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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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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김문수 188번 부르짖고 이준석은 이재명만 91번 외쳤다

대선 출마 선언~2025년 5월25일 SNS 게시물 ‘구조적 토픽 모델링’ 기법으로 분석한 제21대 대선 후보들의 말말말
등록 2025-05-30 17:33 수정 2025-06-02 13:38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2001년 12월10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 노무현의 출마 선언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문장으로 꼽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문장에 가장 신경을 쓴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강원국 연설비서관이 쓴 ‘대통령의 글쓰기’를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지금의 리더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정경유착의 시대도 막을 내렸고, 권력기관도 국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대통령이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말과 글, 그리고 도덕적 권위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인이 가진 무기, 말과 글

노 전 대통령이 말했듯 ‘말과 글’은 정치인의 무기다. 대통령은 연설문으로 국가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정책과 공동체가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자 또한 유세문과 여러 메시지를 통해 유권자를 설득하고, 믿음을 구한다. 한겨레21이 6·3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 네 명의 언어를 분석한 까닭이다.

분석은 네 후보가 주요 소통 경로로 활용하는 페이스북 게시글을 대상으로 했다. 과거에는 대선 후보의 발언을 듣기 위해 유세 현장을 찾고, 언론사가 후보의 발언을 어떻게 보도하는지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디지털 공간에서 후보의 말이 여과 없이, 훨씬 빠르게 공유된다. 특히 SNS 글은 언론 보도로 드러나는 정치인의 말보다 더욱 속내를 친근하게 드러내리라는 기대를 받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지낸 신동호 작가는 “선거를 지켜보는 국민은 대선 후보의 SNS 글이 진짜 후보의 속마음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유세나 토론에 견줘 후보를 이해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후보들도 지지층을 움직이기 위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겨레21은 제21대 대선 예비후보 등록 기간을 앞두고 각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시점부터 2025년 5월25일 오전까지 게시한 글 150여 개(총 600여 개)를 모아 ‘구조적 토픽 모델링’ 방법으로 분석했다. 구조적 토픽 모델링은 각 문서에서 함께 언급되는 단어를 찾아 통계적으로 분석해 ‘주제’(토픽)를 자동으로 추출하는 방법이다.


노동·평등보다는 경제와 성장에 방점을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핵심어)는 ‘산업’(229번)이었다. 이어 ‘지원’(178번), ‘경제’(107번), ‘성장’(101번), ‘기술’(79번), ‘기업’(61번), ‘첨단’(55번), ‘투자’(49번) 등 경제·산업과 관련되는 단어를 비중 있게 언급했다.

이재명 후보의 글에서 구조적 토픽 모델링 분석으로 주제를 추출하면 △국민통합, 경제·민주주의 회복하는 대통령 다짐(19.8%) △교육의 국가적 중요성 강조, 행복 위한 교육의 역할(15.7%) △재해·재난 대응 및 국민 안전 보장 위한 국가 책임(12.8%) △헌법 개정 필요성과 군사 긴장 완화를 통한 평화 강조(10.7%) △우주·항공·방위·문화 산업을 미래 성장 비전으로 제시(9.5%) △기본사회, 복지국가와 첨단기술 시대의 사회경제적 대비(8.3%) △대구·경북 지역 경제 부흥과 산업 중심 성장 전략(7.2%) △당내 경선 연설에서 국민주권과 지역 선택 강조(6.6%) △각 지역의 산업발전 비전 제시, 국가 책임 강조(5.6%) △기후위기 대응과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3.7%) 등으로 나타난다. 이재명 후보는 12·3 내란 계엄과 탄핵으로 충격을 입은 경제 회복을 다짐하고,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을 미래 성장 비전으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산업 관련 키워드를 자주 언급했다.

