아산맥의 몰락한 탄광마을인 파이크빌 주민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했다. 이번에 혹실드는 두려움보다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혹실드는 경제적 곤궁 속에서 자부심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강렬한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수치심을 준다고 생각하는 타인과 집단들에 혐오와 증오를 쏟아내게 됐다는 사실을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혹실드는 자부심과 수치심의 감정동학을 실물경제에 비견되는 ‘자부심 경제’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혹실드가 주목한 것은 자부심이 꺾였을 때 고개를 드는 수치심이었다. 물론 여기서 자부심과 수치심은 꼭 극우만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미국 시민의 일상 정서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자부심과 수치심 그 자체가 극우 감정인 게 아니라, 미국적 가치관인 개인주의적 성공 지향(“아메리칸드림”)이 경제적 곤궁, 정치적 선동이라는 여러 사회적 조건 속에서 개인의 실패에 대한 수치심을 극대화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극대화된 수치심은 곧 극심한 고통을 뜻한다. 인간은 고통의 근원을 어떻게든 찾아내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적확히 지목하는 데 실패한다. 이것은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 정확히 말해 사회적 고통의 귀인 오류다. 미국의 극우적 시민들이 드러내는 타자를 향한 공격성은 결국, 고통의 귀인 오류이자 수치심이 ‘흑화’한 결과물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적 고통은 갈수록 확대되는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 대통령 조지 부시 2세는 불평등 확대의 원인으로 ‘교육 격차’를 지목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학자 제이컵 해커와 폴 피어슨은 그들의 진단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불평등 확대는 대학 졸업자와 비졸업자 간의 격차로 야기된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교육 격차는 그렇게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엄청나게 벌어진 부유층과의 격차가 문제인 것이다. 부유층 대부분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유층에서 계속 멀어지면서 한참 뒤처져 있다.”4
잘못된 귀인은 불평등의 사실상 유일한 해법인 정치 영역에서 더 왜곡된 결과로 나타났다. 해커와 피어슨에 따르면, 시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곤층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은 무시되거나 거부됐으며 극소수 부유층을 위한 정책만 살아남았다.5
한국이나 일본의 극우에서도 사회적 고통의 귀인 오류를 볼 수 있다. 혐오와 공포를 자극하는 음모론이 창궐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선동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다만 일본과 한국, 아니 적어도 한국에서는 ‘자부심 경제’ 혹은 자부심과 수치심의 감정동학이 극우를 추동하는 주된 메커니즘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혹실드가 만난 ‘풀뿌리 극우’는 국가에 대한 신뢰와 미국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했다. 그랬기에 그 반작용으로 배신감과 수치심도 강해지고 그게 극우화로 이어졌다. 제조업과 1차 산업이 퇴조하며 경제적 쇠락을 경험한 당사자들이 극우에 합류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국의 사정은 다른데, 한국은 선진국 중 사회적 신뢰가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하기에 시민적 자부심도 미국보다 현저히 약하다. 또한 한국 극우를 주도하는 집단이 노동계급이나 빈곤층이라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풀뿌리 극우’는 개신교 집단의 일부, 극소수 부유층, 일부 2030 남성과 노년층이 섞여 있다. 물론 이들에게 경제적 불만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약자 혐오, 특히 ‘지위 추락 공포’의 근원에 구조적 불평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극우에 지역경제 같은 문제가 핵심 의제였던 적은 거의 없다.
미국에서 자부심과 수치심이 꼭 극우만의 감정이 아니었던 것처럼, 한국에도 극우만의 감정은 아니지만 극우에 강하게 영향을 준 다른 감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요컨대 자부심-수치심이라는 ‘미국적 감정’과는 다른, 한국인에게 특히 중요하게 공유되는 ‘한국적 감정’이 있지 않을까? 다음 회에선 바로 그 감정을 다룬다.
1. 야스다 고이치, 김현욱 옮김, ‘거리로 나온 넷우익’, 후마니타스 펴냄, p222, 2013
2. 도우리, ‘예멘 난민에 대한 ‘강간 공포’’, 미디어스, 2018년 6월22일
3. 이재호, ‘가스총 겨누고, 틱톡에 체포영상 올리고… 이주민을 ‘사냥하듯’ 노렸다’, 한겨레21, 2024년 5월10일
4. 제이컵 해커·폴 피어슨, 조지현 옮김, ‘부자들은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 승자독식의 정치학’, 21세기북스, 62p, 2012
5. 같은 책, pp179~180
박권일 미디어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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