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구미에서 숨진 이주노동자…‘폭염’ 앞에서도 차별

구미 사고 현장, 내국인 노동자만 ‘혹서기 단축근무”… 규제개혁위 ‘폭염 휴식 의무화’ 규정 저울질·노동부 지침은 전년보다 후퇴
등록 2025-07-11 13:53 수정 2025-07-12 12:00
2025년 7월8일 폭염경보가 발효 중인 서울 강남구 한 공사 현장에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공사 현장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45분 작업, 15분 휴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25년 7월8일 폭염경보가 발효 중인 서울 강남구 한 공사 현장에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공사 현장 관계자는 “노동자들이 45분 작업, 15분 휴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낮 최고기온이 38.3도까지 오른 2025년 7월7일 오후 4시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23살 이주노동자 엔(N)씨가 일하다 숨졌다. 발견 당시 그의 체온은 40.2도. 이날은 N씨의 첫 출근날이었다.

구미는 앞서 6월27일부터 11일 연속 낮 기온이 33도 이상 오른 ‘폭염 작업 주의 단계’(고용노동부 지침 기준)였다. ‘위험하다’는 경고음이 상당 기간 이어진 셈이다. ‘무더위 시간대(오후 2~5시) 작업 중지’ 같은 기본 안전장치는 이번에도 먹통이었다. 민주노총은 “더위도 재해이며 예방할 수 있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방치돼 있다. 정부와 사업주들의 안일한 태도로 인해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린다”며 “정부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7월8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숨진 뒤에야 요란해진 정부

존재감 없던 감독기관은 N씨가 숨진 뒤에야 요란하게 움직였다. 사고 직후 대구고용노동청은 해당 사업장에 뒤늦게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안전 교육을 제대로 했는지 등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7월9일)를 통해 △고위험 사업장 집중 점검 △200억원 예산을 활용해 산업 현장에 온열질환 예방장비와 물품 지원 △제2차 추경 예산 150억원 편성해 50명 미만 사업장에 이동식 에어컨, 제빙기, 산업용 선풍기 등을 7월 말까지 신속하게 추가 지원할 것 등의 계획을 밝혔다.

질병관리청의 ‘2024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신고현황’을 보면 2024년 한 해에만 3704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고 이 가운데 34명이 사망했다. 2025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5월20일부터 7월8일 사이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212명으로 한 해 전 같은 기간(486명)보다 2.5배가량 늘어났다.

안전 우려가 커졌지만 노동자 안전에 대한 정부 대응은 느긋하기만 하다. 폭염 재해 방지를 위해 사업주의 조치 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2025년 6월1일 시행)됐음에도 정부가 하위법령을 마련하지 못하는 ‘행정 공백’ 사태까지 벌어졌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경우 2시간 일한 뒤 20분의 휴식시간을 부여한다’ 등의 내용을 담아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을 규제개혁위원회(대통령 소속)가 “과도한 규제”라며 두 차례(4·5월) 막아나선 것이다. 현행법상 규제개혁위원회 규제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법령은 시행될 수 없다.

류현철 공익재단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은 “수년 전부터 고용노동부·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이 제시한 지침에 나온 내용을 규칙으로 만든 수준이었다.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폭염에 의해 노동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 징역, 1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는 규정도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더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과하다고 할 수 없다”며 “그런데도 규제개혁위원회는 ‘기업 부담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결국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기업들 입장을 대변하려다 이런 어이없는 사달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 이사장은 이어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 시행 여부를 떠나, 심각한 폭염이 예상된다면 고용노동부가 적절한 행정지도를 해야 했지만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며 “매년 내놓는 ‘온열질환 예방지침’의 내용도 오히려 후퇴했다”고 덧붙였다. 2024년 지침에 포함됐던 ‘35도 이상 무더위 시간대 옥외 작업 중지’ 같은 수칙이 2025년 지침엔 빠진 점을 꼬집은 것이다.

 


온열질환자, 전년 동기 대비 2.5배↑

그간 고용노동청의 권고나 가이드라인 수준으로는 기록적인 폭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처벌 규정을 담은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노동계 안팎에서 제기돼왔다. 2024년 7월 전국건설노조가 조합원 15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강제력이 약한 ‘고용노동부 폭염 지침’은 현장에서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다. 가장 기본적인 물조차 제공하지 않는 작업장(96명, 8.7%)도 있었다. 안전보건 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응답 비중(360명, 32.5%)도 여전히 높았다. 대다수 노동자(891명, 80.6%)가 35도 이상 폭염에서조차 작업을 계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옥외작업 특성상 폭염에 빈번하게 노출되는 건설노동자들의 기후 여건에 따른 노동환경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다. 전국건설노조가 2023년 7월19일~8월7일 전국 221개 건설 현장에 온·습도계를 달아 조사한 결과 건설 현장의 체감온도는 기상청 발표보다 6.2도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숨진 N씨 등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 노동자들에 견줘 가혹한 노동환경에 노출되는 등 노골적 차별 구조도 재확인됐다. 7월9일 전국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는 대구시 수성구 대구고용노동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N씨가 숨진 사업장에선 내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혹서기 단축근무가 시행되고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정상 근무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혹서기 근무’는 무더위 시간대를 피해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하는 단축근무다. 혹서기 근무를 시행했다는 건 사업주가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재해 발생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동계에서 그간 하청을 통한 위험의 외주화를 지적했는데, 수년 전부터는 그 위험이 이주노동자에게 특히 집중돼 ‘위험의 이주화’라는 말이 나옵니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사업장 이동이 제한되고 이로 인해 언어적·제도적 차별을 당해도 문제 제기조차 불가능한 이주노동자들이 더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 내몰리고 있어요. 이번 죽음은 충분히 예상됐고 정부가 방치했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김희정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이 말했다.

 

“언론도 정치권도 더울 때만 잠깐 이야기”

누군가는 무탈하게 보낼 수 있는 여름, 다른 누군가는 죽거나 죽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불평등한 노동구조에서 각종 산업재해가 매년 반복적으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비춘다. 류현철 이사장이 말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언론도 정치권도 한창 뜨거울 때 누가 쓰러지면 잠깐 이야기하다가, 더위가 물러가면 그런 이야기들이 사라지는 걸 수년째 겪고 있어요. 물론 긴급하게 필요한 조치들도 빨리 해결해야겠죠. 아울러 다단계 하청의 최말단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폭염으로 작업이 중지되면 그 자체로 실업 자체가 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나 배달라이더의 생계를 어떻게 보전할지 등등 다양한 제도적 상상력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려는 꾸준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