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25년 7월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25년 7월23일 자진 사퇴했다. 애초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 철회(7월20일)되고, 이재명 대통령이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했을 때(7월22일)만 해도 임명 강행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확산하는 비판 여론을 더는 이기지 못했다.
강 후보자의 진퇴는 이재명 정부의 초기 성격을 규정하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갑질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여가부 장관 자리에 이 정도까지 의미가 부여되진 않았다. 하지만 갑질 의혹이 거듭 제기되고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는데도 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려는 상황을 보면서, 성평등가족부로 바뀔 여가부가 이재명 정부의 정책 지향을 보여주는 핵심 부처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이 생각은 이 대통령이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신영숙 여가부 차관에게 “구조적으로 보면 여성이 분명히 차별받는 억울한 집단이 분명하다”면서도 “남성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는데, 공식적 논의를 어디서도 안 하고 있다. (…) 특정 부분에서의 남성 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달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7월16일 공개되면서 더 확고해졌다.
강 후보자의 발언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됐다. 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첫 출근길에 “차별 또는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입체적으로 경도되지 않은 시선으로 살피겠다”고 말했고, 차별금지법에 대해선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유보적 입장을 냈으며, “‘비동의강간죄’ 같은 성평등 분야의 기본 현안에 대해서도 답변을 회피하기 급급한 수준”(이번호 정치의 품격)을 보였다. 여성 등 소수자의 처지와 남성들의 ‘역차별’ 주장을 등가로 놓는 정책 지향이다.
미디어학자 릴리 출리아라키는 저서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에서 현대사회를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고통이 넘실대는 ‘고통의 민주주의’로 규정했다.(이번호 출판) 출리아라키에 따르면, 이런 사회에선 성폭력 피해 여성과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 소수자의 고통도 확산하지만, 동시에 ‘역차별’을 억울해하는 남성과 ‘무고’를 읍소하는 가해자의 주장도 함께 확산한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상처나 손해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면서 그 무게를 인정받은 사람이 피해자가 되는 가치 전도가 일어난다. 피해자 정체성이 인정투쟁을 통해 획득되는 지위가 되는 것이다. 결국 누가 더 힘든지 겨루는 고통의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정작 소수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구조적 문제는 은폐된다.
사회학자 최태섭은 ‘한국, 남자’에서 “청년 세대 남성들이 이전 세대의 남성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청년 세대 남성들보다 더 열악한 곳에 청년 세대 여성들이 있다는 것 역시 사회적 사실”이라며 “한국의 성별 고용률에서 여성이 남성에 앞서는 것은 오직 20대 때뿐이고 30대가 되는 순간 남성의 고용률은 수직 상승하는 반면 여성의 고용률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청년남성이 차별당하는 구조적 원인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가 아니라 빈부격차와 각자도생의 사회를 만든 체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과 ‘역차별’을 등가로 놓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 지향은 기만이다. 강 후보자 사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은 이런 것 아닐까.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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