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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제1외국어’ 채택한 베트남에서

베트남 청년과 한국어·문화 나누는 우리말 ‘샘’들…전쟁 당시 한국군 거쳐간 곳의 오늘날
등록 2025-07-10 18:40 수정 2025-07-14 17:31
베트남 다낭의 한 한국어 학원에서 2025년 4월29일 투인(왼쪽부터)과 링이 박은숙(가명) 선생님과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베트남 다낭의 한 한국어 학원에서 2025년 4월29일 투인(왼쪽부터)과 링이 박은숙(가명) 선생님과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베트남 청년들에게 한국어 구사 능력은 취업을 가능하게 하고,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단이 되기도 한다.

베트남 다낭의 한 한국어 학원에서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을 준비하고 있는 투인(25)과 링(27)을 만났다. 이들에게 기출문제인 우리말 칭찬법을 가르치는 이는 박은숙(가명) 선생님이다. 한베정보통신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투인은 한국어를 베트남어로 번역하는 일을 한다. 토픽 최고 급수인 6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링은 다낭의 5성급 한국 호텔에서 일한다. 영어는 기본이고, 한국어 자격증이 있으면 급수에 따른 보수를 더 받는다. 2024년 토픽 4급 자격을 취득해 월급의 20% 정도 되는 수당을 받고 있다.

이들을 가르치는 박씨는 인도에서 20년간 살면서 한국어교원 자격을 취득했고, 2020년 베트남으로 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베정보통신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교수들이 귀국해 그 자리를 메우느라 이 일을 시작했다.

베트남은 2021년 세계 최초로 초중등 교육과정에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채택했다. 토픽 응시자는 5년 만에 1만6천 명에서 6만3천 명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2025년 기준으로 베트남에는 한국어·한국학 전공이 있는 대학이 48곳에 이른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찾는 베트남 중부 항구도시 다낭은, 베트남전쟁 당시 파병 한국군이 거쳐 간 거점 지역이다. 다낭외국어대학과 동아대학, 한베정보통신대학 등에 한국어 전공과 강좌가 있지만, 토픽 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따려는 젊은이들은 한국어 학원을 찾는다.

2016년부터 이곳에서 한국어 학원을 운영하는 최원준 원장은 “베트남 젊은이 중 상당수가 한국에 가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유학을 준비하는 중고생도 늘고 있는데, 이는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영향도 있지만 한류 문화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베트남 청년들의 성실함에 이따금 놀란다. 학원에서 치르는 시험마다 100점을 맞는 학생이 있어 비결을 물었더니, 집에서 자신이 준비한 문제로 예상 시험을 두 번 치르고 학원에서 세 번째 시험을 본다는 답을 들었다. 한국 대학으로 유학해 사회복지를 전공한 이 학생은 한국 학생들을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최원준 원장(맨 왼쪽)이 4월29일 다낭 시내 학원에서 통(24·붉은 옷)과 녓(26·오른쪽 위)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통은 한국에 취업할 준비를 하고 있고, 녓은 그랩(차량공유 플랫폼) 기사로 한국 손님을 맞고 있다.

최원준 원장(맨 왼쪽)이 4월29일 다낭 시내 학원에서 통(24·붉은 옷)과 녓(26·오른쪽 위)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통은 한국에 취업할 준비를 하고 있고, 녓은 그랩(차량공유 플랫폼) 기사로 한국 손님을 맞고 있다.


이 학원에서 교사로 일하고자 문을 두드린 김재희(62)씨는 37년 동안 헬스케어 분야 영업부터 최고경영자까지 거쳤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퇴직을 앞두고 1년6개월 정도 꾸준히 준비해 한국어교원 자격을 얻었다.

김씨는 “우리와 경제·문화 교류가 활발한 베트남에서,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한국어를 매개로 이곳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란 아픈 역사를 알고 있다”며 “청년들과 이와 관련해 대화할 기회가 있다면, 우리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와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누겠다”고 덧붙였다.

박은숙씨는 제자인 링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두 베트남전에 참전한 사실을 들었지만,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파병 한국군에 대한 이야기는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제자들이 한국 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는 박씨는 “이곳 청년들은 한국에 대한 마음이 활짝 열려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 청년들에게 한국어 자격증이 고소득을 보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어 교사들이 받는 보수는 턱없이 작다. 그럼에도 우리 언어와 문화, 자신의 삶과 경험을 나누려는 이들은 무역이나 관광과는 다른 얼굴로 베트남 청년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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