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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청년 죽게 만드는 한국어의 나라

등록 2025-07-10 23:35 수정 2025-07-14 17:38
2025년 7월8일 폭염 경보가 발효 중인 서울 강남구 한 공사현장에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2025년 7월8일 폭염 경보가 발효 중인 서울 강남구 한 공사현장에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은 2021년 세계 최초로 초중등 교육과정에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채택했다.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는 2023년 기준 6만2985명으로 2020년(1만5912명)에 견줘 4배 가까이 늘었다. 다낭에서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는 최원준 원장은 “베트남 젊은이 중 상당수가 한국에 가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에 가서 하는 이주노동은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관련 기사 ‘한국어를 ‘제1외국어’ 채택한 베트남에서’ https://h21.hani.co.kr/arti/photo/people/57638.html) 

23살 엔(N)씨도 그런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다. 그러나 N씨는 2025년 7월7일 오후 5시께, 경북 구미시 산동읍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쪼그려 앉아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구미의 최고기온은 38.3도였고, 발견 당시 N씨의 체온은 40.2도였다. 신체조직 손상과 의식 저하, 심부전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수치다. N씨의 베트남 친구는 애초 구미와 김천 등의 농장에서 일하던 N씨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건설 현장 노동으로 업종을 바꾸었다고 했다. 힘겨운 일을 피해서 온 노동 현장에서 N씨는 출근 첫날 주저앉고 말았다.(관련 기사 ‘구미에서 숨진 이주노동자…‘폭염’ 앞에서도 차별’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7661.html)

N씨의 죽음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다시 말한다. 우선 기후재난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부터 무너뜨린다는, 반복되는 현실이다. 특히 폭염은 건설 현장같이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마트 주차장 같은 곳에서 일하는 불안정 노동자, 비닐하우스·축사 같은 농축산업과 양식장·염전 같은 어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쪽방촌 같은 불안정 주거에 내몰린 고령층부터 위기로 빠뜨린다. 하지만 폭염 재해 방지를 위한 제도는 애써 마련해놓고도 시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업 부담’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과 폭염휴식권 보장, 시설을 갖출 수 있는 곳에는 냉방시설 설치 의무화 등을 요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N씨가 낮은 곳에서도 한 단계 더 외곽으로 내몰려 있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고 언제 강제출국될지 몰라 노동 현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단체행동을 하기도 쉽지 않다. N씨가 숨진 건설 현장에서도 한국인 노동자는 사업주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아침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혹서기 단축근무를 했지만, N씨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은 오후 4시까지 일해야 했다. N씨는 심지어 미등록 신분이어서 더욱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2025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를 보면, 2018~2022년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 사망 정보를 분석한 결과 이주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은 한국인 노동자에 견줘 2.3~3.6배 높았다. 이 수치 역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건 아니다. 이주노동자는 유해물질에 노출되거나 큰 부상으로 인해 죽음이 가까워지면 본국에 송환되는 경우가 많고, 사망 뒤에도 제대로 신고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산재로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 모든 불평등이 자본이 내미는 효율성의 논리를 뒷배 삼아 한국에서 유독 겹겹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 가겠다며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하는 베트남 청년들은 알고 있을까.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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