대권을 놓고 경쟁하는 국민의힘이 전 대통령 윤석열의 계엄과 탄핵으로 인해 집권의 민주적 정당성이 훼손됐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경제’ 회복 담론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수민 정치평론가는 “최근 수년간 치른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지지층을 결집하는 언어에 집중했다면, 민주당은 중도·보수 시민에게도 인정받기 위해 국민이 중시하는 경제·산업 담론을 강조해왔다”며 “다만 경제·산업과 관련한 어휘가 많아지면서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에서 강조하는 노동, 차별, 평등 같은 단어의 언급은 줄었다”고 짚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출, 본인 이름 188번 강조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가장 많이 호명한 것은 바로 자신의 이름인 ‘김문수’였다. 188번이나 됐다. 두 번째로 많이 언급한 ‘국민’(69번)과 견줘도 세 배 가까이 많다. 김문수 후보는 4월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5월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 진통을 일주일 가까이 겪으면서 네 후보 가운데 가장 늦게 대선 레이스에 올랐다. 최종 후보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기에 자기 이름을 계속 외쳐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문수 후보는 30%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2위 후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대선 후보로서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국민의힘과 보수라는 진영을 대표해서 출마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 때문에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옥고를 치른 경험과 노동운동 경력을 내세우면서도, 보수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주제를 담은 메시지가 많았다.

토픽 모델링으로 추출된 주제는 △5·18 민주화운동, 4·19 혁명, 박정희 등 과거사 발언(14.9%) △각 지역 유세에서 소회 발표와 지역 공약(13.5%) △당내 경선 후보들에게 정치적 동료로서 인사(11.5%) △한덕수의 단일화 추진 및 국민의힘 당내 정치적 갈등(10.6%) △‘권력 내려놓기’ 개헌 협약을 통한 정치 개혁 의지 표명(10%) △북한 미사일 도발과 민주당에 대한 경고(8.8%) △수도권, 경기, 전국 관련 철도 건설과 발전 방안(8.3%) △주한미군의 중요성과 국방안보 강조(7.7%) △한센인 마을, 택시조합 등 현장 방문과 사회적 약자 공감(7.6%) △청년세대의 절망과 사회적 문제, 청년정책 의지(7.1%)로 나타난다. 다른 후보에 견줘 비전이나 정책과 관련한 토픽이 부족한 것이 단점이다. 과거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을 언급하면서 광역급행철도(GTX)를 확장하겠다는 공약 정도만 눈에 띈다.

김문수 후보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데 공들였다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이재명’(91번)이었다. ‘더불어민주당’(57번)도 많이 호명했는데, 자기 이름(36번)보다 1.6배 더 많이 언급했다. ‘개혁신당’(19번)은 언급 비중이 현저하게 낮았다.


정책 비전보단 이재명·소수자 비판에 치중

이준석 후보 게시글의 주제를 분석해보면 △국민의힘 쪽의 단일화 요구에 대한 반발(14.1%) △정부조직 개편 및 효율성 증대 방안(11.2%) △세종시 대통령실 이전 논란과 사법부 압박 관련 비판(11%) △데이터 산업의 중요성 강조하며 이재명 정책 공약 비판(10.2%) △이재명 후보 사법 리스크 관련 민주당 비판(9.9%)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무능함과 이재명 국가 공약 비판(9.8%) △계엄과 탄핵 불복 관련 김문수 후보와 국민의힘 비판(9.6%)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비판과 복지·교육·금융 정책 관련 입장(9.6%) △호텔경제학, 시흥 거북섬 등 이재명 발언 공격(9.5%) △의정활동 관련 언급 및 동덕여대 발언 비판에 반발(5.2%) 등으로 구성됐다. 자신의 정책적 비전보다는 이재명 후보와 소수자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됐다.

