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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대법원 떠넘기기로 혼란 가중”

전례 없는 속도와 예상 밖 판단… “정치의 사법화·검사 정치 한계 드러나” 비판 제기
등록 2025-05-02 00:23 수정 2025-05-02 09:55
2025년 5월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이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대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25년 5월1일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2심 무죄 판결을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이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대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대법원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의 판단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해당 사건이 2025년 6월3일로 예정된 제21대 대통령 선거 전에 결론이 나기 어려워 이 후보의 피선거권이 박탈될 가능성은 작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이번 판결로 인해 한껏 요동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5월1일 “원심의 판단은 공직선거법 제250조 1항이 규정한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선고했다.

피선거권 박탈 가능성 작지만…

대법원은 이 후보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과 국외 출장에서 골프를 함께 친 것처럼 (검찰이) 사진을 조작했다고 말한 것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개발 과정에서 용도를 변경한 것이 국토교통부의 협박 때문이었다고 발언한 것이 허위사실 유포로 공직선거법 위반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앞선 3월26일 서울고법 형사6-2부(재판장 최은정)가 “다른 합리적 해석 가능성을 배제하고 공소사실에만 부합하게 해석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선거운동의 자유의 헌법적 의의를 충분하게 반영하지 않는 결과가 된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과 대비되는 결론이다.

원심이 이 후보의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찍고 무죄를 선고했다면, 대법원은 ‘유권자의 권리’에 무게를 두고 유죄 취지의 선고를 했다. 조 대법원장은 “후보자의 어떤 표현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는 후보자 개인이나 법원이 아닌 선거인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고, 허위사실이 표현의 자유로 용인될 수 있는지는 그 허위사실이 선거인의 공정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판단한다”며 “(후보자) 발언의 의미를 확정할 때는 사후적으로 개별 발언의 관계를 치밀하게 분석·추론하기보다는 발언이 이뤄진 당시의 상황과 전체적 맥락에 기초해 선거인에게 발언이 어떻게 이해되는지 기준으로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심리에 관여한 12명의 대법관 가운데 10명이 파기환송 의견을 냈고, 2명(오경미·이흥구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내놨다. 오경미·이흥구 대법관은 반대 의견에서 “문제 되는 표현이 사실을 드러낸 것인지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의견 표명으로 보는 것이 그동안 선거의 공정과 선거운동의 자유 사이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온 대법원 판례의 흐름에 부합한다”며 “(유죄 취지 파기환송은) 죄형법정주의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 기본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이번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과 관련해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례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4월22일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에 배당된 사건을 2시간 만에 전원합의체로 돌리고, 통상 한 달에 한 번 열리던 합의 기일을 이틀 간격으로 두 차례나 열어 심리한 뒤 8일 만에 최종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이 원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을 받아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심리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무죄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25년 5월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25년 5월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짧아도 너무 짧았던 심리 기간

문제는 심리 기간이 짧아도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자는 “절차가 진행된 속도를 보면, 지난 3월26일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선고가 난 직후에 재판연구관들에게 지시해서 사건 검토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상고 이유도 모르면서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도 이상하고, 원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심리해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례를 살펴보면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법원은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보도자료에서 “이 사건은 1심 공소제기일(2022년 9월8일)부터 대법원 상고 사건 접수(2025년 3월28일)까지 2년6개월이 걸려 혼란과 사법 불신의 강도가 유례없다는 인식 아래,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된 이후 신속하게 1심과 원심 판결문, 공판 기록을 기초로 사실관계와 쟁점 파악에 착수했다”며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해 축적된 판례와 법리, 국내외 연구자료 등을 토대로 토론을 거쳐 충실하게 심리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이 후보에게 사실상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대선 가도에 제동을 걸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실제로 이 후보의 출마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파기자판(사건을 되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재판)으로 대법원이 직접 유죄를 선고하지 않고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기 때문에 선거 전에 이 후보의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수준의 양형 선고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대법원이 서울고법에 재판을 빠르게 진행하라고 지시할 수도 없고, 서울고법 역시 사건을 받아서 재판부에 배당하고 심리한 뒤에 양형도 정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한 달 안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서울고법이 그 전에 선고한다고 해도 이 후보나 검찰에서 다시 상고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면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재상고심을 다시 해야 한다. 법원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물리적으로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6월3일 이전에 서울고법이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치적 의도 혹은 책임 떠넘기기 의심

이렇게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해도 이 후보의 대선 출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대법원이 사건을 이례적으로 빠르게 심리해 결론을 내린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앞서 서술했듯 우선 이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려면 대법원이 파기자판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보 등록 기간이 임박했고, 각 정당의 후보가 대부분 결정된 시점에 대법원이 판결했다는 점도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앞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윤석열 탄핵 결정을 보더라도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경우 더더욱 판결 과정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데, 속도전의 촉발로 대법원이 되레 정치적 논란을 자초한 셈이 됐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이 사건을 빠르게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촉박하게 선고 기일을 잡아서, 라이브로 방송까지 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직접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내는 선택을 하면서 정치적 책임을 최소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제처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파기자판으로 유죄를 선고하거나, 상고 기각으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은 것은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한 판단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대법원이 명확하게 판단을 하지 않음으로써 다툼이나 논란은 정치권과 사회로 떠넘겨졌다”고 했다.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대법원 판결을 “명백한 정치 재판, 졸속 재판”으로 규정하고 “대선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12·3 내란에는 입 닫던 대법원이 국민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대선은 방해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법원의 시간이 아니라 국민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도 “정치적 경쟁자들 입장에선 온갖 상상과 기대를 하겠지만 정치는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법원의 판결이 “지극히 상식적”이라며 “각종 사법 리스크를 짊어진 채 대선 레이스를 이어가는 후보에 대한 도덕성과 자격성 논란이 불거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사건을 돌려받은 서울고법을 향해 “파기환송심을 빠른 시간 내에 열어서 6월3일 대선 전에 이 후보의 법적 리스크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도 판결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파기환송된 사건은 대법원의 법률적 판단에 구속”된다며 “이재명 후보에 대한 유죄 판단은 확정된 것과 다름없으니, 즉각적인 후보 교체를 단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쪽 지지층은 더욱 양극화할 것

정치권에선 대법원 판결로 인해 정치적 진영주의가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 달 남은 대선 과정에서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두고 공방이 심화하면서 모든 쟁점을 집어삼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이재명 후보는 유죄이지만 출마 자격이 있는지는 아직 판단 안 한다는 것”이라며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 중에서 원천적으로 갖고 있던 위험이 다시 대법원에 의해 확인돼 앞으로 논란은 더 가열되게 됐다”고 말했다.

선거 이후에도 국정 운영이 사법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되면서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정치적 공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법으로 이재명 후보를 정리하려고 했던 윤석열 정부의 시도가 검찰의 별건 기소로 이어졌는데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온 상황의 결론이 오늘 대법원의 판결”이라며 “이 과정 전반이 정치의 사법화, 검사 정치의 한계였다”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대법원의 판결을 목도한 유권자의 판단이다. 김민하 평론가는 “모두의 지지층이 결집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내란 연장’으로 규정하며 지지층과 중도층을 향해 ‘내란 세력 심판’을 위해 결집이 풀리면 안 된다는 점을 호소하는 반면, 계엄과 내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국민의힘은 오로지 ‘반이재명’ 선거 구도에 집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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