이준석 후보의 이런 메시지 전략은 이재명 후보의 대항마로 자신을 내세우면서 국민의힘 쪽의 단일화도 거부하는 두 개의 방향성을 동시에 던지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2월3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해 네 후보 가운데 가장 먼저 움직였던 이준석 후보는 출마 선언 직후엔 정책 공약 발표에 주력하기도 했지만, 6월3일이 가까워지면서 더욱더 네거티브 발언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5월27일 마지막 대선후보 티브이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는 젠더폭력 발언으로 강한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발언이 계산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 분석 전문가인 노법래 부경대 행정복지학부 교수는 “이번 대선 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이준석 후보는 확산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적절한 시기에 잘 던져서 자신의 언어를 빠르게 바이럴시키는데 뛰어난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준석 후보는 정책이나 컨텐츠 자체를 강조하는 대신에 정치적 대결 지형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를 갖고 혐오 표현과 네거티브 발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준석 후보의 메시지가 6·3 대선에서 가능성이 가장 큰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 뒤를 내다보는 큰 그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동호 작가는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반대편 지지자를 ‘내란 세력’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준석 후보는 그 시점에 ‘내 말이 맞지 않나’라며 이재명의 대안으로 자신의 지지세를 확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장의 목소리’ 선명한데 전달은 글쎄

‘노동자’(227번), ‘사회’(161번), ‘정책’(114번), ‘시민’(107번), ‘권리’(101번), ‘차별’(78번)….

앞선 세 후보가 집권(이재명)과 존재감(김문수), 대선 이후(이준석)를 위해 메시지를 구성했다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언어는 그 자체로 시민의 삶을 구성하려는 듯 보인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나열된 낱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요 주제로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 고공농성 연대(15%) △개헌 필요성, 노동권 강조로 ‘광장 정신’ 환기(12.3%)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및 평등 보장(11.6%)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치와 녹색전환 강조(10.7%) △장애인 권리 보장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개선(10.6%) △산업재해 사망 문제 제기와 무권리 노동자 보호 요구(10.6%) △거대 양당(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비판(9.2%) △기후위기 위협과 농어민 보호와 식량주권 실현 방안(7.8%) △대법원 이재명 선고, 민주당-사법부 모두 비판(6.4%)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과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5.7%) 등으로 분석된다.

권영국 후보는 현장의 문제를 글로 전달하고 노동·시민단체들과 정책 협약을 맺으면서 실제적인 변화로 가져가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다만 이러한 후보의 메시지가 유권자 다수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지적됐다. 청년정치 에이전시 ‘뉴웨이즈’의 박혜민 대표는 “기후위기나 성소수자 문제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장에서 단어들이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정치 고관여층이나 기존 진보정당 지지자가 아니면 공감하기 쉽지 않다”며 “공약집을 읽었을 때도 직관적으로 어떤 것을 하려는지 와닿지가 않았는데, 다수 대중의 일상과 삶의 문제로 연결되는 고리가 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 구조상 주목받지 못하는 문제도 크다. 대권을 놓고 거대 양당이 경쟁하는 구도에서 노동과 소수자 문제 등은 주목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홍지연 미국 미시간대학 교수(정치학)는 “권영국 후보는 준비된 메시지와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장 차분하게 준비를 잘한 훌륭한 후보로 보인다”면서도 “현재 정치 구도와 체계가 소수 정당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으면 지지 기반을 넓히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더 듣고 싶고, 잘 들리는 말이 필요하다

윤석열의 12·3 내란과 탄핵으로 차기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해야 하기에 대선 후보들의 언어에서 정책이나 구체적인 비전을 기대하는 유권자의 요구가 크다. 경제, 여성, 노동, 외교, 정치 개혁 등 다양한 논의가 전개될 공간이 유권자 입장에선 절실하다. 하지만 대선 날짜가 다가오면서 후보들 사이에 네거티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언어는 점점 타락하거나 퇴행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나오는 후보들의 언어는 듣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고, 들리는 이야기도 아니다. 듣고 싶고, 들리는 이야기를 어떻게 더 할 수 있을지 (후보들이) 마지막까지 고민하면 좋겠다.” 뉴웨이즈 박혜민 대표의 말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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